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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서울엔 내 쉴 곳 없네…지방에 눈 돌리는 사람들

등록 2021-08-28 15:43수정 2021-08-28 22:08

[한겨레S] 커버스토리
듀얼라이프 시대

수도권서 못 누리는 공간 찾아 서울-지방 복수 거점 생활
“삶의 질 포기 못해” 제주서 서울 왕복 6시간 출퇴근도
재택근무로 달라진 라이프스타일, 인구 분산 실마리 될까
주4일제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 김솔씨는 주중엔 회사가 있는 서울에서, 주말 3일은 주로 포항 부모님 집에서 지낸다. 본인 제공
주4일제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 김솔씨는 주중엔 회사가 있는 서울에서, 주말 3일은 주로 포항 부모님 집에서 지낸다. 본인 제공

직장인 김솔(33)씨는 주중엔 회사가 있는 서울에서, 주말을 포함한 사흘은 본가가 있는 경북 포항에서 주로 지낸다. 주4일제 회사이다 보니, 토·일·월 사흘간 이어지는 휴무를 활용해 격주로 아예 부모님 집에서 생활한다. 금요일 저녁 퇴근하고 케이티엑스로 2시간 반이면 포항역에 닿는다. 서울 오피스텔에서 사는 김씨는 포항에 가면 가족들과 아파트에서 지낸다. 그는 포항 집에서 무엇보다 상대적으로 넓은 생활공간을 누리면서 자연을 가까이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했다. 김씨는 “집에 거실과 베란다가 있어 주말을 서울 오피스텔에서 보내는 것보다 휴식의 질이 높다. 아파트가 산으로 둘러싸인데다, 바닷가에서도 멀지 않다”고 말했다. 포항에서 휴일을 보내며 바다나 산을 즐기고, 월요일 저녁 서울로 오는 기차를 타면, 다시 여유롭게 화요일부터 직장(에듀윌)에서 한 주를 시작할 수 있다. 그는 이런 생활패턴이 업무와 휴식을 확실히 분리시켜 주중 회사 일에도 더 집중하게 된다고 했다.

복수 거점 생활, 어디까지 진화할까

일상생활이 가능한 주거공간을 두 곳으로 나눠 수도권에서 일하고, 휴일엔 여유롭게 삶의 질을 챙길 수 있는 지역에서 사는 ‘복수 거점 생활’(듀얼라이프)이 눈길을 끌고 있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며 외부 공간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는데다 부동산 가격 상승 등으로 수도권에서는 집에서도 넉넉하고 편안한 공간을 누릴 수 없게 되자, 비수도권에 또 다른 삶의 공간을 마련해 이곳에서 생활하는 비중을 늘리는 것이다.

인터넷에 자신의 출퇴근 브이로그(개인 일상생활을 찍은 동영상)를 올리는 유튜버 ‘앵글로퍼’(34)는 제주도 자택에서 서울에 있는 회사까지 왕복 6시간에 걸쳐 출퇴근한다. 아이티(IT) 업체에서 개발업무를 담당하는 그는 주중 사흘은 장거리 출퇴근을, 이틀은 제주에서 재택근무를 한다. 앞서 그는 지난해 ‘제주도 한달살이’를 한 뒤 아예 제주에 터를 잡게 되면서, 폭넓게 재택근무가 가능한 회사를 알아봤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마침 프로그래머들이 매일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 많아졌고, 그는 몇달 전 서울에 있는 회사에 취직했다.
재택근무일이면 퇴근 후 낚시를 즐긴다. 앵글로퍼 제공
재택근무일이면 퇴근 후 낚시를 즐긴다. 앵글로퍼 제공

그가 서울로 이사하는 대신 제주에서 장거리 출퇴근을 선택한 이유는 수도권의 비싼 집값을 피해 삶의 질을 유지하고 싶어서다. 그는 “서울 근교에 적당한 원룸을 구한다면 지금보다 출퇴근 시간이 줄겠지만, 지금 거주하는 제주 수준의 집을 구할 수 없다. 삶의 질을 봤을 때 제주에서의 출퇴근이 만족도를 높일 것이란 생각에 이런 생활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재택근무를 마치고 바다에 나가 제주의 노을을 보며 낚시를 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다. 그는 “게다가 서울 근교에서 살아도 도심까지 출근 시간이 제주와 비교했을 때 편도 3시간에서 2시간으로 줄어들 뿐이어서, 따지고 보면 큰 차이는 아니다”라며 “장거리 출퇴근이 체력적으로 조금 더 힘든 점이 있지만 지금 생활에 대체로 만족한다”고 했다.

