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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요즘 트렌드’에 숨은 여성노동잔혹사

등록 2020-10-16 05:00수정 2020-10-16 10:09

[책&생각] 전성원의 길 위의 독서

나는 왜 패스트 패션에 열광했는가
엘리자베스 L. 클라인 지음, 윤미나 옮김/세종서적(2013)

1911년 3월25일은 토요일이었다. 하지만 맨해튼 남부에 위치한 10층짜리 애쉬(Asch) 빌딩의 트라이앵글 셔츠웨이스트 공장에는 주말이지만 초과수당을 받기 위해 일하는 여성노동자들로 가득했다. 당시 세계의 공장이었던 미국에는 ‘스웨트숍’(sweatshop)이라 하여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이주한 유럽의 가난한 국가 출신 여성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저임금을 받으며 노동하는 작업장이 많았다. 이 공장이 그런 곳이었다.

퇴근을 20여 분 앞둔 오후 4시40분 무렵, 8층에서 시작된 화재는 곧 9층과 10층으로 번졌다. 두 개의 비상구가 있었지만, 노동자들을 통제하기 위해 문은 언제나 잠가두었다. 두 명의 남성 작업관리자는 화재가 발생하자 가장 먼저 안전한 옥상으로 대피했지만, 노동자들이 빠져나올 수 있는 비상구는 열리지 않았다. 여성노동자들은 불길을 피해 건물 창에 매달렸다가 추락사하거나 유독성 연기에 질식사했다. 화재는 15분 만에 진화되었지만 이 사건으로 모두 146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9·11 테러 이전까지 미국 역사상 단일 사건으로 최대 희생자를 낸 사고였다.

그로부터 100여년이 흐른 2013년 4월24일 오전 8시45분,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 있는 9층짜리 의류 공장 라나 플라자 건물이 주저앉았다. 노동자 1134명이 죽고, 2500여 명이 부상당했다. 세계 패션산업의 하부 구조를 지탱하는 수백 대의 재봉틀이 동시에 돌아가자 잠시 후 지붕과 기둥이 거짓말처럼 내려앉았다. 쇠창살로 막힌 창문과 이중 철제문, 좁은 계단과 원단으로 막힌 출구 안에서 누구도 도망칠 수 없었다. 참사의 직접 원인은 기준 이하의 자재를 사용한 부실시공이었다. 비용절감을 위해 시멘트보다 모래를 더 많이 사용했고, 콘크리트 건물에 반드시 필요한 강화철근 역시 거의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사건 발생 전날부터 7층 내벽에 금이 가고, 물이 새는 등 붕괴 징후가 있었음에도 공장주는 위험한 작업장에 들어가길 거부하는 노동자들을 강제로 작업대에 앉혔다.

사실, 방글라데시 공장 사고는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 2006년부터 2010년 사이에만 230여개의 공장에서 사고가 발생해, 500여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붕괴 사고가 발생하기 직전인 2012년 11월에도 다카 인근 공장에서 불이 나 110여 명이 사망하는 등 사고는 구조적인 문제였다. 봉제의류산업은 방글라데시 수출의 77%를 차지하는 핵심 산업으로 저임금 노동력을 찾아 나선 서구 패스트 패션의 선두주자인 에이치앤엠(H&M), 자라(ZARA) 등을 비롯한 유럽 브랜드와 갭(GAP), 베네통(Benetton) 등 미국 기업이 주요 고객이다. 사고 당시 방글라데시의 시간당 임금은 24센트로 중국의 1달러 26센트는 물론, 캄보디아(45센트), 파키스탄(52센트) 등 다른 개발도상국들보다 현저히 낮았다.

패스트 패션은 최신 트렌드의 옷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고, 업체로선 빠른 회전으로 재고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빠른 유통과 빠른 소비는 보다 더 빠른 폐기물을 발생시켰고, 불필요한 옷을 구입하여 대량으로 낭비하는 문화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무엇보다 빈곤과 위험의 글로벌한 외주화는 제3세계 저임금 여성노동자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밀고 있다.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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