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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검사가 욕했다, 성폭행 하려던 남자 깨문 내가 가해자라고”

등록 2023-06-01 06:00수정 2023-06-02 08:40

인터뷰ㅣ‘56년 만의 미투’ 최말자씨
“검사는 ‘남자 불구 됐으니 책임’ 판사는 ‘결혼해’”
전형적 2차 가해…사건보다 검찰·법원에 더 분노
재심 개시 촉구 탄원서 1만5685명 온라인 서명
지난 15일 오후 부산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만난 최말자씨가 대법원이 재심을 개시해야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사진 채반석 기자
지난 15일 오후 부산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만난 최말자씨가 대법원이 재심을 개시해야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사진 채반석 기자

“재심 청구 기각 이유가 너무 화가 난다. 곱씹어 읽어 보려고 직접 썼다.”

지난 15일 부산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은발의 여성이 가방에서 종이 한장을 꺼냈다. 종이 앞면 가득 펜으로 쓴 글의 제목은 ‘이 사건 재심 청구, 기각, 이유’다.

2021년 부산지방법원이 그의 재심 청구를 기각하며 쓴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청구인에 대한 공소와 재판은 반세기 전에 오늘날과 다른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이뤄진 일이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하여 사회문화 환경이 달라졌다고 하여 당시의 사건을 뒤집을 순 없다.’

“반세기 전에 일어난 일이니 재심을 열 수 없다고 한다. 나를 조롱하는 것만 같다.” 그는 법원에 대한 분노를 터뜨리며 자신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두세 차례 내리쳤다. 그는 자신을 성폭행하려는 남성의 혀를 깨물어 절단했다는 이유로 ‘가해자’가 된 최말자(77)씨다.

최씨는 31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 재심 개시를 촉구하는 탄원서를 냈다. 그는 자필로 쓴 탄원서에 “국가로부터 받은 폭력은 제 삶을 평생 죄인이라는 꼬리표로 저를 따라다녔다”며 “재심을 다시 열어 명백하게 피해자와 가해자를 다시 정의하고 정당방위를 인정하여 구시대적인 법기준을 바꿔야만 여성 성폭력 피해자들이 성폭력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며 더이상 성폭력이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최말자씨가 대법원에 제출한 자필 탄원서. 한국여성의전화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최씨가 법원에 재심 개시를 촉구하는 자필 탄원서를 제출한 날, 1만5685명의 시민들이 최씨의 정당방위를 인정해달라며 온라인 서명에 동참했다. 또 부산에 사는 최씨를 대신해 지난 3~30일까지 19명의 여성들이 대법원 앞에서 최씨의 재심을 촉구하는 릴레이 1인 시위를 이어왔다.

최씨는 이런 연대의 손길에 대해 “여기까지 오게끔 해줘서 정말 너무 고맙다”며 “내가 무엇을 어떻게 보답을 할 수 있을지, 죽을 때까지 숙제”라고 말했다.

최씨는 이른바 ‘김해 혀 절단 사건’의 ‘가해자’다. 18살이던 1964년 5월6일, 최씨는 자신을 성폭행하려는 남성 노아무개씨(당시 21살)에게 저항하다가 남성의 혀를 깨물어 절단한 혐의(중상해)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받았다.

최씨를 성폭행하려던 노씨는 고작 징역 6월형(집행유예 1년)을 받았다. 강간 미수 혐의는 적용되지 않고, 혀가 잘린 뒤 최씨의 집으로 찾아와 칼을 들고 행패를 부린 혐의(특수협박·특수주거침입)만 인정된 것이었다. 검찰과 법원은 최씨를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사건 발생 56년 만인 2020년 5월, 최씨는 법원의 판단을 바로잡으려 재심을 청구했다. 하지만 부산지법과 부산고법은 이를 기각했다. “(최씨의) 무죄를 인정할 만한 새로운 증거가 없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경찰은 정당방위라고 했는데, 검찰은 나를 가해자로 뒤집어씌우고, 가해자가 성폭력을 저지른 걸 쏙 빼버렸다. 판사는 내게 유죄를 선고했다. 이건 법대로 한 게 아니라 자기들 마음대로 조작한 것이지 않나.” 최씨가 또다시 가슴팍을 내리치며 말했다.