여유있는 주거공간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수도권에 있는 일자리를 유지하는 방법으로 복수 거점 생활을 택한 것이다. 실제 인터넷 공간에는 충청이나 강원권 등에 거주지를 두고 서울에 있는 사무실까지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의 브이로그가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다.

출퇴근 비행기 안에서 찍은 제주 바다. 앵글로퍼 제공
출퇴근 비행기 안에서 찍은 제주 바다. 앵글로퍼 제공

공간 누릴 곳에서 ‘자아 찾기’

생활 거점 두 곳을 오가는 일이 번거롭진 않을까? ‘듀얼라이프’족은 약간의 번거로움을 감수하더라도 넉넉한 공간에서 삶의 질 확보뿐만 아니라 일과 휴식의 분리, 건강, 환경, 취향 등 다양한 이유로 이런 생활방식을 택하고 있다.

양아무개(41)씨는 듀얼라이프로 휴식과 건강한 삶을 찾은 경우다. 그는 올해 초 강원도 속초에 월세로 세컨드하우스를 마련했다. 친구와 함께 살던 서울의 집에서 그는 1년 내내 미세먼지에 시달렸다. 게다가 양씨는 스스로를 ‘일중독’이었다고 표현했다. 결국 부신피로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양씨는 주말에라도 대도시의 삶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그리고 주말에 머물 자신만의 휴식처로 속초에 ‘제2의 생활 거점’을 구했다. 방 두개 규모의 바다 근처 방을 보증금 500만원, 월세 25만원에 계약했다. 한달에 두어번 주말을 속초에서 보내는 삶은 만족스러웠다. 양씨는 “늘 공기 좋은 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며 “적당한 실행 방법을 찾지 못하다가, 깔끔하고 저렴한 곳을 찾아 나만의 세컨드하우스로 삼았다”고 말했다.

주말에 대도시를 떠나 한적한 지방 도시에서 지내는 라이프스타일이 과거엔 은퇴를 앞둔 노년층의 생활양식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듀얼라이프는 세대가 낮아지고 거주 방식도 다양해졌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복잡한 수도권을 벗어나, 대도시에서 누릴 수 없는 것들이 있는 특별한 공간을 찾는 경우도 늘고 있다. 노트북 하나만 들고,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휴가를 즐기듯 일하는 ‘워크 앤 스테이’(work & stay), ‘워케이션’(work+vacation)이란 개념도 있다.

올여름 충남 공주에서 진행한 4박5일짜리 워크스테이(워크 앤 스테이) 프로그램 ‘로그인 공주’는 참여자가 많아 쉽게 예약이 끝났다. ‘지방 소도시에서 여행처럼 머문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20~30대 청년을 대상으로 4일간 숙박과 공유오피스, 자전거 세 가지를 제공했다. 참여자들은 공유오피스에서 원격으로 업무를 하고, 남는 시간엔 동네 식당에서 식사를 하거나 한적한 마을에서 산책을 한다. 행사를 기획한 권오상 퍼즐랩 대표는 “요즘 젊은층이 로컬살이를 ‘힙한 것’으로 인식하면서 지역에서 머무는 프로그램에 많이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권 대표는 “한적한 소도시에서 조용히 머무는 여행이 트렌드”라며 “대도시라면 지하철에 앉아 있을 시간에 여기선 함께 달리기할 친구들을 모아 아침저녁으로 운동을 하는 이들이 종종 보인다”고 말했다.

이곳에 공유오피스 만드는 작업을 하며 퍼즐랩과 협업한 부동산 디벨로퍼 조지영(46)씨는 “서울과 공주를 오간 경험이 일과 휴가를 동시에 즐기는 ‘워케이션’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공주의 게스트하우스 한 곳을 제2의 거점 삼아 올해 초부터 매주 서울에서 4일, 공주에서 3일을 보냈다. 조씨는 “공주에서 업무가 끝나면 그 외의 시간은 부부가 마치 휴가 온 것처럼 보낸다. 서울에선 퇴근해도 집에 와 밥 먹고 씻고 누우면 하루가 끝난다. 하지만 여기선 퇴근 뒤 거창한 걸 하지 않아도 산책만으로도 휴가 기분이 난다”고 했다.

