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미투는 왜 ‘미완의 혁명’인가

등록 2019-02-15 06:00수정 2019-02-15 19:52

‘고발 자격’ 따져묻는 남성중심 사회
‘성적 자기결정권’ 개념 오용하거나
‘비트랜스여성’ 대상 폭력만 보기도
가해 처벌 넘어 ‘미투 이후’ 고민할 때
미투의 정치학
정희진 엮음, 권김현영·루인·정희진·한채윤 지음/교양인·1만2000원

“일반 국민으로서 냉정하게 판단해봅시다. 절대 공감하는 미투(는) 심석희, 서지현 검사님. 절대 공감하지 않은 미투(는) 양예원, 김지은”(gwan****).

지난 7일 ‘비공개 촬영회 성폭력’ 기사에 달린 한 포털사이트의 댓글이다. 이 글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존재와 지위, 섹슈얼리티를 타자가, 주로 남성이, 얼마나 쉽게 재단하고 규정지을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남성이 여성의 가치를 정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들은 “자신들의 이해에 따라 ‘보호해야 할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을 구별할 수 있는 권력을 지니며 이를 통해 여성을 통제”(정희진)할 수 있다는 사실도 재확인해준다. 해당 기사에 달린 1000개가 넘는 댓글 가운데 이 글은 4000회가 넘는, 가장 많은 공감을 받았다.

실제로 미투 운동이 1년 넘게 이어지는 동안 사회는 고발자의 자격을 끊임없이 구분하고 선별하는 작업을 해왔다. 대개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의 행위가 일상과는 거리가 먼 폭력성을 띨수록 피해 생존자들에겐 ‘마땅히 고발할 자격’이 부여됐다. 성폭력을 일부 비정상적인 사람들의 일탈로 축소하고 분리할 수 있을 때 오랜 시간 공고해진, 그리고 현존하는 남성연대가 계속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의나 평등을 부르짖었던 진보 남성 정치인들의 민낯이 드러났을 때 이 연대는 성폭력을 “큰일 하는 남자의 사생활 문제”, “좌절된 사랑 때문에 생긴 복수”(권김현영) 정도로 치부함으로써 불균형한 권력 구조에 눈을 감는 걸 가능하게도 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2심 선고 공판을 방청하려던 여성들이 지난 1일 오후 서울고등법원 들머리에서 경찰에 제지 당하자 법원을 향해 ‘유죄’라고 쓴 ‘레드카드’를 들어보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2심 선고 공판을 방청하려던 여성들이 지난 1일 오후 서울고등법원 들머리에서 경찰에 제지 당하자 법원을 향해 ‘유죄’라고 쓴 ‘레드카드’를 들어보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남성중심적인 사회가 허락한’ 자격을 갖추고 미투가 가능한 고발자들은 얼마나 될까. 과연 가정폭력 피해자나 성 산업 종사자들이 겪는 폭력도 미투에 수용될 수 있을까.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남성 사회가 관심을 두는 것은 피해자의 고통이나 인권 침해가 아니라 해당 사건이 남성 사회에 얼마나 타격을 주는가”(정희진)란 점을 고려하면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미투 운동이 보여준 건, 여성에 대한 일상적인 폭력 중 극히 일부일 뿐이다. 여론도, 법정도, 가해자 대신 피해 생존자에게 “목숨을 건 저항이 얼마나 단호하고 절절했는지, 특히 자신이 얼마나 피해자다웠는지 최대한 증명”(정희진)하라고 요구하는 현실은 무수히 많은 폭력을 비가시화하는 데 힘을 보탠다.

미투 운동이 여성에 대한 폭력 전반을 고발하는 방향으로 확장해 나가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은 또 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1심 재판부가 그랬듯, ‘성적 자기결정권’이란 개념조차 “자신의 삶을 자신의 의지대로 꾸려나가는 자율적 주체임을 존중받는 것”(한채윤)이 아닌 ‘정조를 지킬 의무’의 연장선에서 파악할 정도로 빈약한 성인지 감수성이다. 최근 일부 페미니스트들조차 트랜스젠더와 동성애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와 배제를 주장하는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여성 범주 내에서도 다양한 권력이 작동하고 착취와 억압이 작동”함에도 불구하고 젠더와 폭력의 관계를 다루는 논의의 대부분이 “비트랜스여성만을 대상으로 삼는”(루인) 현실 인식은 트랜스젠더퀴어처럼 또다른 소외자를 만들어낸다. 배제는 폭력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투 너머’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폭력을 고발할 자격은 누가 부여하는가. 어째서 어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젠더 폭력’이 되고 어떤 여성에 대한 폭력은 그렇지 않은가. 그 가름의 기준은 무엇인가. 남성에겐 전혀 없는 정조 관념이 여성에겐 왜 계속 적용되는가. 왜 위력에 의한 폭력 피해자가 남성이면 노동 문제가 되고, 여성이면 성적인 문제가 되는가. 공동체의 안전과 성숙, 진보를 위해서 남성 중심적인 문화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이때 남성의 역할은 무엇인가.

미투가 ‘미완의 혁명’인 건 한국 사회가 아직 이러한 질문에 마땅한 응답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방향의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가. 권김현영·루인·정희진·한채윤이 꾸린 연구모임 ‘도란스’의 네번째 책 <미투의 정치학>에 그 힌트가 담겼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친애하는 한강, 나와주세요”…노벨상 시상식, 한국어로 부른다 1.

“친애하는 한강, 나와주세요”…노벨상 시상식, 한국어로 부른다

“생수도 없고”…이시영, 아들 업고 4000m 히말라야 등반 2.

“생수도 없고”…이시영, 아들 업고 4000m 히말라야 등반

성인용품 팔고, 국극 배우 꿈꾸고…금기 깬 여성들 그린 드라마 열풍 3.

성인용품 팔고, 국극 배우 꿈꾸고…금기 깬 여성들 그린 드라마 열풍

김재중X김준수, 16년 만의 ‘동방신기’…가수도 관객도 울었다 4.

김재중X김준수, 16년 만의 ‘동방신기’…가수도 관객도 울었다

박찬욱이 영화화 고민한 노벨상 작가 소설…박정민에 힘을 준 책 5.

박찬욱이 영화화 고민한 노벨상 작가 소설…박정민에 힘을 준 책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