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12월 <한겨레>에 지금 보면 거짓말 같은 기사가 실렸다. “마르크스 이론의 다양한 출판물이 붐을 이룬다”고 했다. 사회과학 서적이 잘 팔리던 시대가 있었다. 순문학서적도 인문교양서도 베스트셀러에 오르던 시절이 있었다. 어찌 된 영문일까? 옛날 사람은 교양이 철철 넘쳤는데 요즘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의미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도대체 지난 30여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한겨레 아카이브에서 기사와 지면 책 광고를 찾아보았다. 공개된 적 없는 사진도 찾았다. 한겨레 아카이브 프로젝트 ‘시간의 극장’, 이번 글의 열쇳말은 ‘베스트셀러'다. 해설 김태권
자동차 증가 폭발 시점에 나온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여행문화의 풍경 바꾸어놓아
유명한 저자, 상 받은 책 빼고
인문·문학서적 안 팔린 지 오래
‘1천부’라는 숫자 무슨 의미일까
이념서적이라고도 하고 인문사회과학서적이라고도 하던 어려운 책들도 잘 팔리던 때가 있었다. 1989년 12월의 <한겨레> 기사를 보면 송건호와 여러 사람이 지은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그 무렵 이미 40만부가 넘게 팔려나갔다고 한다. 이 시절 지식인들이 좋아한 말이 ‘이데올로기의 자유시장’이다. 입만 열면 ‘자유시장이 만능’이라며 찬양하는 보수정권이, 왜 좌파와 우파 이념끼리는 ‘자유경쟁’을 하게 놔두지 않느냐는 지적이었다. 그만큼 자신감이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유경쟁은커녕 출판을 탄압하던 노태우 정권이었다. 이념서적을 내는 출판사 사람이 줄줄이 잡혀갔고, 1989년 6월에는 “사회과학서적 출판사에 대한 특별세무조사가 실시”되기도 했다. 유치한 수단도 썼다. 1989년 7월 기사를 보면 “대부분의 종이도매상이 사회과학책을 내는 출판사에 종이 공급을 꺼리거나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 관계자가 종이도매상 쪽에 ‘이념서적을 내는 사회과학출판사 쪽에 종이를 넣어주지 말라’는 뉘앙스를 풍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이해에도 마르크스 저작의 번역과 해설서가 꾸준히 출판되었다. 책을 쓰고 책을 읽으면 세상이 바뀔 것처럼 보이던 시대였다.
그런데 1990년 12월에 실린 기사는 분위기가 다르다. “마르크스 엥겔스 원전과 관련 서적은 올해도 줄기차게 나왔지만 독자들의 반응은 예년에 비해 시들했다.” 이념서적을 즐겨 읽던 사람들이 갑자기 흥미를 잃었을까? 아닐 것 같다. 뒤이은 문장이 눈길을 끈다. 같은 해 “언론·기업인 등의 소련 동유럽 기행문들이 앞을 다투어 쏟아져 나왔고, 세심히 길 안내를 해주는 여행안내 책자도 등장했다”는 것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전에는 적성국가로 여기던 소련 및 동유럽 나라들과 이 무렵 처음으로 교류가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1989년까지 사회과학서적을 집어들었던 독자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수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을까? 사회주의 이념 그 자체보다는, 여행 때문이건 사업 때문이건 옛 ‘현실 사회주의’ 나라들에 호기심을 품은 사람들 말이다. 그러다가 1990년에 쉽고 친절한 여행책과 안내서가 나오자 반가워한 것은 아닐까?