도시 오갈 ‘작은 생활거점’ 만들기

생활 거점을 두 곳에 두는 방식은 일본에서 먼저 주목받은 개념이다. 일본 정부는 도쿄 중심으로 사람이 몰리는 것을 분산하고 지방 침체를 막기 위해 2014년 ‘마을·사람·일자리 창생법’을 제정했다. 이어 2015년 5개년 전략을 세우고 네 가지 정책 목표를 제시했다. 그중 하나로 지방에 ‘작은 거점’이 많아져 대도시와 지역을 오가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런 흐름에 지난해부터 코로나19가 더해져 꼭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재택근무가 늘면서 일본에서는 주중엔 도쿄, 주말엔 지방에서 지내는 복수 거점 생활 희망자가 더욱 늘고 있다고 일본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다. 일본 지방자치단체들은 때마침 늘고 있는 복수 거점 생활 양식을 인구 분산 흐름으로 이어가고자 여러 지원도 고심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생활양식 변화의 조짐을 정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흐름이 있다. 지난해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은 ‘인구감소 대응 지방자치단체 청년유입 및 정착정책 추진방안’에서 청장년 세대의 라이프스타일 가운데 생활방식 변화를 어떻게 인구정책에 반영할지 고민할 때라고 제안했다. 이 보고서는 “그동안 인구정책은 저성장과 탈산업화, 그리고 다원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 청장년 세대를 노동력 관점에서만 보았을 뿐 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사회문화적 변화에 따라 저성장 시기를 보내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공간과 지역 매력도 등에 대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지자체도 달라진 청장년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을 공략하면서 ‘복수 거점 생활’에 필요한 지원 등을 결합하면 청년 유입 등에 뜻밖의 성과를 기대해볼 수도 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실제 연구원은 보고서를 내며 수도권에 사는 19~39살 미혼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지방이주 선호도 및 지원정책 수요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를 보면, 비수도권으로 이주를 생각해본 적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8.7%가 ‘생각해본 적 있다’고 답했다. 중소도시나 농어촌으로 이주를 고려해봤다는 이들(523명)에게 이유를 묻자, ‘수도권 생활비·주거비가 너무 비싸서’라는 답이 27.2%로 가장 높았다. ‘여유롭게 살고 싶어서’(18.2%), ‘깨끗한 공기 등 생활환경이 좋아서’(16.4%), ‘대도시의 경쟁적 삶에 회의가 느껴져서’(15.9%)가 뒤를 이었다. 일자리 대부분이 몰려 있는 수도권에 청년층 인구가 집중된 상태지만, 주거지는 비수도권으로 옮길 의사가 상당수 있는 것으로 나타나 ‘복수 거점 생활’이 확대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인구 분산, 라이프스타일 변화 봐야

지난 13일 감사원은 저출산 대책과 지역 인구 불균형 실태를 조사해 ‘인구구조 변화 대응실태 1(지역)’을 내놓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2047년 전국 지자체 17곳 중 13곳에서 인구 500만명이 감소하며, 일부 지역의 경우 2017년 대비 인구가 최대 23%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감사보고서는 “최근 우리나라 인구문제는 출산율 급감과 수도권으로의 지나친 인구집중에 있고, 두 가지 문제는 (공간부족 등과) 상호 연관되어 있다. 저출산 대책이 지역인구 불균형 문제까지 다뤄야 한다”며 수도권 인구집중 등 인구정책 전반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수도권 인구집중에 대한 해법으로 ‘복수 거점 생활’처럼 여러 방식으로 해당 지역을 다녀가는 인구들에 지자체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정준호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사람들이 대도시와 지방을 자주 오가는 모빌리티 현상은 지방이 생존 차원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정 교수는 “그나마 있던 제조업 기반마저 무너진 지방 도시에서, 정주인구 확대는 이제 꿈도 꿀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인구가 줄고 있다. 지방은 이제 생존을 위해 여러 유동인구라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됐다”고 설명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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