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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웩! 썩은 떡이나 먹어라

등록 2016-03-10 19:11수정 2016-12-30 10:15

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멋지다 썩은 떡
송언 글, 윤정주 그림/문학동네 펴냄(2007)

어설프게 송언 선생 흉내를 냈다가 곤욕을 치렀다. 오랫동안 교직에 있었던 동화작가 송언은 수염도 머리카락도 하얗다. 그래서 신학기에 송언 선생을 본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수군거리기 일쑤였다. “우리 선생님은 할아버지야?” 혹은 “우리 선생님이 교장선생님이야?” 궁금해 죽겠는 아이들에게 송언은 ‘선생님은 150살 먹은 도사’라서 그렇다고 말했다. 교사와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 사이에서 벌이는 이런 실랑이가 동화 <멋지다 썩은 떡>에 그려진다.

얼마 전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을 만날 기회가 생겼는데 불현듯 이 동화가 생각났다. 이왕이면 아이들과 친해지고 싶어 “선생님은 원래 거북이였는데, 책을 많이 읽어서 사람이 되었다”고 송언 선생처럼 자기소개를 했다. 한데 그때부터 난리가 났다. 40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모두 들고일어났다. 거짓말하지 말라는 아이, 코딱지로 변하라는 아이, 다시 거북이가 되라는 아이 등등. 베테랑 교사 흉내를 내다 스스로 무덤을 판 꼴이었다. 황망하게 돌아와 <멋지다 썩은 떡>과 <잘한다 오광명> 등 송언 선생의 책을 다시 읽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제대로 읽었더라면 아이들이 어떻게 나올지 충분히 짐작했을 거라고.

올해 처음 자녀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초보 학부모가 있다면, 송언 선생의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그야말로 손에 잡힐 듯 그려진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작가는 아이들과 겪은 갖가지 일들을 학급일기로 10여 년 동안 적어왔고, 그 이야기들이 다시 동화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동화 속 털보 선생은 새 학기 첫날 아이들이 앉아 있는 것만 척 봐도 안다. 누가 말썽꾸러기인지 누가 얌전이인지. 물론 말썽꾸러기들이 동화의 주인공이다. 슬비나 광명 같은 아이들이다. 슬비가 썩은 떡이 된 사연은 재미난다. 하루는 슬비가 잘난 체하는 희수에게 수학 문제를 물어봤더니, 바쁘다며 알려주질 않았다. 화가 난 슬비가 “밥 먹을 시간도 빵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쁘냐”고 묻자 희수가 “떡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쁘다”며 신경질을 부렸다. 이 말에 지지 않고 슬비는 희수에게 “웩! 썩은 떡이나 먹어라”고 했다가, 친구에게 욕을 한 벌로 그날부터 ‘썩은 떡’으로 불리게 되었다.

광명이도 잊을 수 없는 아이다. 광명이는 ‘선생님 말씀 안 듣고 날마다 공부 안 하고 아무 아이하고나 싸우는 그래서 특별히 조심해야 하는 아이’다. 하지만 털보 선생은 광명이를 만나자마자 덥석 끌어안는다. 그리고 “오늘부터 선생님이 말썽쟁이 광명이랑 친구 해야겠다”고 선언한다. 황 반장 모르게 과자나 사탕을 주며, 둘만의 비밀을 만든다. 또 광명이는 나중에 멋진 어른이 될 거라고도 말해준다.

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광명이와 썩은 떡의 이야기를 읽으며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그중 몇 단락은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읽어주기도 했다. 세상에서 쓰기 힘든 것 중 하나가 저학년 동화라고 믿고 있다. 어른 작가가 순전한 어린이로 돌아갈 수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송언의 동화는 발달심리를 다룬 어떤 이론서보다 어린이의 마음을 제대로 그려낸다. 초등 1~2학년.

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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