최씨를 가장 분노케 하는 대상은 검찰과 법원이다. 검사는 오히려 최씨를 가해자로 몰았다. 최씨는 “조사 당시 검사는 ‘남자를 불구로 만들었으면 책임져야지’라고 내게 윽박질렀다”며 “‘나는 잘못한 게 없다’고 말하고 눈을 감았을 뿐인데, 검사는 ‘눈을 감았다’고 욕을 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이때를 생각하면 억울한 마음에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판사도 다르지 않았다. 1964년 10월22일 〈부산일보〉가 보도한 결심 공판을 보면, 재판장은 최씨를 향해 “피고와 결혼해서 살 생각이 없냐”고까지 물었다. 성폭력 피해자를 향한 전형적 ‘2차 가해’다.

재판부는 당시 판결문에서 “소리를 지르면 주위 집에 들릴 수 있었다” “범행현장까지 따라나섰다”며 최씨에게 탓을 돌리기도 했다. 재판부는 최씨의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고 “(가해자인 노씨를) 일생 말 못 하는 불구의 몸이 되게 했다”며 최씨에게 죄를 물었다. 최씨는 이 일로 6개월여 동안 구금됐다.

“1월 밤중에 출소하는데, 대기실에 아버지가 혼자 있었다. 구속 당시 입었던 옷과 고무신으로 갈아입었다. 한 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또 5리를 걸어 집에 갔다. 아버지가 두부를 줬던 것 같은데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모르겠다. 그때를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고 최씨가 말했다.

약 60년 동안 억울한 세월을 보내 온 최말자씨는 가슴속 화를 다스리려 그림을 그린다. 최말자씨 쪽 제공
약 60년 동안 억울한 세월을 보내 온 최말자씨는 가슴속 화를 다스리려 그림을 그린다. 최말자씨 쪽 제공

‘그날’ 이후 지금까지 최씨를 지배해온 감정은 “억울함”이다. 최씨는 사건에 대해 부모와 형제, 친구 누구와도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1988년, 한 여성이 성폭력 가해자의 혀를 깨물어 절단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그 피해자가 정당방위를 인정받아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을 때도 최씨는 함구했다. “혼자 담고 있다가 죽기에는 너무 억울하고 분했다.” 최씨가 재심 청구를 결심한 이유다.

최씨는 “재심을 청구하려고 준비하면서 유죄 판결문을 처음 봤다”고 했다. 그는 “뒤늦게 판결문을 보니 대성통곡할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며 “어떻게 국가가 나를 가해자로 만들 수가 있느냐. 사건 당시보다 이 판결문을 보고 더 억울하고 화가 났다”고 말했다.

최씨는 2020년 재심을 청구하며, 1964년 재판부의 판단과는 달리 노씨에게 언어 구사 능력이 있었고, 검찰이 구속영장을 제시하지 않은 채 구속한 점 등을 사유로 들었다. 재심 여부를 결정하는 데 핵심인 ‘새로운 증거’로 노씨가 중상해를 입지 않았다는 점을 든 것이었다.

최씨는 “불구가 됐다는 가해자는 신체 1등급으로 군대도 가고, 결혼해 자녀도 낳았다”며 “나의 행동은 성폭행을 피하기 위한 정당방위였고, 가해자는 중상해를 입은 게 아니었으니 재심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많은 여성들의 따스한 연대와는 무관하게,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일상 속에서 불쑥불쑥 살아나 최씨를 괴롭힌다. 최근엔 복지관에서 만난 한자 선생님의 이름이 가해자와 같아서 너무 놀랐다. 분한 마음이 잘 다스려지지 않아 이따금 숨쉬기가 어렵다.

