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귀재’ 버핏의 인생을 한눈에
〈워런 버핏과 인생 경영 스노볼 1·2〉
워런 버핏은 오직 스스로의 투자를 통해 수백억달러에 이르는 재산을 모았다는 점에서 분명 ‘투자의 귀재’이다. 2006년 자신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버크셔 해서웨이 주식의 85%를 사회에 기부한 걸 보면 풍운아의 풍모도 느껴진다. ‘투자 자본주의’ 시대, 인기 최절정의 버핏이지만, 의외로 개인적 삶에 대해선 알려진 게 많지 않다. 인생 역정과 정직과 합리성을 두 기둥으로 하는 그의 가치관을 다룬 책은 거의 없다. 어떤 집무실에서 일하는지, 개인 시간에는 뭘 하는지 등 사생활은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버핏은 애널리스트였던 지은이의 보고서를 평소 눈여겨보다 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쓰도록 허락했다. 모든 자료와 무제한적인 인터뷰 기회를 주었다. 버핏의 개방적 태도와 지은이의 노력이 합쳐져, 이 책은 한 인물의 성공 스토리에 멈추지 않고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를 담아내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전후 호경기, 오일 쇼크, 장기불황, 닷컴 거품, 9·11 테러, 그리고 최근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에 이르기까지 미국 경제의 한가운데를 헤쳐온 버핏의 행적은 현대자본주의에 대한 이해로도 연결된다. 버핏은 실제 닷컴 거품을 예견했으며, 금융 파생상품의 위험성을 일찍이 경고했다. 다만, 모두 1800여쪽에 이르는 책의 분량이 문제다. 더 ‘밀도’를 높였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물론 거침없이 읽히고 간혹 디테일이 주는 힘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즐거움이다. 앨리스 슈뢰더 지음·이경식 옮김/랜덤하우스·1권 3만8000원, 2권 3만5000원. 안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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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일곱 빛깔, 그 안의 인간
〈두 생애〉
고통의 신비. 가톨릭에서는 예수의 수난을 이렇게 풀이한다. 끔찍한 십자가형을 통해서야 인간은 ‘신의 사랑’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의 고통에도 이유가 있을 테니 신을 믿고 견디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살육과 폭력이 난무하는 현실은 종종 ‘믿음’만으로 감당하기 힘들다.
“우리는 왜 고통받아야 하는가?” 정찬은 소설집 <두 생애>를 통해 집요하게 묻는다. 총 7편의 단편들 속에서 작가는 폭력과 악 앞에 무기력한 인간의 자화상을 가만히 응시한다. 표제작에서는 화자를 포함한 3명의 삶이 교차한다. 복된 인생을 살았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아버지의 상습적인 폭력에 시달렸으며, 어머니의 시신과 4개월을 살다 발견된 한 소년. 방송 프로듀서인 주인공은 자신 앞에 놓인 두 생애 앞에서 알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그러나 교황의 족적을 따라 그의 삶을 좀더 깊숙이 엿보면서 주인공의 감정은 ‘연민’으로 방향을 튼다. 결국 삶을 지고 가는 우리들 누구도 고통은 피해 갈 수 없다는 깨달음이 마음속으로 흘러든다. 나머지 6편의 작품 속에서도 등장인물의 생은 잿빛으로 얼룩진다. 작가는 구태여 희망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다만 표제작 <두 생애> 마지막에 등장하는 교황의 기도는 작가의 염원처럼 들린다. “주님께 간청드립니다. 부디 저희와 함께하셔서 평화의 언행을 가르쳐주시옵소서. 당신의 피를 흘려 성별하신 세상에 평화를 주시옵소서.” /문학과 지성사·1만원. 윤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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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결핍 채워줄 퍼즐 한 조각?
