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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우리의 아제국주의적 태도에 관하여

등록 2020-09-11 04:59수정 2020-09-11 10:16

[책&생각] 전성원의 길 위의 독서

동남아 문화 돋보기: 예술, 종교, 문화 유산으로 즐기고 느끼고 생각하는 동남아 문화 이야기

박장식 엮음/눌민(2019)

지난 2019년은 3·1만세운동 100주년이었지만, 동시에 한국-아세안 관계 수립 30주년이기도 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브루나이, 베트남,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타이, 필리핀 등의 국가들이 부산에 모여 한-아세안특별정상회의를 개최했다. 아세안 국가들은 한국과 지난 2018년 기준 상호방문객이 1100만 명, 교역규모 1600억 달러로 중국에 이어 두 번째 규모, 항만 수출입 물동량의 12%를 차지하는 등 우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부산외국어대학교 동남아지역원이 펴낸 <동남아 문화 돋보기>는 현지를 직접 체험하고 연구해온 전문가들이 동남아 각국의 사회와 문화를 깊이 있게 접근해 대중적으로 친근하게 설명하려 한 노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만약 코로나 사태만 아니었다면, 한국과 아세안은 한층 더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교류를 진전시켜 나갔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몇 가지 반성을 하게 되었다. 우선 우리가 동남아에 접근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경제 위주이며, 남부럽잖게 깊은 역사와 문화를 지닌 이들을 대하며 너무 무지하고 때로 오만한 것은 아니었던가 하는 새삼스러운 반성이었다.

지난 8·15 광복절 김원웅 광복회 회장의 기념사를 논란거리로 만든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보도 태도를 접하고 일제강점기 두 신문의 친일행적 비판을 살펴보다가 동남아에 대한 우리의 아제국주의(subimperialism)적 태도의 뿌리 중 하나를 확인하게 되었다. 1937년 중일전쟁 기간 중 일제는 조선의 청년들을 침략 전쟁으로 내몰았는데, 1939년 충북 옥천의 이인석이 조선인 중 최초 전사자가 되었다. 두 신문은 앞다퉈 그를 영웅으로 떠받들었고, <조선일보>는 1939년 9월6일 기사에서 마치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숨쉬기가 급한 중에도 ‘천황폐하 만세’를 삼창하고 전우들이 ‘할 말이 없느냐’고 묻자 ‘오직 원하는 것은 황군 여러분 지나병(중국군)에게 지지 마십시오. 또 일본은 반드시 이 성전을 마치어 장래에 일지제휴를 할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란 유언을 남겼다고 보도했다.

유언 중 ‘일지제휴’란 말뜻이 궁금해서 주변에 알아보니, 이 말은 한자어 ‘日支提携’였다. 19세기 말 서구열강의 침략 앞에서 한국과 중국은 한때 일본의 다루이 도키치가 내놓은 <대동합방론>(大東合邦論), 이른바 ‘흥아론’(興亞論)에 크게 마음을 빼앗겼다. 조선에 그의 책이 수입되자 하루 만에 1천부가 매진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고, 이후 개화파는 물론 유생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중국의 쑨원 역시 신해혁명 직후 일본 고베에서 ‘대아시아주의’를 제창했다. 일본은 중일전쟁 당시 ‘일지제휴’를 앞세워 ‘일본과 지나(중국)가 장차 손을 잡고 함께 가기 위한 전쟁’을 하는 것이라고 침략을 미화했다. 이 시기 조선의 지식인 중 일부는 장차 우리가 일본의 뒤를 이어 아시아의 2등 국민은 될 수 있을 거라는 ‘아제국주의’의 착각에 빠졌었다.

오늘날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케이팝(K-pop)에 이은 케이(K)방역으로 아시아를 선도한다는 자부심을 느낀다. 머지않은 장래에 유럽연합(EU)과 같은 아세안연합(AU)을 이루면 심지어 그 연합의 국가(國歌)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 될 거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코로나 이후 세상이 변할 거라고 하지만, 지금 잠시 세상이 멈춘 듯 보이는 시점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냉철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람이 변하지 않으면 새로운 세상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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