어떤 날은 가슴에 불이 올라 얼음을 집어삼킨다. 최씨는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집 근처 산에 올라 가슴을 치며 분을 토해낸다. “소리를 지르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으니까, 그냥 가서 가슴을 친다. 건강히 살아 있어야 계속 싸울 수 있지 않겠나.”

최씨는 2년 전부터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의 한 활동가한테서 그림책을 선물 받은 게 계기다. 꽃 그림을 그리면 마음이 좀 편안해진다. 얼마 전엔 부산의 한 평생학습관에서 열린 전시회에 최씨가 색연필로 그린 꽃 그림이 전시되기도 했다.

빨간색 꽃을 가장 좋아하지만, 색연필 길이는 잎을 칠하는 초록색 계열이 가장 짧다. 초록색 잎들이 노란색으로 바뀌기 전, 최씨는 대법원으로부터 원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국가가 내 인생을 180도로 바꿔놨다. 제발 바로잡아 달라.”

다음은 최말자씨가 대법원에 제출한 탄원서 전문

대한민국의 검사는 헌법을 토대로 남여의 평등과 인간 존엄을 근본으로 삼아 죄를 구별하고 그에 대한 법을 내려야 합니다.

그러나 나의 사건에서 검사는 엄연한 성폭력 피해자를 과인(과잉) 저항이라고 오히려 가해자를(로) 만들어 감옥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2021년 부산지방법원은 “본 사건이 당시의 시대 상황에 따른 어쩔수 없는 판결이었다”는 실로 부끄러운 변명으로 재심청구에 대한 항소를 기각했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재판이 시대 상황에 따라 피해자가 가해자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법원은 내 사건과 같은 재판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올 수 있다는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법의 체제를 스스로 인정했습니다. 1964년 사건 당시 아버지는 농사만 지을 줄 아는 무지한 농부였고, 저는 18살 아무것도 모르는 미성년이었습니다. 누구도 나를 지켜줄 수 없었고 검사의 일방적인 폭언, 압박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경찰에서는 수사를 통해 성폭력 피해 사실을 밝혔고 무죄로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그러나 검사들은 성폭력 피해 사실을 빼고 성폭력 피해 사실이 빠진 나의 사건은 고의로 멀쩡한 남자의 혀를 자른 중상해죄를 씌워 감옥으로 보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 것도 아니고 여러 사람의 힘이 필요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시 시대적인 상황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일일 뿐이었습니다. 그 결과 미성년의 18세 성폭력 피해 소녀는 6개월 12일 동안 감옥에 보내졌고,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판결을 받았습니다.

판결을 받고 석방 당시의 심정은 땅바닥에 주저않아 대성통곡을 해야 했지만 어두운 밤, 구속 당시 입었던 옷을 입고 들판과 산길을 아버지 뒤를 따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사건은 전혀 사소하지 않았습니다.

국가로부터 받은 폭력은 제 삶을 평생 죄인이라는 꼬리표로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꽃도 피워보지 못한 그 소녀의 삶은 평생을 살면서 억울했고 분노하게 했습니다. 56년 만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고, 항소 역시 기각되어 할 말을 잊고(잃고)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대법원 역시 3년이란 시간이 흘러가고 있지만 답변을 주지 않아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단시 시대 상황에 어쩔 수 없는 판결이었다는 부끄러운 변명이 아니라 억울한 판결로 한 사람의 인생이 뒤집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제라도 정의로운 판단으로 책임져야 합니다.

그래서 땅에 떨어진 재판부의 명예를 회복하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한국여성의전화, 그리고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의 격려와 응원 덕분이기도 합니다.

너무 긴 시간에 몸이 지치다보니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후손들을 떠올리면서 지금 바로 잡지 못하면 이런 일이 또 되풀이 될 것이고, 성폭력 피해 여성들은 더 늘어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사건의 재심을 다시 열어 명백하게 피해자와 가해자를 다시 정의하고 정당방위를 인정하여 구시대적인 법 기준을 바꿔야만 여성 성폭력 피해자들의 성폭력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며 더 이상 성폭력이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국가는 나의 인권에 대한 책임을 보상해야 합니다.

부산/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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