그때 사람도 지금 사람만큼이나 현실적이었다. 1989년과 1990년에 제일 많이 팔린 책은 김우중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였다. 그렇다고 그때 사람이 비판의식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돈황제> 사건이 있던 때도 1989년이었다. 어느 재벌기업 총수의 사생활을 소설 형식으로 폭로하는 “백시종의 이색 기업소설 <돈황제>가 매장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5일 만에 초판 1만8천부가 매진될 정도로 불티나게 팔리던 <돈황제>가 진열대에서 사라진 이유에 대해” 출판사 관계자는 “<돈황제>에 등장하는 재벌기업의 홍보실이 대책반을 구성, 서울시내 서점에서 책을 모두 수거한다는 제보가 있었다”고 밝혔다. 당시 독자들 역시 ‘재벌’과 ‘불공정’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그렇다고 꼭 사회과학서적을 읽으라는 법은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우중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최단기 밀리언셀러의 기록을 세웠다. 대우그룹이 무너지고 김우중의 경영방식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기 전까지 김우중은 ‘세계경영'의 이념을 한국 사회에 가르치는 이데올로그의 역할을 했다. 1989년 9월16일치 <한겨레>에 실렸던 책 광고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2018년 5월15일, <한겨레>는 ‘창간 30돌 특별기획’으로 한국 사회 30년을 잘 보여주는 책 30권을 뽑았다. 당시 신문에 실린 30권의 목록이다. 30년 사이에 잊힌 책도 있고 여전히 읽히는 스테디셀러도 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의 외국서적 매장. 인터넷도 없고 ‘해외직구’도 없던 옛날에는 외국어로 된 제법 긴 글을 구해 읽으려면 외국서적을 파는 몇 안 되는 전문매장을 직접 찾아가야 했다. 책의 종수가 얼마 안 되었던 것은 당연하다. 이용호 기자가 찍고 1995년 1월 <한겨레21>에 실린 사진이다.
1995년 1월19일치 <한겨레21>에 실린 <브리태니커 세계 대백과사전>의 책 광고다. 그때만 해도 커다란 어학사전을 가방에 넣어 들고 다녔을 뿐 아니라, 수십권의 백과사전을 집에 꽂아두던 사람이 많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두꺼운 사전들이 시디(CD)롬 한 장에 담겨 나오는 것을 보며 많이들 놀랐더랬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보급된 지금은 다 지나간 일이 되었다. 디지털화되지 않았던 지면을 스캔하여 공개한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한때는 인문교양서와 이른바 순문학서적도 잘 팔렸다. 그때 사람에 비해 요즘 사람이 교양이 없고 감수성이 메말랐을 것 같지는 않다. 2000년 7월의 <한겨레> 기사를 보자. 출판시장의 2000년 상반기를 결산해보니 “인문사회과학 분야는 급락 추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김용옥의 <노자와 21세기>가 “최소한의 체면치레를 해주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듬해 7월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도올 논어>는 인문분야 1위를 고수하다, 저자인 김용옥이 텔레비전 출연을 중단한 5월 이후, 급격히 판매가 줄었다.” 김용옥은 오래전부터 인문교양 분야에서 탄탄한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텔레비전에 출연하기 한참 전부터 그랬다. 그런데도 텔레비전 출연을 중단하자 판매가 줄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2000년 당시 인문 독자 가운데 적지 않은 수는 인문교양 그 자체보다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명인에게 관심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였다. 2018년 5월 <한겨레>는 창간 30돌을 맞아 도서추천위원들로부터 “한국 사회 변화와 문화적 흐름에 중요한 역할을 한 책 30권”을 추천받았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그렇게 추천받은 책 448권 가운데 가장 많은 추천 수를 기록”했다. 그런데 2005년 8월의 기사는 “자동차 보유 대수가 늘어나고, 주말에 가족 단위로 여행을 하는 문화가 자리잡을 때 출간되었다는 점”이 이 책의 성공 이유라고 분석한 바 있다. 지금 우리는 이 책을 당시의 대표적인 인문교양 서적으로 생각하지만, 책이 나오던 그 시절에는 가족여행에 도움이 되는 책으로 소비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는 뜻이리라.
순문학서적을 사던 사람 대부분도 이런저런 문학상의 이름을 보고 책을 샀다. 예나 지금이나 책이 많이 팔리기로는 노벨문학상이 으뜸이다. “한달 17권→하루 885권, 노벨문학상 발표의 위력.” 2017년 10월 <한겨레> 기사의 제목이다. “지난 5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된 일본계 영국 소설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저서 판매량이 대폭 증가했다. 알라딘에서 이시구로의 저서는 수상 직전 한달간 총 17권이 판매되었는데, 이후 약 15시간 만에 885권이 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유명한 사람이 쓰거나 상을 받아서 유명해진 책을 빼고, 인문서적과 문학서적은 팔리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인문·문학서적들의 초판 발행부수가 2003년부터 최소단위인 1천부 선까지 내려갔음에도 초판이 시장에서 소화되는 시간이 더 늘어났다는 것도 출판사들을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2004년 3월의 기사다. “1천부”라는 숫자가 무슨 의미일까? 2005년 9월의 기사는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준다. “책값이 1만5천원이라면 1천부가 다 팔려봐야 매출이 1500만원밖에 안 된다. 제작비와 인건비, 관리비 등을 충당하기에 턱없이 적은 돈이다. 출판사는 적자를 떠안아야 한다.” 인세가 10%라면 작가에게 돌아가는 돈은 150만원이다.(전업작가로 살려면 책을 몇권씩 써야 할지 계산해보자.)
