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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닫힌 유엔 공용어체제…한국 등 주요국 언어에 문 열어야”

등록 2009-11-26 21:50수정 2009-11-26 21:58

이복남 수원대 교수(오른쪽)가 26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강당에서 열린 한겨레말글연구소 제5차 학술발표회에서 ‘유럽연합 공용어 운용 실태’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이복남 수원대 교수(오른쪽)가 26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강당에서 열린 한겨레말글연구소 제5차 학술발표회에서 ‘유럽연합 공용어 운용 실태’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기존 6개어 옛 패권 반영…변화한 세계 고려할 때
한국어도 인터넷사용자·서적출판 비율 낮지 않아
공용어 23개 쓰는 유럽연합 ‘언어평등주의’ 참고를




유엔·국제기구 공용어 어떻게 늘릴까

나날이 말본새가 거칠어지고 있다. ‘어떠하지 못한 이는 루저’ 따위로 말을 부리는 게 현실이다. 말뜻의 곡절을 떠나 표현 자체가 거칠다. 정체불명의 낱말과 어법이 인터넷과 대중매체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지면서 ‘한국어다운’ 말본은 갈수록 흐려진다.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 실태는 프랑스·영국 등에 견줘 옹색하기 그지없다. 2009년 한국어의 풍경이다. 경제력에서 세계 10위권을 넘보는 나라라고 내세우지만, 한반도와 일본·중국·미국 등 일부 지역의 ‘한인’(전세계 7800여만명)이 쓰는 언어로 쓰임이 갇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참된 ‘한글 세계화’를 위해, 우선 유엔(UN)·국제기구에서 한국어를 공용어로 채택하도록 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26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유엔·국제기구 공용어 어떻게 늘릴까’를 주제로 한 학술발표회(주최 한겨레말글연구소·소장 최인호)가 열렸다.

이날 학술발표회는 ‘한국어(한말)의 유엔 공용어 확대론’ ‘유럽연합 공용어 운용 실태 연구’ ‘국제기구 회의·문서 통·번역 수준과 현실·전망’을 주제로 한 발표와 토론 차례로 진행됐다. 학계 연구자들과 시민 등 40여명이 참석했다.

유엔공용어 진출 방안

첫 발표에 나선 이광석 경북대 교수(행정학부)는 먼저 언어교차 방식을 ‘울타리치기’와 ‘함께하기’로 나눈 뒤 지금의 유엔공용어를 울타리치기로 규정했다. 울타리치기란 언어를 둘 또는 몇몇으로 나누어 차별하는 것을 가리키며, 패권국가의 언어중심주의가 관철되는 것이 유엔공용어 운용의 현실이라고 짚었다. 이와 달리 함께하기란 유럽연합 방식처럼 언어동등주의를 내세워 회원국의 언어 모두를 공존케 하는 틀을 가리킨다. 현재 유엔공용어는 6개로, 영어·프랑스어·러시아어·중국어·스페인어·아랍어다.

이 교수는 유엔공용어가 될 만한 언어를 △모어 사용자의 수 △국제적 영향력과 인지도 △사용 국가 수와 지역 안배 △경제력으로 나눠 분석했다. 모어 사용자의 수는 중국어(표준 중국어)가 8억명을 훌쩍 넘어 가장 많지만, 공용어로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는 언어는 영어로 14억명에 이른다. 인터넷 사용자 수에서도 영어는 전체 누리꾼의 35.2%에 이른다. 하지만 유엔공용어가 아닌 일본어(8.4%)·독일어(6.9%)·한국어(3.9%)·이탈리아어(3.3%) 등의 비율도 상당해, 이른바 주요 20개국(G20)의 언어들이 유엔공용어에 들 만하다고 이 교수는 보았다. 언어별 서적 출판 비율에서도 유엔공용어가 아닌 독일어(11.8%)·일본어(4.7%)·포르투갈어(4.5%)·한국어(4.4%)의 비중이 결코 낮지 않다. 그럼에도 1973년 아랍어가 유엔공용어에 더해진 뒤 체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형편이다. 경제력에 견줘서도 유엔공용어로 듦직한 언어들과 주요 20개국의 차례는 대체로 일치한다.


