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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8월 1일 잠깐독서

등록 2009-07-31 19:45수정 2009-07-31 19:46

〈굿바이 파라다이스〉
〈굿바이 파라다이스〉




꿈과 현실, 천국과 지옥의 줄타기

〈굿바이 파라다이스〉

서늘한 이야기다. 그러면서도 뜨겁고 풍성한 이미지들이 이야기 사이를 교태롭게 줄타기한다. <굿바이 파라다이스>에는 완전히 꿈으로 끝나지 않는 꿈들, 완벽하게 현실이라고 믿을 수 없는 현실의 사건들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다. 15세기의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가 그린 천국과 지옥을 2009년 대한민국 판으로 다시 그린다면 이런 모습일까. 한국 장르문학계에 등장한 이 신예 소설가는 사랑, 죽음, 판타지, 욕망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겁도 없이 그려낸다. 시체애호증이나 연쇄살인마, 반신불수가 된 아내의 사연, 살인마의 고뇌가 소설의 중심에 힘껏 서 있다. 그런데도 이 이야기들이 부담스럽지 않은 것은 만두 파동, 트랜스젠더 이슈 같은 구체적인 배경들이 촘촘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단편 ‘굿바이 파라다이스’는 40대 남성 한명수가 지하철에서 자살을 하는 그 찰나에 몰두한 이야기다. 주인공의 독백이나 꿈을 꺼내놓듯 왜 자살했는가를 들려주지만 결국 현실과 환상 그 어디에나 지옥이란 관념이 우리와 동행한다는 걸 보여준다. 대부분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는 지옥 같은 현실에서의 ‘죽음’이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좌절과 비참함을 말하지는 않는다. 매혹적인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늘어놓는 거짓말쟁이가 되고 싶다는 작가. 그는 할머니에게 들었던 무수한 이야기가 소설의 단서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이상한 태몽을 꾸고 장애아를 얻은 할머니 이웃의 실화에서 샴 쌍둥이의 영화 같은 삶을 그린 단편 ‘하나의 심장’이 시작된 것이다. 강지영 지음/씨네21북스·1만원. 현시원 기자 qq@hani.co.kr



인간미 풍기는 양반들 인생사

〈부족해도 넉넉하다〉

〈부족해도 넉넉하다〉
〈부족해도 넉넉하다〉

조선시대 한문은 양반의 전유물이었으니, 이 책 <부족해도 넉넉하다>에 수록된 짤막한 글들의 주인공은 당연히 양반이다. 그러나 예법이나 성리학을 논하는 뜬구름 잡는 내용은 별로 없다. 당대 유명한 여행가에게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속히 돌아오라’는 편지글, 건망증이 심한 조카에게 건네는 격려글, 양반들의 꼴불견 행태를 나열해 놓은 글 등 인간사 ‘살냄새’가 풍기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중에서도 ‘무위도식’을 반성하는 다양한 행태가 흥미롭다. 한평생 벼슬을 하지 못한 향촌 선비 김낙행은 “밥이나 축내고 신경쓸 일이 없는 나를 못마땅하게 여긴” 아내의 지시대로 돗자리를 짜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속을 죽이고” 일을 시작했지만 이내 즐기기 시작해 “내 분수에 알맞다”며 자족한다. ‘눈칫밥’ 먹는 현실의 답답함을 노동의 즐거움으로 떨쳐버린 것이다. 이장재는 스물아홉에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한 처지를 한탄한다. “아침저녁거리 죽조차도 내 힘으로 장만하지 못하고 집안사람에게 수고를 끼친다”며 자신을 ‘좀벌레’라고 자학한다. 열심히 공부해도 좋은 일자리를 얻기 힘든 작금의 청년들과 닮았다. 출사했다가 은퇴한 강필신도 ‘밥값 못하는’ 현실을 걱정하기는 한다. 그러면서도 “나는 직책이 없고 남들에게 책임질 일이 없다. 내가 날마다 먹은 음식이라고 해봤자 풀뿌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리화한다. 이 밖에 벼슬자리에 올라 한양으로 올라간 유희춘이 “서너 달 동안 여색을 멀리했다”고 우쭐대자, 그의 아내 송덕봉이 “홀로 지내는 게 양기 보존에 좋지 않겠냐”며 쏘아붙인 편지도 재미있다. 안대회 지음/김영사·1만3000원.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자민당 몰락, 그 배후를 캐다

〈르포, 절망의 일본열도〉

〈르포, 절망의 일본열도〉
〈르포, 절망의 일본열도〉

이달 말 일본 총선에서의 정권교체가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한국 정치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미칠 자민당의 몰락은 어디서 비롯됐나?