대부분의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유명인사가 낸 책이 좋고, 상을 받은 책이 좋다. 이런 인간의 본성을 야박하다고 탓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반대다. 이른바 수준 높은 책과 수준 낮은 책을 구별할 수 있을까? 나는 회의적이다. 2015년 9월 <한겨레>에는 정종현의 흥미로운 글이 실렸다. “한기호의 <베스트셀러 30년>을 보면,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죄수들은 장총찬의 파노라마식 활약상을 통해 대리만족을 경험했다고 한다. 그들에게 <인간시장>은 어떻게 읽힌 걸까? 무공 수위에 대한 관심이 중심이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인간시장>을 다 읽어버려 아쉬움이 남은 죄수들은 자연스럽게 황석영의 <장길산>을 읽었다고 한다. 이어서 교도소 방마다 ‘장총찬과 장길산 형님이 맞짱뜨면 누가 이길까’ 같은 토론이 이루어졌다.” 황석영의 <장길산>은 역사소설이다. 김홍신의 <인간시장>은 대중소설이다. 이에 비해 무협지는 고상하지 않은 장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죄수들은 어땠나. <장길산>도 <인간시장>도 무협소설을 읽듯 읽었다. 그렇다고 그들의 독서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유명인이 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기 쉽다. 1988년 5월15일 <한겨레> 창간호에 실린 책 광고 중에 <트럼프: 거래의 기술>이 있다. 트럼프의 젊은 얼굴도 “미국의 대통령감으로 지목”받는다는 문구도, “오만과 배짱의 사나이”라는 말도, 지금 와 새삼스럽다. 백기완과 이애주의 책 <가자 민중의 시대>가 나란히 광고면에 실린 것도 공교롭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문화사랑 답사 일행이 식영정을 들러 설명을 듣는 장면이다. 박승화 기자가 찍고 1998년 7월 <한겨레21>에 실렸다. 2018년 5월 <한겨레>의 회고 기사에 따르면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는 제1권이 나오자마자 폭발적 호응을 얻으면서 사람들의 여행과 여가 활동의 풍경을 바꾸어놓았다.”
도올 김용옥은 텔레비전 출연을 하기 한참 전부터 인문교양 분야에서 잘 알려진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텔레비전을 통해 ‘스타’가 되며 책은 더욱 많이 팔렸다. 2000년 2월에 <한겨레21>은 김용옥의 인기를 문화현상으로 다루었다.
2000년 1월20일치 <한겨레21>에 실린 <컴퓨터@2000>이라는 책 광고다. 2000년 7월 <한겨레> 기사는 “(IMF) 구제금융 이후 외국어, 경제경영, 컴퓨터 등 실용서 분야가 출판시장의 회복을 주도”한다고 썼다. 2002년 12월에는 “컴퓨터 관련 책의 몰락이 두드러진다”고 했다. 이 무렵부터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해 직접 컴퓨터에 대한 정보를 얻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리라.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한겨레>가 펴냈던 월간지 <허스토리> 2004년 3월호에 실린 시집 광고다. 시인들의 젊은 모습이 눈에 띈다. 지금은 나오지 않는 <허스토리> 잡지도, 잡지에 실리는 시집 광고도 지금 보면 새삼스럽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지난 30여년 동안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변하지 않았을까? 관심분야만 그때그때 달라질 뿐 독자의 욕망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같다. 그렇다면 옛날에 팔리던 책의 비결은 지금도 통할 것이다. 이후에도 종종 그랬지만 1999년에도 출판시장은 곧 무너질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위기감 팽배했던 2000년 출판시장은 뜻밖에 4편의 밀리언셀러를 내놓았다.” <가시고기>와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 <해리포터> 시리즈가 이때 나왔다. “철저한 시장조사와 독자와의 감정교류의 결실” 덕분이라는 한미화의 분석이 2001년 4월 기사에 실렸다.
