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전북 전주시 고사동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서 열린 23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애프터 양> 기자회견에 이준동 영화제 집행위원장(오른쪽부터), 주연배우 저스틴 민, 전진수 프로그래머가 참석한 모습. 오승훈 기자
코로나 팬데믹 이전 수준의 축제 복원을 목표로 내건 전주국제영화제가 열흘간의 축제에 돌입했다. 올해로 23회째를 맞는 전주영화제는 ‘영화는 계속된다’는 슬로건 아래, 28일 영화제의 상징적 공간인 전주돔과 고사동 일대 ‘영화의 거리’에서 코로나 이전 수준의 규모로 성대한 막을 올렸다.
지난해보다 8개국 31편이 늘어난 56개국 217편(국외 123편, 국내 94편)의 영화가 전주 시내 5개 극장 19개관에서 상영되며, 온라인 플랫폼 ‘온피프엔’에서도 112편(국외 69편, 국내 43편)을 관람할 수 있다.
개막작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애플티브이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를 공동 연출해 이름을 알린 한국계 미국인 코고나다 감독의 <애프터 양>이다. 미국 단편소설 작가 알렉산더 와인스틴의 원작 <양과의 안녕>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세계적인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가 영화음악을 맡은 것으로도 화제가 됐다.
가까운 미래, 제이크(콜린 패럴) 가족이 소유한 안드로이드 양(저스틴 민)은 아시아계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제이크 가족이 중국에서 입양한 딸 미카의 정서적, 문화적 기반을 안정시키는 형제 구실을 하던 양이 어느 날 갑자기 작동을 멈춘다. 양에게 심적으로 의지하는 미카를 위해 제이크는 수리업체를 찾아가지만, 새 제품을 구입하라는 권유를 받는다. 그 과정에서 제이크는 양의 메모리칩을 들여다보다 양이 일반적 안드로이드와는 다르게 기억을 저장하는 특별한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된다. 양을 눈여겨본 로봇 과학자는 과학기술박물관에 ‘테크노-사피엔스’로 양을 기증해달라고 부탁한다. 양의 사적인 기억과 시간들을 발견하기 시작한 제이크는 양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23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코고나다 감독의 <애프터 양> 스틸컷.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 제공
이날 개막작 시사회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준동 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애프터 양>은 인간에 대한 성찰을 다룬 작품이다. 안드로이드를 가지고 인간을 들여다보는 방식이 새로웠다. 고요하면서도 정적으로 인간에 대한 성찰을 풀어냈다는 점에서 이견 없이 개막작으로 선정했다”고 했다.
간담회에는 안드로이드 양을 연기한 저스틴 민도 참석했다. 그는 “코고나다 감독님이 일정상 방한할 수 없어서 많이 아쉬워했다”며 “처음 <애프터 양>의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비행기 안이었는데 감동받아 눈물을 흘리는 바람에 주변 사람들이 ‘괜찮냐?’고 물을 정도였다”고 했다. 이어 “이후 코고나다 감독님을 처음 뵙고 아시안-아메리칸으로서의 정체성과 영화의 의미에 대해 많은 얘길 나눴다”고 덧붙였다. 한국계 미국인인 저스틴 민은 “영화에는 백인 남편과 흑인 아내, 동양인 딸이 한 가족으로 나온다. 다양성에 대한 감독의 관점이 드러나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아시안-아메리칸은 미국 내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해야 하는 존재들이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작품이 더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다”라고 했다.
로봇 인간이라는 독특한 캐릭터 설정 아래 내밀하고 섬세한 연기를 선보인 저스틴 민은 현재 할리우드에서 뜨고 있는 신인 배우다. 미국 유력 연예매체 <버라이어티>에서 선정하는 ‘2021년 주목해야 할 10명의 배우’에 선정되기도 했다.
개막식이 열리는 전북 전주시 전주돔 모습.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 제공
이날 오후 6시부터 시작된 개막식에는 170여명의 게스트가 초청됐다. 배우와 영화인들의 레드카펫 입장으로 문을 연 개막식의 사회는 배우 장현성과 유인나가 맡았다. 김승수 영화제 조직위원장의 개막 선언과 이준동 집행위원장의 각 경쟁 섹션별 심사위원 소개에 이어 개막작 <애프터 양>을 연출한 코고나다 감독의 영상 인사가 이어졌다.
이번 영화제에선 ‘스타 감독’에 대한 재조명이 화제가 되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이 ‘제이(J) 스페셜: 올해의 프로그래머’로 관객과의 대화에 나서고, 이창동 감독 특별전이 열린다. ‘이창동: 보이지 않는 것의 진실’ 특별전에선 이 감독의 단편 신작 <심장소리>가 세계 최초로 공개된다. 개막 이튿날인 29일에는 영화제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 성명을 발표하는 자리도 예정돼 있다.
2015년부터 열어온 영화제 내 뮤직 페스티벌 ‘해브 어 나이스 데이’(Have A Nice Day)도 오랜만에 찾아온 축제의 흥겨운 분위기를 더할 예정이다. 새달 5~6일 전주돔에서 열리는 이 행사에는 십센치, 소란, 김필, 선우정아 등이 출연한다. 이 밖에 ‘골목 & 야외상영전’, 호남 유일 향토극장 전주시네마타운의 ‘전주시민 특별상영회’ 등도 열린다.
영화제 관계자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렸다 하더라도 관객의 안전을 위해 상영관 내 마스크 착용, 손소독제 비치, 상영관 상시 방역, 음료 외 음식물 섭취 금지 등을 유지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전주/오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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