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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과학과 문학사이 진화론

등록 2008-05-09 21:28

〈다윈의 플롯〉
〈다윈의 플롯〉
‘종의 기원’ 대중 전달위해 은유 통한 이야기로 풀어… 19세기 문학에도 영향
〈다윈의 플롯〉
질리언 비어 지음·남경태 옮김/휴머니스트·2만8000원

카를 마르크스는 반겼다. “역사 속의 계급투쟁을 분석하기 위한 자연과학적 기반”이라며 추어올렸다. 같은 시대 존 러스킨은 몸서리쳤다. “인간이 해초나 악어와 친척이라고 주장하는 불결한 문장”이라며 상소리를 늘어놓았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젠체하기까지 했다. “인간의 보편적인 자기도취증과 이기주의는 현재까지 과학 연구자들에게서 세 차례 호된 타격을 받았다.” 세 가지 타격은 코페르니쿠스의 우주론, 다윈의 생물학 이론, 그리고 자신의 정신분석학을 가리킨다. 모두가 찰스 다윈(사진)이 1859년 출간한 <종의 기원>에서 촉발된 논쟁과 관심의 풍경이다. 열광과 비난이 엇갈렸던 까닭은 다윈의 이론이 풍부한 해석학적 잠재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의 논증은 정보의 확장, 변형, 과잉으로 향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그의 이론을 두고 과학적 내용이 문학적 형식을 입었다고 부를 수 있는 대목이다.

영문학자인 지은이가 보기에, 다윈은 <종의 기원>을 집필하면서 현상과 언어 사이에 크레바스처럼 가로놓인 단절 탓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자신은 진리를 ‘발견’했다고 확신했으나 이를 정확히 전달할 언어표현이 부재했던 것이다. 첫째 어려움은, 인간과 여타 동물의 위계를 부정하고 평등한 관계를 정립하려 했으나 언어 자체가 인간중심적이라는 데 있었다. 다윈의 이론은 자연 질서(자연선택)가 그 자체의 생산·재생산을 통해 연속성과 다양성을 확보하는 틀이었으므로 거기에는 신과 같은 창조자가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언어는 행위자를 포함하며 행위자와 의도를 구분하기가 곤란하다. 다윈이 겪은 둘째 어려움이다. 여기에다 다윈은 그 시대 자연신학의 전통과도 싸워야 했으며, 일반 독자에게 자신의 이론을 접근시켜야 하는 난관에 봉착해 있었던 것이다.


〈다윈의 플롯〉
〈다윈의 플롯〉
지은이가 분석한, 다윈의 해법은 ‘이야기 구조’다. “나의 연구방법은 다윈의 언어에 깊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그는 법칙을 ‘발명’한 게 아니라 ‘서술’했다.(…) 그러므로 그의 연구는 서술의 수단, 곧 언어에 의존한다.” 설계와 창조를 앞세우는 기존 신학의 틀에서 벗어나 생산과 변이를 토대로 이론을 구성하려던 다윈의 선택은 우회하여 돌파하는 것이었으며 그 핵심 수단은 은유와 유비(analogy)였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다윈의 은유는 “인간의 질서 속에서 인식할 수 있는 것의 경계를 설정하려는 시도”였으며 이 덕에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이론을 구성하는 데 큰 효과를 보았다. 대응하는 사물 간에 존재하는 동일성인 “유비는 상동(相同)관계가 될 수 있다. 그럴 경우, 유사한 이야기 유형은 실제적 동일성을 드러내며, 두 유형 간의 거리는 사라진다. 총체적이고 만족스러운 조화가 실현된다.” <종의 기원> 전체를 일관하는 것이 바로 유비인 셈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나무가 관목이었을 때 번성한 많은 잔가지들 가운데 겨우 두세 개만 크게 성장해서 다른 모든 가지를 지탱한다. 그러므로 오랜 지질학적 시대들을 거치며 살아왔던 종들의 경우에도 지금까지 살아남아 후손들을 변형시키는 것은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

이런 분석을 토대로 지은이는 19세기 영국 소설가들에게 다윈의 사상이 스며든 흔적을 예시한다. 손에 꼽은 작가는 조지 엘리엇과 토머스 하디. 그들은 진화론의 자연선택이나 변이 같은 개념들을 그대로 작품에 끌어오고, 종의 친화성을 작중 인물들의 관계에 적용하며, 다윈이 즐겼던 ‘나무의 이미지’를 차용하기도 한다.

“최근 다윈은 회춘했다.” 디엔에이(DNA)의 발견과 고고학의 발굴 성과,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추진 등에 힘입은 바 크다. 하지만 일반 독자의 처지에서 진화론의 가치는 다른 데 있을 수 있다. “과학은 늘 과학적 탐구의 범위 내에서 답할 수 없는 문제를 제기”하며 “과학은 우연, 미래, 극대와 극미, 가까운 것과 먼 것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종의 기원>과 같은 과학 연구가 새로운 이야기의 내용은 물론 형식·문법까지 창조하는 샘물이 된다는 것을 지은이가 규명한 것처럼, 양자역학이나 분자생물학, 뇌신경과학 등도 그러하리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과학과 문학(이야기)은 제정 러시아의 아나키스트 크로포트킨이 ‘상호 부조’라고 가리킨 관계인 것이다. 때문에 이런 질문에 대해서 우리는 과학뿐 아니라 이야기의 형식도 상상할 수 있다. “광우병에서 독백이 나올 수도 있을까?” 이미 1992년 영국의 시인 조 샤프콧은 ‘미친 소’(Mad cow)를 읊었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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