<르포, 절망의 일본열도>가 그 해답을 명쾌하게 제시한다. 전문 르포작가 가마타 사토시(71)가 <주간 금요일>에 연재해온 ‘통분의 현장을 걷다-절망사회’에서 가려 뽑은 글들을 묶은 이 책이 생생한 현장 실사를 통해 보여주는 자민당 몰락의 원인은 고이즈미 정권 들어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정책과 그로 인한 일본 사회 양극화, 그 귀결인 총체적 민심이반이다. 2004년의 노동자파견법 개정 등 노동유연성 심화와 기업 프렌들리, 민영화·규제완화 정책이 초래한 중산층 붕괴, 40%에 육박하는 비정규직, ‘워킹푸어’와 프리터, 노숙자로 전락한 사람들이 모여든 ‘파견마을’, 넷카페 난민, 상습 임금체불. 정규직 밑에 임시직, 그 밑에 기간제와 파견사원, 그 밑에 프리터와 외국인 노동자. 캐논과 유니클로, 마쓰시타도, 토목건설회사들도 노동자들을 무료급식과 자살로 내모는 참상을 밑천으로 삼아 돈을 벌고 있고, 최고의 기업이라는 도요타도 마찬가지. 정리해고와 노동 강도 극대화를 축으로 한 도요타식 경영을 도입한 우정(우체국 저축과 보험 등) 민영화는 미국 금융자본에 일본 서민들의 자산을 통째로 내준 꼴이 됐다. 지은이는 신자유주의 일본 사회를, 항아리에 갇힌 문어가 제 살을 베어먹고 버텨야 하는 처참한 ‘다코베야’(문어방)에 비유했다. 우경화와 군사주의가 동시에 진행중인 문어방 사회 일본의 현재는 열심히 그 뒤를 쫓고 있는 한국의 근미래가 아닐까. 김승일 옮김/산지니·1만4000원.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지성의 모든 것’ 1200쪽에 빼곡히

〈생각의 역사1-불에서 프로이트까지〉

〈생각의 역사1-불에서 프로이트까지〉
〈생각의 역사1-불에서 프로이트까지〉

<생각의 역사1>은 들녘출판사가 교양 시리즈로 펴내는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의 아홉 번째 책이다. 저널리스트 출신 문화사가의 장기를 살려 철학, 예술, 과학, 종교, 세계관 등 인류 지성사를 아우르며 12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책에 담았다. 지은이는 언어의 탄생과 추위의 정복,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의 기원, 민족주의와 제국주의의 이용과 남용, 모더니즘과 무의식의 발견, 공장의 관념과 아메리카의 발명 등 정신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주제들을 섭렵한다.

인간의 정신은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인류의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이 상호작용하면서 발전을 거듭해왔다. 1050~1200년 사이 유럽에서 개인성이 탄생하는 데는 도시의 발달과 토지 소유관계의 변화, 12세기 르네상스와 고전, 고대의 재발견이 영향을 끼쳤다.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빈곤한 노동계급의 현실은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으로 이어졌다. 모더니즘은 막대한 부와 황폐하고 비천한 새로운 현대의 빈곤이 공존하는 대도시를 낳았다. 지은이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과학혁명 등 객관적이고 물질적인 세계를 역점적으로 서술하면서도 자연철학자의 관점을 견지한다. 왕과 황제, 정복과 평화조약 등 역사서의 단골 메뉴를 빼고, 자칫 천편일률적이 될 법한 인류의 지성사를 학문의 장르를 넘나들며 ‘생각의 역사’로 흥미롭게 풀어냈다. 피터 왓슨 지음·남경태 옮김/들녘·4만5000원.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외톨이 인간과 쾌활한 돼지의 우정

〈돼지의 추억〉

〈돼지의 추억〉
〈돼지의 추억〉

당신에게 ‘돼지의 추억’은 어떤 의미인가? 많은 이들에게 그것은 돼지 자체에 대한 추억이라기보다는 탕수육, 삼겹살 혹은 족발의 추억일 것이다. 그렇다. 그들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지만, 어디까지나 ‘고기’의 모습이다. 수만 수억 마리의 돼지는 그저 그들의 ‘맛’으로 인간에게 기억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돼지의 추억>에 등장하는 돼지 크리스토퍼 호그는 더없이 특별하다. 사람들은 그의 쾌활한 성격, 맥주 마시는 습관 그리고 다정한 목소리로 그를 추억한다. 그가 14살의 나이로 자연사했을 때 동네 주민이었던 리즈는 신문사에 부고기사를 부탁하는 편지마저 보낸다.

<돼지의 추억>은 동물학자 사이 몽고메리가 이 특별한 돼지와의 오랜 우정을 ‘추억’하는 책이다. 몽고메리는 오지와 정글을 탐험하며 동물들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학자였지만 인간들과 사교하는 데는 영 뻣뻣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투병으로 힘겨워하던 어느 봄, 몽고메리의 삶 속에는 작은 아기 돼지 한 마리가 들어온다. 너무나 병약해 얼마 살지 못할 것 같았던 그 돼지는 몽고메리와 남편 하워드의 보살핌 속에서 꿋꿋하게 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리고 이 작은 녀석은 몽고메리의 삶에 따뜻한 햇살을 몰고온다.

크리스토퍼는 돼지였지만, 그는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훌륭한 다리였다. 사실 그가 서커스단의 동물처럼 특별한 재주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비교적 똑똑하기는 했지만, 그가 사람들에게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것은 다른 이유였다. 그는 돼지로서 자신의 삶을 즐길 줄 알았다. 왕성한 식욕, 모험의 욕구 등을 억누르지 않고 솔직 담백하게 살아가는 크리스토퍼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대리만족과도 비슷한 기쁨을 선사한다. 사이 몽고메리 지음·이종인 옮김/세종서적·1만1000원. 윤은숙 기자 sug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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