〈퍼즐〉
연애는 어디서 해야 제 모습을 가질 수 있을까. 애초 방향을 잃은 사랑이 안주해야 할 곳을 묻는다는 점에서 권지예의 소설은 모순적이다. 남편이 있는 애인을 가진 남자, 아들을 낳기 위해 딸을 지워야 했던 여자, 젊은 남자와 바람나 집을 나간 엄마를 둔 딸. 이들은 사랑이란 괴물은 특정 공간에 얌전히, 안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주인공들은 사랑의 충만함과 결핍을 강도 높게 경험한 자들이지만, 여전히 사랑만이 그들의 결핍된 그림을 채워줄 수 있는 퍼즐 한 조각이다. 이들이 과거와 미래는 중요하지 않다는 정념 아래 사랑에 빠져들어갔다면, 사랑이 끝날 무렵 이들은 과거와 미래에 격하게 짓눌린다. 그래서
의 남자는 자살을 하고, <바람의 말>의 여자는 유서를 써둔 채 히말라야로 가고, <딥 블루 블랙>의 주인공은 바닷속으로 뛰어든다. 꺼지기 직전의 불꽃처럼 삶의 생기가 타오르는 순간, 사랑은 제 스스로 불을 끄며 검게 타들어간다.
소설 속 여성들은 뜨겁지만, 이 온도는 다시 결혼 제도 안의 서늘한 현실과 만나 냉랭해진다. 동인문학상 수상작인 <꽃게 무덤> 이후 4년 만에 소설집을 낸 작가는 여전히 경쾌한 듯 힘있는 문장과 풍부한 이미지로 수놓은 필력을 자랑한다. 유독 이번 소설집에서 죽음의 욕망을 기록한 작가는 “멋지게 시간에 저항하는 일이야말로 죽음에 반기를 드는 일”이라고 말한다. 멋지게 저항하는 일은 그렇다면 뭘까. 소설을 읽고 나면 그건 ‘사랑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가혹할 만큼 힘겹기도 하지만 때론 운 좋게 꽤 괜찮은 공간을 찾아 안주하기도 하는. /민음사·1만1000원. 현시원 기자 qq@hani.co.kr
천황제가 승인한 ‘반성 없는 일본’
〈천황제 코드〉
3년 전까지 ‘녹색의 날’로 불리던 일본의 국경일이 있다. 그날은 바로 4월29일, 히로히토 일왕의 생일이다. 침략전쟁을 일삼았던 제국군대 통수권자의 탄생 경축일을 ‘녹색’ 가면 속에 숨겨두었던 셈이다. 일본 정부는 2007년부터 이날을 아예 ‘쇼와의 날’로 바꾸어 부른다. 반성 없는 일본의 모습 뒤엔 이처럼 ‘보이지 않는 코드’가 숨어 있다. 천황제라는 거대한 암호체계 속에. 전후에 미국의 점령군은 효율적인 일본 지배를 위해 천황제 유지를 승인했고 이는 오늘날 일본의 무책임 구조를 낳았다. 지은이는 일본 국민들을 상징천황 지배시스템의 피해자로 본다. 야스쿠니신사, 역사 왜곡, 재일동포와 오키나와·부라쿠민·아이누족에 대한 차별 등 여러 모순을 낳은 뿌리라는 지적이다. “사실 왜곡이 그릇된 주장을 낳고, 때로는 위기극복 차원에서 만들어진 신화 이데올로기의 통치기반이 홀로 걷기 시작하면서 그 주장은 다시 새로운 왜곡을 불렀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왕의 항복 선언이 조금만 빨랐다면 오키나와전쟁의 참상도, 주민들의 강제 집단자살도, 소련의 참전도, 한반도의 분단도 없었을 것이라는 추론은 흥미롭다.
섬뜩한 것은 책을 덮고 난 뒤다. 한글판 위키백과에 들러 ‘쇼와 천황’을 검색해보니 내용이 가관이다. “확인된 것은 없다”면서 넌지시 그가 반전평화주의자일 수도 있겠다는 착각에 빠뜨린다. ‘천황제 코드’가 일본에서만 암약하고 있는 건 아닌 모양이다. 조용래 지음/논형·1만6000원.
