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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대만과 한국 ‘쌍둥이 교육현실’

등록 2008-05-09 21:04

〈위험한 마음〉
〈위험한 마음〉
최성일의 찬찬히 읽기 /

〈위험한 마음〉
호우원용 지음·한정은 옮김/바우하우스.1만2000원

이럴 수가! 호우원용의 장편소설 <위험한 마음>에 묘사된 대만의 교육현실은 우리의 그것과 너무나 닮았다. 서로가 상대방의 클론이고 복사판이며 ‘짝퉁’이다. 아무리 같은 한자문화권이라도 이럴 순 없다. 여기에 비하면, 일본의 교육현실은 두 나라와 ‘천양지차’다. 더 놀라운 것은 우리와 대만은 상대방을 베낄 뜻과 겨를이 없었다는 점이다.

다른 점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위험한 마음>은 대만의 베스트셀러다. 하지만 우리 실정에선 이 책의 다량판매를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암담한 교육현실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발붙이기 어려울 정도로 상태가 심각하다. 언제 한번 그런 적도 없는 것 같다. <위험한 마음>은 참 재미나다. 완득인지 만득인지는 저리 가라다. 또 아주 웃긴다. 이것 역시 만득인지 완득인지는 댈 게 아니다. 포복절도하게 하지만 마냥 웃어넘길 수만은 없다. 페이소스가 진한 블랙코미디인 까닭이다.

타이베이 리런 중학교 3학년 시에정지에는 바로 나다. “사실이 어땠느냐는 전혀 중요하지가 않았다.” 고 1 영어시간이다. 중간에서 싸움 붙인 놈이 더 나빠. “그것은 정말이지 견디기 힘든 분위기였다.” 교실 밖의 세차게 내리는 가을비는 내 눈물이나 다름없었다. “닥쳐야 할 일이라면 그건 시간문제이겠지만, 언제 올 것인지 혹은 얼마나 강렬하게 다가올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잘못을 저질렀다. 하지만 그렇게 죄인 취급받을 일은 아니었다. “그들이 처분을 받지 않는 것은 다만 발각되지 않았기 때문이거나 혹은 교사가 의도적으로 묵인해주었기 때문이다.” 이듬해 부임한 교감의 사고뭉치 아드님은 별 탈 없이 학교를 졸업했다.

중학교 중퇴자인 ‘컴퓨터 마녀’ 아이리 역시 나다. “그 순간 선생님의 매서운 손바닥이 내 뺨을 후려쳤어.” 5학년 첫날이다. “만약 학기 초부터 질서를 잡지 못하면 그 반의 성적도 좋게 유지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나는 떠들지 않았다. 앉은 자세가 흐트러졌을까. 눈물을 쏟았어도 흐느껴 울지는 않았다. 그래도 5학년은 무난히 지나갔다. 하지만 트라우마는 꽤 심각했다. 6학년 가을운동회 꾸미기체조 지도를 5학년 담임이 맡았다. 나는 연습을 하는 내내 두려웠다. 중 1 여름방학 때는 6학년 담임을 마주치자 냅다 줄행랑쳤다. 이 무례한 행동으로 나는 아주 오랫동안 죄의식에 시달렸다. 몹시 고통스러웠다.



최성일의 찬찬히 읽기
최성일의 찬찬히 읽기
정지에의 학교는 곧 나의 학교다. “왜 학교는 우리에게 사고하고 의심하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는가. 사람이 왜 사는가. 삶은 또 어떤 가치가 있는가. 추구할 만한 가치가 무엇인가. 왜 학교는 우리에게 남보다 앞서야 하고 성공해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어떻게 내재된 가치를 추구하고 어떻게 사랑하고 나눌 것인가를 가르쳐주지 않는가.”

교육정책의 조변석개를 탓하지만 나는 교사와 학부모의 책임이 더 크다고 본다. 누구말대로 교사는 지난 수십 년간 학생을 ‘볼모로’ 학부모를 ‘울궈’먹은 과오부터 반성하고 사죄해야 한다. 학부모는 범죄적 교육환경의 한 축을 이루는 공동 정범이다. 나는 학부모로서 그런 범죄에 껴들지 않겠다. “거대한 공범의 구조”에 가담하지 않겠다.

최성일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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