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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피케티가 말하는 불평등의 정치

등록 2018-05-24 19:47수정 2018-05-24 20:32

[책과 생각] 이봉현의 책갈피 경제

애프터 피케티
토마 피케티 외 25인 지음, 유엔제이 옮김/율리시즈(2017)

정치경제학자 토마 피케티(파리경제대 교수)는 18세기부터 현재까지, 20여개국의 조세 자료로 ‘부익부’의 불평등 구조를 밝혀 세계적인 명성을 얻았다. 그는 역작 <21세기 자본> (글항아리)에서 “부의 분배의 역사는 언제나 매우 정치적이었으며, 순전히 경제적인 메커니즘으로 환원될 수 없다”고 했다. 정치가 불평등을 조장하는데도, 치유하는데도 핵심임을 강조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정치가 왜, 그리고 어떻게 부자들 편을 드는 지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 피케티가 다 책임질 일은 아니지만, 이게 없으니 불평등 해소책으로 그가 내놓은 ‘글로벌 자본세’ 방안이 더 공허해 보였다.

<21세기 자본>이 나온 지 3년이 됐을 때, 25명의 전문가가 피케티 현상을 평가한 <애프터 피케티>에서도 정치가 주요한 논점이다. “불평등이 어떻게 정치체계를 바꾸는 지에 대해서는 거의 얘기하지 않는다”(5장) 거나 “경제 불평등과 정치 불평등은 순환 고리에 갇혀 있다 (…) 피케티의 이야기에서 정치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21장) 는 비판이 그것이다. 피케티도 마지막장에서 “언젠가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에 대한 통제권을 다시 획득”하는데 필요한 구체적인 제도의 재구성을 “(21세기 자본에서는) 철저히 검토하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그런 피케티가 근래에 “민주주의가 왜 불평등을 해소하는데 실패하는가”하는 ‘화두’에 집중하는 걸 말해주는 보고서를 읽었다. 올 3월 파리경제대학의 <세계불평등연구소>에서 나온 ‘브라민 좌파 대 상인 우파’ 가 그것이다. 피케티는 최근 세계 도처에서 나타나는 정치의 ‘이상현상’에 주목한다. 즉, 불평등이 지금처럼 심하면 분배 친화적 공약을 제시하는 정당 (전통적으로 진보, 좌파)이 집권해서 이를 완화하는 정책을 펴게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인종주의, 국수주의를 표방하는 극우 포퓰리즘이 발흥해 중도좌파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러스트벨트’ (제조업 쇠퇴 지역)의 백인 노동자 표가 민주당을 이탈해 트럼프에게 간 것도 그런 현상이다.

지난 2014년 9월 서울 중구 프라자호텔에서 이강국 교수와 대담을 벌이고 있는 토마 피케티.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지난 2014년 9월 서울 중구 프라자호텔에서 이강국 교수와 대담을 벌이고 있는 토마 피케티.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피케티는 대답을 찾아 미국, 영국, 프랑스 3국의 선거 데이터를 분석한다. 기간은 출구조사 자료가 남아있는 1948년부터 2017년까지다. 장기간의 변화를 관찰하는 시계열 분석은 그가 불평등 구조 분석에 사용한 방법이기도 하다. 비록 3개국의 선거제도가 다르지만 비슷한 추세가 나타났다. 즉, 주요 좌파 또는 중도좌파 정당이 전통적인 지지층이었던 노동자, 중하류층의 유권자를 더 이상 대변하지 않는 것이다. 대신 좌파정당은 교육을 많이 받은 엘리트(브라민 좌파)를, 우파정당은 수입과 재산이 많은 엘리트(상인 우파)를 대변했다. 정당 정치가 ’다층적 엘리트정당 체제’로 변했다는 것이다.

1950~1960년대에는 경제적 계급에 따라 정당의 지지가 갈렸다. 저소득-저학력 유권자가 좌파 정당을 지지하고, 교육 받고 부유한 유권자는 우파 정당을 지지했다. 좌파 정당이 ‘가방끈’ 긴 지식인층과 결합한 것은 1970년대 이후. 2016년 미국 대선에서는 석사 유권자(전체의 11%)의 70%가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찍었다. 박사 유권자(전체의 2%)의 민주당 지지는 76%로 높아진다. 학사학위를 가진 유권자(전체의 19%)도 절반 이상 (51%) 힐러리를 찍었다. 고졸 유권자(59%)는 44%만이 힐러리를 찍은 것과 대조된다. 고학력자의 진보정당 지지는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비슷하게 관찰된다.

“고등교육을 받은 유권자가 늘어나면서 교육수준이 높지 않았던 종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불평등 분열선과 정치적 분쟁의 양상이 만들어졌다”고 피케티는 말한다. 이렇게 정당 정치가 엘리트에 의해 ‘포획’되다 보니 유권자는 자신을 대변하는 정당이 없다고 느끼게 된다. 최근 조사에서 60~70% 미국인이 자신을 대표하는 정당이 없다는 응답을 한다. 극우는 그 틈을 파고 든 것이다.

이 뿐 아니다. 영국은 예외지만, 2016년 미국 대선과 2017년 프랑스 총선 결과는 ‘엘리트 포획정치’의 또 다른 변이를 보여주는 암울한 소식일 수 있다. 미국에선 소득 상위 10%에 속하는 사람들 중 민주당을 지지한 비율이 높았다. 프랑스에서도 중도 신당 후보인 임마누엘 마크롱을 지지하는 부자가 많았다. 아직 잠정적이지만, 피케티는 전통적인 좌우의 구분이 아니라 고소득-고학력의 ‘세계화주의자’와 저소득-저학력의 ‘반이민주의자’가 대립하는 구도로 정치시스템이 재편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1인1표의 민주주의가 평등한 사회로 이끌 것이란 믿음은 순진하다고 피케티는 말한다. 1950~1970년대의 경제적 평등이 예외였듯이, 20세기 중반에 나타난 계급기반의 정당 시스템도 역사적 국면의 산물이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강남좌파’란 말이 유행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지역, 세대, 문화적 갈등 속에서 보수정당을 찍는 현상이 목격된다.

피케티의 제안은 좌파 정당이 다시 옛 지지자에게 눈을 돌려 불평등을 줄이는 강력한 진보 어젠다를 시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쉽지 않을 것이다. 정치자금, 미디어, 로비 등이 정당을 계속 기득권 엘리트쪽으로 끌고가는 관성을 끊어내는 고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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