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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뒤틀린 욕망의 배설구, 클럽 아레나

등록 2019-04-11 10:58수정 2019-04-11 20:38

강남의 대표 클럽 아레나 해부
직접 경험 토대로 생생히 기록
‘외모’와 ‘돈’이 가장 중요한 기준
감춰진 욕망 날것으로 드러내
클럽 아레나
최나욱 지음/에이도스·1만2000원

빅뱅의 멤버 승리(29·본명 이승현)가 운영에 깊숙이 개입한 ‘버닝썬’에서 시작된 서울 강남 클럽들의 여러 범죄 의혹이 옮겨붙어 ‘클럽 아레나’도 지난달 7일 내부 수리 등을 구실로 폐업에 들어갔다. 아레나의 실소유주는 탈세 혐의로 구속됐다. 2014년 문을 연 뒤 아레나는 ‘애프터 클럽’(다른 클럽들이 문을 닫는 시간에 문을 열어 오전까지 영업)의 대표 주자로, 출근 시간이 지나서까지 ‘광(狂)질’을 이어가는 클럽이었다.

최나욱(25) 작가는 강남 클럽과 클럽 문화를 다루기 위해 아레나를 선택했다. 아레나가 “외모 지상주의와 배금주의 같은 속물적 문화의 극단적 수위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동시대 문화를 잘 드러내는 트렌디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버닝썬 사건으로 강남 클럽에 대한 사람들이 관심이 커지기 한참 전 준비했던 기획으로 지난해 이미 <클럽 아레나>의 원고를 다 썼다고 한다. 그는 “아레나를 통해 오늘날의 클럽 문화를 기록하고, 여기에서 벌어지는 행동 양식과 문화 요소를 통해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숨겨진 면모를 이야기해 보는 것”이 책의 목표라고 말한다.

클럽 아레나의 내부 모습. 에이도스 제공
클럽 아레나의 내부 모습. 에이도스 제공
강남구 논현동 18-2 렉스관광호텔 지하에 있는 아레나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좁은 문은 일부러 찾아야 보이는 정도다. 옥외 간판도 없다.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대로 지나가라”는 식이다. 입장 기준은 ‘외모’이지만, 가드는 돌려 말한다. “저희와 스타일이 맞지 않으세요.” ‘수량’과 ‘수질’을 제어한다. ‘예쁜 여자’와 ‘잘생긴 남자’를 돈을 주고 초대하곤 했다. “그러잖아도 좁은 공간을 ‘물 좋게’ 채워둠으로써 얼마 남지 않은 공간에 들어서기 위한 사람들을 줄 세우는 전략이다.” 음악에 따라 지하 2층 ‘일렉존’과 지하 1층 ‘힙존’으로 나뉜다. 가난한 배우, 모델 지망생들은 힙존에, 재력을 자랑하는 30대가 일렉존에 몰린다. 내부는 비좁고 낙후했다. “클럽 아레나를 정의하는 건 건축 공간이나 ‘아레나’라는 타이틀 혹은 장소성이 아니라, 그곳을 채우는 사람들과 분위기다.”

클럽 아레나에서 술을 주문하면 술병에 불꽃을 부착해 가져다 준다. 일부는 ‘돈 자랑’을 하기 위해 마시지도 않는 술을 계속 시켜 불꽃행렬을 만든다. 에이도스 제공
클럽 아레나에서 술을 주문하면 술병에 불꽃을 부착해 가져다 준다. 일부는 ‘돈 자랑’을 하기 위해 마시지도 않는 술을 계속 시켜 불꽃행렬을 만든다. 에이도스 제공
내부에선 ‘신분 구도’가 명확하다. 테이블 게스트와 스탠딩 게스트로 나뉜다. 테이블은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한 손님이 원하는 자리를 차지하는 경매 방식으로 예약한다. “남녀 스탠딩 게스트들이 각자를 ‘동적 자산’으로 치장하듯, 아레나에서의 테이블은 ‘부동산’과 다름 없다. 수백만,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자릿세가 1평짜리 공간에 대한 임대료다.” 가장 눈에 띄는 조명은 주문한 술을 가져다줄 때 술병에 부착한 불꽃이다. “수십 개의 술병에 불꽃을 꽂아 지나가는 모습을 술 이름을 본떠 ‘아르망디 열차’ ‘돔페리뇽 열차’라고 부른다.” 일부는 ‘돈 자랑’을 하기 위해 마시지도 않는 술을 계속 시켜 불꽃 행렬을 만든다. “누가 5천만원어치 주문을 하면, 이에 질세라 6천만원, 7천만원을 주문한다. 이 경쟁은 2017~2018년 비트코인 열풍이 불던 시기에 유행했다.”

클럽 아레나에서 술을 주문하면 술병에 불꽃을 꽂아 가져다 준다. 일부는 ‘돈 자랑’을 하기 위해 마시지도 않는 술을 계속 시켜 불꽃행렬을 만든다. 에이도스 제공
클럽 아레나에서 술을 주문하면 술병에 불꽃을 꽂아 가져다 준다. 일부는 ‘돈 자랑’을 하기 위해 마시지도 않는 술을 계속 시켜 불꽃행렬을 만든다. 에이도스 제공
테이블 게스트는 “인형 뽑기하듯 이성(여성)들을 끌어올린다.” 탁자에 올라가 춤을 추고 폼을 잡으며, 돈으로 산 ‘신분’을 뽐낸다. “돈을 냈으니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천민자본주의가 발동하고 자리 없이 돌아다니는 스탠딩 게스트들을 무턱대고 건들고 만지는 인간 사물화가 진행된다.” 폭력·성범죄 등의 사건은 테이블 게스트 쪽에서 일어난다.

책은 홍대 및 이태원 클럽과 강남 클럽의 차이, 아레나 주변 지역의 특징 등을 살피고, 테이블 예약과 ‘입밴’(입장과 거부를 뜻함) 정책, 남녀관계, 운영시간 등 아레나의 작동시스템을 설명한다. 아레나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음악, 춤, 패션, 술과 함께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다룬다. “이른바 ‘광질’이라고 불리는 이곳에서의 몸짓은 춤이라기보다는 퍼포먼스라고 부르는 편이 알맞아 보인다.” 남들에게 ‘과시’하는 걸 목적으로 한다.

지은이는 “흔히 사람들은 클럽을 배격하고 타자화하지만, 일련의 행동들은 단지 일탈 공간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일상에서도 존재한다. (…) 클럽 아레나는 몇 년 동안 유별난 인기를 누린 유흥 공간으로서 한국 사회를 어느 정도 설명해주는 장소일 수 있지 않을까?”라고 묻는다. 이면의 욕망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는 공간이 아레나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지은이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아레나에서 직접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책을 썼다”며 “20대 남성으로서 편견이 있을 수 있어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의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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