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대안은 있다!”

등록 2015-08-06 21:01

이봉현의 책갈피 경제
불평등을 넘어: 정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앤서니 B. 앳킨슨 지음, 장경덕 옮김/글항아리 펴냄(2015)

영국 의회에서 매주 수요일 정오에 열리는 ‘총리에 대한 질문’(PMQs)을 <비비시>(BBC) 중계로 지켜보면 ‘정치도 저렇게 하면 재미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며칠 전 페이스북에서 본 영상은 마거릿 대처 총리가 퇴임할 무렵인 1990년 어느 날의 장면이었다.

야당인 노동당 의원이 일어서 영국 사회의 불평등에 초점을 맞춰 대처의 업적을 깎아내리며 따져 물었다. “지난 11년간 상위 10% 계층과 하위 10% 계층의 격차는 매우 커졌습니다. 나 같은 서민들이 79년에 비해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사회적 대우를 받지 못하는 실정을 알고 있습니까?”

대처의 대답은 신랄했다. “의원이 한 말은 마치 ‘부자들을 지금보다 덜 부자로 만들 수 있다면 가난한 사람이 더 가난해져도 좋다’는 말로 들리는군요. 그런 식으로는 우리 사회가 필요한 경제력을 절대 창출할 수 없습니다. (…) 그런 게 바로 진보의 정책인가 보군요. (…) 당신의 그 사회주의 정책을 내가 이를 직접 겪어본 동유럽 사람만큼이나 멸시하고 있다는 걸 아시죠?”

일찍이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는 말로 시장에 대한 ‘신앙심’을 드러낸 대처이기에 현실 사회주의가 허물어져 내리던 1990년의 선택은 자명했으리라. 실제로 지난 30여년은 돈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이 더 부자가 되도록 고무하면 경제의 파이도 커지고 윗목으로도 온기가 퍼져 가난한 사람도 좋아진다는 믿음이 우리를 지배했다.

하지만 이제는 분배와 성장에 대한 생각을 ‘리셋’할 시점에 도달했다. 전세계를 휘감는 불평등과 반복되는 금융위기로 자본주의는 지속가능성이 의심되는 상황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5월에 낸 보고서에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국가에서 최상층 1%가 소유하는 부는 하위 90%의 희생으로 점점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현재의 소득 및 부의 불평등은 다음 세대에게는 출발선의 차별이 되고 사회공동체를 엮어주던 신뢰는 유실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평등에 맞서려는 우리는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정보화, 세계화의 도도한 흐름 앞에 불평등은 숙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앤서니 B. 앳킨스(71) 런던정경대 교수는 <불평등을 넘어>에서 ‘대안이 없다’는 말의 주술을 깨뜨리려 한다.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의 연구에도 큰 영향을 끼친 이 영국인 학자는 불평등을 세계화나 기술변화처럼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힘들의 산물로 보는 것은 주술이라고 말한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하기에 따라 불평등을 늘리는 쪽으로도, 줄이는 쪽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불평등 해소는 우리의 행동에 달렸고 “여기에는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봉현 편집국 미디어전략 부국장
이봉현 편집국 미디어전략 부국장
그렇다고 이 책이 장검을 휘두르듯 시원시원한 해법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불평등을 줄이는 데 단 하나의 정답이 있을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신 작은 손칼을 꺼내 가죽을 벗기듯 정책 대안의 여러 가능성과 득실을 세밀히 서술한다. 지루할 수도 있지만 이게 이 책이 주는 힘이기도 하다. 반세기 동안 불평등 연구에 매진한 노학자는 공정한 미래를 낙관한다. 우리도 힘을 내야 하지 않을까?

이봉현 편집국 미디어전략 부국장 bhl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한드에 일본 배우, 일드엔 한국 배우…흐려지는 ‘드라마 국경’ 1.

한드에 일본 배우, 일드엔 한국 배우…흐려지는 ‘드라마 국경’

‘에미상’ 18개 부문 휩쓴 일본 배경 미드 ‘쇼군’ 2.

‘에미상’ 18개 부문 휩쓴 일본 배경 미드 ‘쇼군’

추위에 쫓겨 닿은 땅…한국인은 기후난민이었다 [책&생각] 3.

추위에 쫓겨 닿은 땅…한국인은 기후난민이었다 [책&생각]

현금다발 든 돼지저금통 놓고 운동회?…‘오징어게임2’ 예고편 4.

현금다발 든 돼지저금통 놓고 운동회?…‘오징어게임2’ 예고편

[영상] 무심한 듯 일어나 ‘삐끼삐끼’…삐걱대는 너만 몰라 5.

[영상] 무심한 듯 일어나 ‘삐끼삐끼’…삐걱대는 너만 몰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