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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매력있는 보수는 가능한가?

등록 2016-09-01 19:11수정 2016-09-01 21:17

이봉현의 책갈피 경제
시장의 철학
윤평중 지음, 나남(2016)

한국에서 ‘보수’는 혼탁해진 단어이다. 역사적으로 친일, 정치적으로 독재, 경제적으로 독점(재벌)의 ‘교집합’들이 그간 보수를 칭했다. 변변한 전통도 명예도 없는 이들에게 시민들은 “대체 무얼 지키자는 보수냐?”고 묻는다.

‘헬조선’은 이들 보수가 주도해온 한국 사회의 현주소다. 새로운 기운으로 나라가 서려면 보수의 혁신이 절실하다. 합리적인 보수가 있어야 진보도 정신차리고 유능해진다. ‘경제민주화’란 말의 저작권을 가졌다는 김종인, ‘정의로운 보수’를 내세우는 유승민 등이 새로운 보수를 얘기한다. 하지만 아직은 그 세가 약해 보인다.

보수는 기본적으로 시장주의자들이다. 인간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극대화하는 시장원리를 신념화한 사람이 보수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시장의 효율성 못지않게 정의와 공정, 공평성을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수구에 가까운 기존 보수로는 이러한 시대정신을 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자칭 보수는 시장과 국가를 대척점에 놓은 뒤 효율이란 가치 하나로 모든 문제를 재단했고, 정의의 원리가 지배하는 영역인 정치(민주주의)를 끊임없이 ‘다운사이징’(왜소화)해왔다. “규제완화”, “비즈니스 프렌들리”의 이름 아래 편법 세습, 하청업체에 대한 갑질이 벌어졌고, 국가의 정당한 시장규제는 정권과 공무원의 낙하산과 관치로 치환하는 등 많은 것이 ‘뒤죽박죽’이었다.

윤평중 교수의 <시장의 철학>은 경제위기, 불평등의 확대로 의심받게 된 시장의 정당성을 되살려, 시장원리가 정의와 공정, 공화주의와 민주주의까지 포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려는 철학적 시도이다. 먼저 역사적으로 근대의 두 축인 시장주의와 민주주의가 변증법적으로 상호침투하며 발전해왔음을 상기시킨다. 성공적인 시장을 위해서는 △원활한 정보의 흐름 △재산권 보호 △구성원간 신뢰 △제3자에 대한 부작용 최소화 △경쟁의 장려 같은 조건이 필요하다.(<시장의 탄생>, 존 맥밀런 지음, 민음사, 2007) 즉 합리적 교환과 정직한 상거래 관계, 근대적 직업윤리의 ‘시장 정신’과 조응해 참여하고 책임지는 시민정신이 커왔고 법치주의가 확립됐으며 사회적 신뢰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요소인 의사소통 행위도 마찬가지다. “과학적 사실과 합리성에 대한 존중, 토론과 숙의민주주의의 착근도 자유시장의 본질적 덕목인 창조적 파괴나 혁신 정신과 큰 틀에서 궤를 같이한다”고 윤 교수는 짚었다.

경쟁의 출발과 경쟁 과정에서의 공평성 확보, 합당한 격차의 인정과 사회적 약자 보호 같은 공정의 원리 역시 일견 시장질서와 대척점에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 이 둘도 갈등하고 상호작용을 일으키며 발전해왔다. 그런 점에서 시장의 자유를 말한 헌법 119조 1항과 경제민주화를 말한 119조 2항은 함께 있을 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논지다.

보수의 혁신은 신자유주의의 미명 아래 한참 빗나간 시장의 정신을 복원하는 일이다. 자유롭고 정의로운 시장이 민주주의와 밀고 끌어주는 프로젝트를 보고 싶다.

이봉현 편집국 미디어전략 부국장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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