이 교수는 유엔공용어 확대의 근거로 유엔 개혁의 당위성도 강조했다. 2차 세계대전 뒤 전승국이 패권적 관계를 중심으로 마련한 유엔 체제는 이미 낡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 교수는 “유엔 개혁의 필요성은 유엔 헌장의 효력이 실효되었음을 의미한다”며 “(개혁 문제가 제기되는 지금이) 유엔공용어 논의의 적절한 시기”라고 주장했다. 경제·사회·문화적 관점에서도, 6개 유엔공용어가 형식적으로 동등한 효력을 가진다고 선언한 유엔헌장 111조는 퇴색한 지 오래라는 게 이 교수의 진단이다.

그러면 유엔헌장 개정을 통해, 한국어가 유엔공용어로 들기 위한 현실적 방안은 무엇인가. 이 교수는 “유엔 상임이사국과 유엔공용어의 분리를 통한 진출을 고려할 수 있다”는 제안을 내놓았다. 일본·독일·인도·브라질처럼 상임이사국에 진출하려는 나라들의 요구를 일부 들어주는 대신 유엔공용어를 확대하면서 한국어를 포함하는 ‘주고받기’ 협상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토론자로 나선 김영명 한림대 교수(정치학)는 “국내 언어 환경을 개선하는 작업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되는 듯하다”고 짚었다. 가까운 시일 안에 이루기 어려운 만큼, 부작용까지 고려하면서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유엔공용어와 한국어의 서적 출판 비율 · 자국어 국외 보급 현황
유엔공용어와 한국어의 서적 출판 비율 · 자국어 국외 보급 현황

유럽연합 사례와 통·번역 현주소

유럽연합(EU)의 공용어 운용은 어떠한가. 둘째 발표자인 이복남 수원대 교수(유럽학부)는 유럽연합의 핵심 사안 가운데 하나로 언어평등주의를 수호하는 문제를 꼽았다. 2007년 기준으로 23개 언어가 유럽연합의 공용어로 채택됐지만, 사무국 등에서 쓰이는 실무어는 영어·프랑스어·독일어에 치우친데다 영어의 ‘보편화’ 경향이 특히 거세기 때문이다. 영어가 언어 다양성을 저해하지 않도록 유럽연합에서는 ‘모국어+2’ 정책을 통해 외국어 교육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런 사례를 짚은 뒤 이 교수는 한·중·일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공동체에서 한국어의 위상과 구실을 높이는 문제도 시급하며, 한국인이 국제기구에 많이 진출해야 한다는 제안을 했다. 곽중철 한국외대 교수(통번역대학원)는 토론 자리에서, 23개 언어가 난무하는 유럽연합의 상황이 엄청한 낭비라고 한 뒤 “영어가 국제어의 위상을 높이면서 각국에서 영어 구사자들이 많아지면 장기적으로 유럽연합의 공용어를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은 없는지”를 물었다.

마지막 발표자인 이진영 이화여대 교수(통역번역대학원)는 국내에서 국제회의 통역사가 해마다 10~15명 배출되지만 5~10명이 또한 이탈한다며, 현재 활동하는 인력이 60~70명에 그친다고 밝혔다. 기계 통·번역 또한 기초적 수준이다. 토론 시간에 김순영 동국대 교수(통번역학)는 통·번역사를 위한 제도 마련을 촉구했다. 장기적으로 한국어가 유엔공용어에 드는 ‘그날’이 오더라도, 외국인에게 이를 통·번역할 인력과 역량조차 갖추지 못한다면 ‘요란한 빈 수레’로 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날 참석자들은 민간과 정부가 서로 힘을 보태고, 국내외에서 한글 세계화를 위해 힘써야 한다는 데 뜻을 모으는 것으로 첫걸음을 뗐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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