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6일 이수지 작가가 서울 한남동 알부스 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자신의 그림에 대해 <한겨레>와 이야기하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22일 새벽 한국 아동문학 출판계에 낭보가 전해졌다. 이수지 작가가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릴 정도로 권위 있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었다. 한국인으로서는 최초 수상이다. 안데르센상은 특정한 작품이 아니라 ‘아동문학에 중요하고 지속적인 기여를 한’ 작가 본인에게 주어진다는 점에서 더욱 뜻깊다고 할 수 있다. 23일 하루가 지났지만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이수지 작가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수상한 소감은?
“너무 큰 상을 받아서 아주 기쁘고 여전히 어떨떨하다. 전혀 예상하거나 기대하지 않았다. 너무 쟁쟁한 후보들이 계셔서.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후보가 됐기 때문에 최종 후보에 올랐을 때 그분들의 수고에 답한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상 받은 것과 진배없다고 생각했다. 최종적으로 내 이름이 불려서 정말 깜짝 놀랐다. 아직 믿기지 않는다.”
이수지 작가의 <여름이 온다>의 한 장면. 비룡소 제공
―서양화를 전공했는데 그림책 작가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워낙 책이라는 매체를 좋아한다. 그림으로 할 수 있는, 회화과 출신이 할 수 있는 전형적인 것이 아닌 다른 매체가 있을까 하는 생각 많이 했다. 책이라는 매체가 가장 대중적으로 접근이 쉽기도 하고, 무엇보다 고급예술의 한계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책방에서 어느 정도 돈을 지불하면 누구나 쉽게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 멋있게 보였다. 그림이 많이 모이면 이야기가 되고 그 이야기가 책으로 묶이곤 하는, 이런 ‘그림 더하기 책’이라는 성격이 멋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그림 그리는 일과 책을 연결시켜서 해보고 싶었다.”
―본인이 역점을 두고 추구하는 작품 세계는 무엇인가?
“최근 느낀 것은, 제가 ‘그림책 예술’이라는 말을 정말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가까이 있는 예술이 정말 좋은 예술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말을 하는 것 같다. 특히나 아이들을 향하는 예술이라고 하면 단번에 그림책이 떠오르게 됐으면 좋겠다. 독립적 장르로서 그림책이 예술이 되었으면 한다. 저는 예술이 되고자 하는 그림책의 작가인 것 같다.”
이수지 작가의 <파도야 놀자>의 한 장면. 비룡소 제공
―독자들에게 가장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표현하는 방법이나 전달하고 싶은 주제는 작가마다 다 다를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 그림책이 지향하고 담고 있는 세계는 어린이 그 자체인 것 같다. 그 ‘어린이성’을 보고서 진심으로 감동하기 때문에 어른도 그림책을 본다고 생각한다. ‘동심’이라는 말은 전형적이기도 하고 어린이를 대상화하는 느낌이 들어서 사용하고 싶지 않다. 어린이성은 그냥 훼손되지 않은 어떤 아름다움의 결정체로 느껴진다. 어린이는 끊임없는 호기심을 가지고 있고 세상에 대해 어려움을 느꼈을 때도 계속 돌파하면서 성장한다. 어른이 되면서 닳고 깎이기도 하지만, 그 가운데서 뭔가 어려움이 닥쳤을 때 맨 처음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가지면 쉽게 풀릴 때도 있다. 그런 것처럼 처음으로 돌아가야 하는 근원, 초심, 이런 느낌이다. ‘그런 세계가 있었지’ 하고 발견하는. 사실은 그게 어른이든 어린이든 마음속에 있는 것인데 그 부분을 잊고 산다.”
이수지 작가의 <그림자 놀이>의 한 장면. 비룡소 제공
―그림책을 읽는 어른들이 늘고 있다. 어른과 어린이에게 그림책이 줄 수 있는 부분이 다른가?
“어린이용 그림책, 어른용 그림책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어른들이 그림책에 빠져드는 것은 그림책에서 가장 단순하고 직관적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담고 있는 것을 발견하는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어른들을 대상으로 한 그림책은 더 다양하고 더 결이 섬세한 이야기를 다룰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수는 같다고 본다. 그림책이라는 장르 자체가 부각됐으면 좋겠다. ‘그림책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를 이야기할 때 한 표현이 마음에 와 닿았는데, ‘전 연령의 어린이를 위한 책’이라는 표현이었다. 모든 나잇대의, 0살부터 100살까지의 모든 사람이 어린이의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림책 독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책은 그림책 말고 없다.”
―앞으로 계획은?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하고 제가 즐거운 일을 해왔는데 이렇게 상을 주셔서, 앞으로도 이렇게 쭉 하면 되겠구나 하는 용기를 얻었다. 꾸준히 작업할 생각이고, 독자분들과 계속 만나가면 좋겠다.”
이수지 작가는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와 영국 캠버웰예술대에서 공부했다. 직접 쓰고 그린 책으로는 <여름이 온다> <그늘을 산 총각> <강이> <선> <거울속으로> <파도야 놀자> <그림자놀이> <동물원> 등이, 그림만 그린 책으로는 <물이 되는 꿈> <우로마> <이렇게 멋진 날> 등이 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