책이 안 팔린다 안 팔린다고는 하지만 꾸준히 베스트셀러를 내는 작가는 있다. 그런 사람이 많지 않은 점이 문제다.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의 중간에 있는 저자 계층이 우리나라에는 거의 없다.” 2005년 9월의 기사다. 도서평론가 표정훈은 “이윤기나 최재천, 유홍준 같은 분의 책이 잘 나간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우리나라에는 딱 저런 몇분뿐”이라고 문제를 지적한다.
정말로 변한 부분도 있다. 동네서점이 사라지고 도서대여점도 사라졌다. 종이책은 해마다 위기다. 나아질 기미도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은 아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사실이 2005년 9월의 기사에 실렸다. “출판시장의 불황은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의 시장 규모가 작기 때문이다. 가까운 일본과 비교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딱히 책을 덜 읽는 것은 아니다. 월평균 독서량은 1.3권으로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2005년 당시) 1억2천만명의 시장과 4600만명의 시장은 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일본에서는 웬만한 책이 기본 부수만큼은 나간다.” 도서관과 학교에 기대를 거는 이유도 그래서다. 도서평론가 이권우는 “기본적으로 도서관의 수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공도서관에 대한 인적·물적 지원을 강화해 선진국처럼 공공도서관이 인문서 등을 일정 부분 소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입시위주 교육 때문에 현재 독서시장에서 청소년이 제외되고 청소년출판이 없는 현상이 해결되려면 학교도서관 활성화와 함께 독서수업을 교과와 연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한국어로 된 종이책이 영영 사라지게 놔둘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2000년 7월 <한겨레>는 “2000년 상반기 실용서의 약진”이 두드러진다며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2018년 5월에는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체제가 굳어지고 불평등의 씨앗을 뿌리던 당시 사회상을 반영하는 책”으로 이 책을 꼽았다. 2012년 10월에는 지은이 로버트 기요사키의 인터뷰가 실리기도 했다. 사진은 출판사 제공.
2001년에 손홍주 기자가 찍었는데 <씨네21>에 실리지 않은 사진이다. 가게 양쪽에 붙은 ‘비디오와 책’이라는 영어로 된 세로 간판에 눈이 간다. 한때 비디오테이프와 책을 대여하는 가게가 동네마다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장르문학서적과 만화책을 이런 대여점에서 빌려 보곤 했다. ‘구독경제'의 원조랄까. 이 흐름이 오늘날 웹툰과 웹소설로 이어진다.
웹툰 작가로 유명한 강풀이 본명으로 <강도영의 북카툰>이라는 만화를 한동안 <한겨레>에 연재했다. 2004년 3월에 실린 만화는 재미있다.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이라는 질문에 다들 “기형도 전집, 상실의 시대, 토지, 좁은 문” 등 순문학작품을 드는데, 강도영 자신은 “드래곤 라자”를 대고 “에…? 그럼 안 돼?”라고 되묻는 내용이다. 오늘날 이영도의 작품 <드래곤 라자>는 한국에서 판타지소설의 장르를 연 기념비적 작품으로 인정받는다.
