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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그때도 앞이 안 보였다

등록 2017-02-23 18:45수정 2017-02-23 20:09

이봉현의 책갈피 경제
불확실성의 시대
J.K.갤브레이스 지음, 원창화 옮김/흥신문화사(2015)

베스트셀러는 ‘사회현상’이라고 했다. 미국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가 1977년 <불확실성의 시대>를 펴낼 때, 두 달 만에 34쇄를 찍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이 책이 건드린 것은 당시 사람들 마음속에 커가던 ‘불안’이었다. 세상을 설명하던 원리가 더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당혹감, 그래서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불안 말이다.

2차 대전 뒤 자본주의는 30여년간 유례없는 ‘황금기’를 노래했다. 케인스 경제학은 그 원리와 처방으로 명확해 보였다. 하지만 ‘오일쇼크’ 이후 이러한 확실성이 깨져 나갔다. 이론상 시소 관계여야 할 실업과 물가상승이 함께 나타나(스태그플레이션) 오래 지속됐다. 돈줄을 풀 수도, 죌 수도 없어 정책은 무력해졌다. 사람들의 표정은 긴장과 불만으로 어두워져 갔다. 베트남전 패배, 중국과 수교협상, 소련과의 공존(데탕트) 무드 등으로 명확했던 동서냉전 구도에도 변화가 왔다.

갤브레이스는 “과거처럼 확신에 찬 경제학자도, 자본가도, 사회주의자도 존재하지 않는” 그런 상황을 ‘불확실성의 시대’라 이름 지었다.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다시 그런 시대다. 1980년대 이후 나름 ‘확실한 답’이라며 등장한 통화주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패키지는 금세기 들어 전 지구적 경제위기와 빈부 격차를 남기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어느 ‘현자’도 새 시대의 원리를 들고나오지 못하는 가운데 영국의 브렉시트,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서 보듯 각자도생이 원리가 되고 있다.

그렇다고 갤브레이스가 ‘앞이 안 보인다’는 푸념을 하려고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다. 반대로 그가 애덤 스미스에서 케인스에 이르기까지 200년에 걸친 경제, 사상사를 정리하면서 하려는 말은 ‘불확실성은 언제나 있었지만 인간의 지성은 늘 해답을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갤브레이스는 “해결이 곤란한 문제는 있다 하더라도 극히 드물다. 곤란이 있다면 그것은 문제와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는 점에 있다”고 말한다. ‘부의 재분배가 답이지만 세금은 올려선 안 된다’거나 ‘전쟁은 반대하지만 참전은 어쩔 수 없다’는 어정쩡함이 그가 말한 문제 회피이다.

갤브레이스는 스위스의 직접 민주주의를 언급하며 주체적 시민의 역할에 주목했지만, 지도자의 결단 역시 위기 극복의 요체로 강조했다. 그는 “위대한 지도자에게는 하나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그것은 그 시대 국민의 주요한 불안과 정면으로 대결하려는 마음가짐이다”라고 말한다. 1930년대 대공황의 불확실성을 돌파한 루스벨트 대통령의 경우, “자신의 온갖 정력을 당시 경제적 재앙을 타개하는 데 집중했다. 그는 할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든 했다. 거기에 변명 따위는 없었다”고 평가한다. 이런 결단이 “(인상만 좋지) 대통령이 되기 위한 중요한 자격 같은 것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언론인 월터 리프먼의 평가) 그를 인정받는 지도자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정치에 참여하는 국민, 난관에 정면으로 맞서는 지도력이 이 시대에 드리운 불확실성을 자신감으로 바꿀 것이다.

이봉현 편집국 미디어전략 부국장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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