최정봉 기자 bong2ne@hani.co.kr
알랭 드 보통이 포착한 ‘일하는 세상’
〈일의 기쁨과 슬픔〉
<일의 기쁨과 슬픔>은 <행복의 건축> <불안> 등의 작가 알랭 드 보통이 ‘일하는 세상’을 관찰하고 쓴 에세이다. “현대 일터의 지성과 특수성, 아름다움과 두려움”을 담으려 물류창고, 비스킷 공장, 취업박람회장 등을 돌며 포착한 것들을 섬세한 통찰을 담아 풀었다. 돈 주고 살 수 있는 물건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그 물건이 지닌 노동의 흔적은 점점 이상하리만치 말끔히 지워지고 있다는 자각은 우선 작가를 물류창고로 이끈다. 노란 지느러미 참치의 본디 모습이 흔적도 남아 있지 않은 참치캔을 보고는 ‘참치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인도양 수면에서 끌어올려져 몰디브 선원의 몽둥이찜질을 당한 뒤 브리스틀 교외의 슈퍼마켓까지 참치가 하는 52시간 여행을 함께 한다. 비슷한 호기심에서 떠난 비스킷 공장 견학에서는 비스킷을 굽는 사람들이 대부분 달콤한 밀가루 반죽, 초콜릿 등 식재료와는 동떨어진 곳에서 일하고 있음을 목격한다. 작가는 “비스킷 굽는 일이 5000명의 삶과 6개 제조 현장으로 확장·분화된 뒤에도 여전히 의미 있나”란 의문을 던지기에 이른다.
“일이 의미 있게 느껴지는 건 언제일까? 우리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의 기쁨을 자아내거나 고통을 줄여줄 때가 아닐까?”란 답은 소박하면서도 울림이 깊다. 작가의 책을 여러 권 번역한 정영목씨는 작가의 글이 이번에도 “문명과 사회에 관한 깊고 은근한 통찰, 그러나 결코 개인 감정의 미세한 움직임과 따로 놀지 않는 통찰들에 이른다”고 평했다. 정영목 옮김/이레·1만5000원. 김일주 기자 pearl@hani.co.kr
친미 인식, 어떻게 만들어졌나
〈변화하는 미국의 공공외교 전략과 한미관계〉
미국에게 한국은 어떤 의미일까? 미국은 자신의 이익을 어떻게 실현시켜왔나? 이런 물음에 답을 얻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봄 직하다. 지은이는 먼저 그 실마리를 미국 공공외교 역사에서 찾는다. 공공외교란 미국의 외교 전략의 다른 이름이다. 타국의 수용자들에게 자국의 문화, 가치 등을 이해시켜 자신의 이해를 관철시키는 방식이다. 이를 위한 양대 원칙은 인적 교류와 비정부기구의 개입이며, 미디어 또한 그 주요 수단이다. 지은이는 미국의 공공외교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는 다름 아닌 ‘인식 정렬’이라고 본다. 인식 정렬은 본디 심리학적 술어다. 지은이는 이를 미국의 공공외교를 분석하는 개념으로 차용하는데, “상대국 국민의 대외 인식을 미리 설정해둔 방향과 내용에 맞게 도달시켜 최종적으로 목표치에 근사하도록 만드는 행위”라고 정의했다. 지난 5월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생전에 “유식한 한국 사람들이 미국 사람들보다 더 친미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 걱정스럽다”고 개탄한 바 있다. 바로 이런 대미 인식은 미국의 공공외교와 이에 따른 인식 정렬에 의해 형성됐다는 게 지은이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한-미동맹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지은이는 이번에는 안보와 시장이란 양대 프레임으로 이를 분석한다. 냉전(안보)으로 인한 1차 미국화와 지구화(시장)로 대변되는 2차 미국화를 겪으며 공고해져 온 한-미동맹은, 바야흐로 구조적 변화기에 처해 있다고 지은이는 진단한다. 이 책의 지은이는 탐사고발 전문기자이자 정치학자인 이상호 <문화방송> 기자다. /시대의 창·1만6500원. 이창곤 기자 go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