베스트셀러의 한계에 대해 이야기하며 글을 맺으려 한다. 많이 팔리는 책에 억하심정이 있어서가 아니다. 대중의 취향을 문제삼겠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베스트셀러라는 개념부터 퍽 애매하다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팔리기만 한다고 베스트셀러가 아니다. 베스트셀러는 사람이 정하는 것인데, 그 기준이 무척 임의적이다. “2015 출판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장 매출이 많은 분야는 학습지 출판이다. 학습지와 교과서 및 참고서 분야를 합하면 전체의 59%를 차지했다.” 그런데 이 책들은 베스트셀러에 집계되지 않는다. 한편 컬러링북과 다이어리와 필사책은 베스트셀러에 넣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아니, 책일까 아닐까? “컬러링북이 책일까 아닐까의 고민은 ‘상술’에 이용되기도 했다. 한 출판사는 컬러링북을 문구로 분류해 반값 마케팅을 했다. 그럴 경우 도서정가제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 (반면 컬러링북을 책으로 낸 다른 출판사는) 이렇게 밝힌다. ‘문구로 나왔으면 전국 유통망을 이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무협소설과 로맨스소설, 그리고 한동안 인기였던 판타지소설은 어떤가? 수십년 동안 가장 사랑받은 문학작품인데도 이 책들은 베스트셀러 집계에서 빠지곤 했다. 사서 읽기보다 빌려 읽던 작품인 터라, 얼마나 많이 읽혔는지도 이제 와서는 알 수 없다. 이제는 거의 사라진 대본소와 도서대여점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가 베스트셀러에 주목하던 이유가 있다. 2010년 7월, 변정수의 칼럼에 따르면 한동안 “베스트셀러 목록이 독자들이 얻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도서정보”라서 그랬다는 것이다. 부작용도 크다.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일부 출판사들이 책을 ‘사재기’(정확히는 ‘되사들이기’)하는 일마저 일어나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를 몽땅 다 비하할 의도는 없지만 기본적으로 베스트셀러라는 것이 얼마나 불안정한 기반 위에서 만들어지고 있는지 사람들도 슬슬 깨달아 주었으면 한다.” 2013년 12월에 실린 출판인 김홍민의 칼럼이다. “뭐라도 읽어야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뭘 읽어야 할지 몰라, 그나마 남들이 읽는 책이라도 따라 읽으려는 사람들을 이용해 한 권이라도 더 팔아보려는 출판 풍토”가 서글프다고 썼다.
2008년에 한국을 찾은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김경호 기자가 찍었다. 지면에 공개되지 않은 사진을 이번에 싣는다. 번역가 이세욱의 소개로 한국에 알려진 베르베르는 <개미>, <뇌>와 같은 가벼운 과학소설로 유명하다. 2016년 10월 교보문고 북뉴스를 인용한 <한겨레> 기사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은 소설가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였다.” 2006년부터 2015년까지 소설 누적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 2위는 무라카미 하루키였다.
2019년 12월27일에 <한겨레>는 2010년을 정리하는 “출판·서점계와 시민사회 전문가 12인이 꼽은 2010년대 기록”이라는 기사를 냈다. <오늘도 펭수 내일도 펭수>는 “출판의 지각변동을 보여주는 사례”로 뽑혔다. 그런데 완전히 새로운 사례는 아닐 것 같다. <도널드 트럼프: 거래의 기술>이나 1989년 김우중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1990년 이계진의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딸꾹!>처럼 유명한 사람이 쓴 베스트셀러의 계보를 잇는 것은 아닐까? 펭수는 사람이 아니라 펭귄이지만 말이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해설자인 김태권 작가는 만화가입니다. 글도 쓰고 일러스트도 그립니다. 요즘은 주로 관악산 자락에서 두 아이를 떠메고 다니며 시간을 보냅니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와 <히틀러의 성공시대> 등의 만화책을 그렸고, <불편한 미술관>과 <에라스뮈스와 친구들> <먹히는 자에 대한 예의> 등을 썼습니다.
▶ 팩트스토리는 전문직·실화 소재 웹소설·웹툰 및 르포 논픽션 기획사입니다. 저널리즘 바깥으로 확장하는 실화를 추구합니다.
<한겨레>가 지령 1만호를 맞아 ‘시간의 극장-한겨레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선보입니다. 33년 기사와 사진 아카이브를 활용하여, 중요 사건과 인물을 현대사 콘텐츠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입니다. 해당 주제를 잘 아는 해설자가 ‘시의성 있는 과거’와 관련한 한겨레 사진과 기사를 선정하고 독자에게 해설합니다. 한번도 소개된 적 없는 비컷(B-cut)사진 필름도 발굴하여 공개합니다. 르포, 전문직 소재 웹소설 기획사 팩트스토리가 기획하고 한겨레와 공동으로 제작합니다. 주간 연재.
※알립니다
한겨레 아카이브 프로젝트 ‘시간의 극장’ 시즌2가 24화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시즌3을 여는 25화는 12월 중순 독자들을 찾아갈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