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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반세기 걸친 경제사상의 고전

등록 2006-01-19 17:40수정 2006-01-20 15:36

최성일/도서평론가
최성일/도서평론가
최성일의 찬찬히 읽기
세속의 철학자들
로버트 L. 하일브로너 지음. 장상환 옮김. 이마고 펴냄

“경제학 서적을 읽는 것은 곧 먼지 날리고 지루한 글들의 사막에서 헤매는 것과 같다.” 물론 예외는 있다. 스무 살 무렵 <경제학의 기초이론>(백산서당)을 열에 들떠 읽었다. 나는 소름이 돋는 듯한 전율마저 느꼈다. 하지만 그로부터 5년 후, 대학 교양 강좌의 교재로 접한 경제학 개설서는 예비역 복학생에게도 엄청 무료했다. 책을 지은 담당 교수의 강의만큼이나 따분하기도 했다.

로버트 하일브로너의 <세속의 철학자들>은 아주 예외적인 경제학 책이다. 이 책의 예외성은, 우선 독자의 호응이 말해준다. 1953년 초판이 나온 이래 24개 이상의 언어로 옮겨져 400만부 넘게 팔렸다. 경제학 분야에선 폴 새뮤얼슨의 <경제학>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대와 90년대 번역된 바 있다. 이번이 세 번째 한국어판이다.

또한, 이 책을 읽으며 따분함과 지루함을 느낄 겨를은 없다. 흥미 만점이다. 하일브로너는 시대를 이끈 경제학 이론과 그 이론을 창안한 경제학자의 생애를 절묘하게 버무려 경제사상의 흐름을 펼쳐 보인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그의 글 솜씨다. 하일브로너는 갤브레이스와 더불어 “경제학 자체보다는 쓰는 쪽에 더 재능이 있었다”고 평가될 정도다. 그렇다고 이 책의 내용이 가벼운 건 결코 아니다. 옮긴이의 표현을 빌면, “이 책은 대부분의 독자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는 무겁다.”

이 책의 핵심 주제는 경제학의 핵심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사회 역사의 질서와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는 또한 역사를 창조한 사상을 찾아 나서는 여정이기도 하다. 최종판 서문에서 하일브로너는 경제학자들의 사상을 단순 나열하진 않았다고 확신한다. 고민 끝에 그가 발견한 책을 지탱하는 졸가리는 경제학자들의 서로 다른 ‘비전’이다. 예컨대 애덤 스미스의 그것은 “완전한 자유의 체제”다.

경제사상가의 연대순 배열에도 규칙적이고 흥미로운 요소가 없지 않다. 세속적인 사람과 덜 세속적인 사람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는 점이다. 함께 이야기되는 리카도와 맬서스가 그렇고,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에 이어 마르크스를 다룬 것이 그렇다. 빅토리아시대와 경제학의 ‘검은 시장’을 들여다본 대목에선 주류 경제학자와 경제학계의 이단아가 골고루 등장한다. 이런 측면에서 <유한계급론>의 소스타인 베블런과 ‘천재’ 경제학자 케인스가 맞닿은 지점은 이 책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기계가 당시의 경제생활에서 주된 현실이라는 점을 깨달은 것”을 베블런의 공적으로 평가하는 하일브로너는 “유한계급의 이론 속에는 사회적 안정 이론의 핵심이 들어 있다”고 여긴다. “경제학자는 어느 정도는 수학자·역사가·정치가·철학자가 되어야” 하고, “예술가처럼 초연하고 부패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정치가처럼 세속에 접근해야 한다”던 케인스의 비전을, 하일브로너는 이렇게 요약한다. “자본주의는 우리가 획득할 수 있는 작동 가능한 유일한 체제이지만 그 체제는 강력한 정부의 존재 없이는 만족스럽게 작동할 수 없다.” 또한 자본주의 경제의 지속성을 해치는 가장 심각한 요소인 실업을 해소하는 방안을 창출하는 것이 케인스의 목표였다고 덧붙인다.


나는 이 책을 예비 대학생에게 권하고 싶다. 짬이 나면, <세계사를 지배한 경제학자 이야기>(국일증권경제연구소)와 겹쳐 읽거나 리오 휴버먼의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책벌레)로 시야를 넓혀 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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