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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바위’라 불린 김해 고인돌…파내졌다 묻혔다 비극의 10년

등록 2022-08-26 08:00수정 2022-08-29 15:56

[노형석의 시사문화재] 김해 구산동 유적 수난사

택지개발 중 2007년 가치 확인
논란 끝 복토해 유적공원화
문재인 정부 때 국가사적 추진
졸속 보존 작업하다 최악 사고
학예직 부족·문화재 행정 부실에
위정자 잘못된 업적 쌓기 겹쳐
유적 남쪽 푸르지오 아파트 정원에서 내려다본 김해 구산동 고인돌 유적의 현재 모습. 펜스를 치고 출입문을 잠가놓았다. 주위로 고층 아파트와 김해-부산 경전철 교각이 보인다. 주변 도로는 운전면허 연습생들의 단골 연습코스여서 노란색 연습차량이 자주 눈에 띄었다.
유적 남쪽 푸르지오 아파트 정원에서 내려다본 김해 구산동 고인돌 유적의 현재 모습. 펜스를 치고 출입문을 잠가놓았다. 주위로 고층 아파트와 김해-부산 경전철 교각이 보인다. 주변 도로는 운전면허 연습생들의 단골 연습코스여서 노란색 연습차량이 자주 눈에 띄었다.

아낌없이 주는 큰 바위였다. 나이 든 어르신들은 ‘소 바위’라고 불렀다.

최근 경남 김해시가 유적 복원 정비를 내세우면서 혈맥과도 같은 2000여년 전 박석 묘역을 밀고 엎어버린 김해 구산동 고인돌은 아름답고 애틋한 상생의 역사를 지닌 상징물이었다.

2000여년 전 고대인들에게 이 상석 바위는 신성한 믿음의 공간이었다. 재앙으로부터 지켜주는 성역이자, 숨진 망자를 기억하는 무덤이며 제단이 되어주었다. 세월이 지나며 논밭 한가운데에 아랫도리가 묻혔지만, 동네 사람들은 우직한 소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소 바위’라고 부르며 정겹게 아꼈다. 물가에 자리한 바위는 아이들에겐 물놀이 쉼터와 소꿉장난 무대로, 어른들에겐 소망을 비는 영험 깊은 기도처로 사랑받았다.

입구 차단막에 난 구멍으로 살펴본 유적 모습. 고인돌 상석 왼쪽 둔덕에 푸른 포장을 치고 쌓은 것이 무단으로 들어낸 뒤 아직 심지 않은 묘역 박석들의 무더기다.
입구 차단막에 난 구멍으로 살펴본 유적 모습. 고인돌 상석 왼쪽 둔덕에 푸른 포장을 치고 쌓은 것이 무단으로 들어낸 뒤 아직 심지 않은 묘역 박석들의 무더기다.

지난 23일 낮 이제 막 지은 구산동 고층아파트 숲 아래 큰길가 아래쪽에 놓인 고인돌 유적 상석의 모습은 묵묵히 앉은 큰 소의 자태를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그 모습은 의연하기보다는 처참하게 파괴되고 변형된 주변 묘역의 참상 탓에 더욱 힘겨워 보였다. 이 바위가 최근 10여년 사이 묻혔다가 드러났다가 다시 묻히고 드러나며 훼손된 수난사를 되풀이해왔기 때문이다.

2006년 시내 경운산 동쪽 기슭에 자리한 구산동 자락에 경남개발공사가 대규모 택지개발공사를 시작하고 그 예비 절차로 구제 발굴이 시작되면서 소 바위의 수난사는 시작된다.

원래 소 바위 고인돌 자리는 아파트가 들어설 핵심 밀집지구로 지목되어 있었다. 2007년 아파트 유적을 시굴조사한 삼강문화재연구원 조사팀원들은 흙에 파묻힌 채 윗부분만 드러난 소 바위 고인돌을 처음엔 자연석으로 알고 계속 파내려갔다가 굴착갱으로 드러난 아래쪽 바닥 부분에 거대한 기단열과 박석들이 질서정연하게 배치된 사실을 알고 크게 놀랐다.

기원전후 시기로 <삼국유사>에 기록된 금관가야(구야국) 김수로왕의 창건 신화 실체와 연관될 수 있는 거대 권력자의 대형 무덤이자 이 무덤의 영역을 알리는 기념물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북쪽 자락 둔덕에서 무려 80여기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의 철기시대 주거지가 나왔기에 고인돌 주인은 둔덕의 고대인들을 다스리던 통치자였을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둔덕에서는 동시대 일본 야요이 문명기의 토기들도 다수 나와 한반도 남부에서 해상 교류를 주도했던 유력 세력의 거점이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지난해 김해 구산동 고인돌 묘역 발굴 당시 확인된 목관묘에서 나온 두형 토기와 옹기형 토기. 이 토기들의 발굴로 구산동 지석묘 유적의 연대를 기원 전후까지 내려볼 수 있는지가 고고학계의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김해 구산동 고인돌 묘역 발굴 당시 확인된 목관묘에서 나온 두형 토기와 옹기형 토기. 이 토기들의 발굴로 구산동 지석묘 유적의 연대를 기원 전후까지 내려볼 수 있는지가 고고학계의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미 북쪽 둔덕까지 포함해 택지개발사업이 상당히 진행된 상황에서 전체 대상지를 유적 보존지구로 묶어두기는 쉽지 않았다. 전면 보존을 주장하는 학계 자문위원들과 김해시, 경남도가 머리를 싸맨 끝에 소 바위는 깨서 발굴하자는 일부 개발론자들의 주장을 뒤엎고 고인돌 권역 지구만 기부채납 형식으로 보존하고 나머지 지역은 아파트를 건설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길이 10m에 무게가 400t 가까운 세계 최대 규모의 고인돌 상석은 크레인으로 들 수 없고 현재 도로가 있는 지표면보다도 4~5m 낮아서 결국 흙을 덮어 복토하고 그 위에 잔디를 깔아 유적공원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다시 흙에 덮인 지 14년 만인 지난해, 김해시가 국정과제로 떠오른 가야사 재조명 흐름에 발맞춰 고인돌의 국가사적 지정을 추진하면서 다시 관심사에 올랐다. 지난해 재발굴하면서 학계 쟁점은 이 고인돌이 정말 무덤인지, 아니면 제례를 위한 기념 제단의 성격인지로 갈렸다. 사적 추진을 위한 발굴조사 과정에서 목관묘가 발견돼 잠정적으로 고인돌 무덤이란 결론이 내려졌다.

하지만 이 무덤의 연대가 기원전 1세기~기원전후라는 게 또 다른 논란거리로 남았다. 고인돌이 정말 무덤 유적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훨씬 연대가 이른 청동기시대의 대표적 산물로만 알았던 고인돌의 하한연대가 기원전후의 초기 가야시대까지 내려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고대의 기념 제단이었으며 후대에 그 아래 묘를 파고 들어온 것이란 주장을 고수하기도 한다.

구산동 고인돌 유적 현장의 펜스에 그려진 복원 조감도. 원래의 박석들 틈 사이로 다른 빛깔의 새로운 박석들을 채워 묘역을 정비하고 상석 바로 앞으로 관람로를 설치해 지나가게 해놓았다.
구산동 고인돌 유적 현장의 펜스에 그려진 복원 조감도. 원래의 박석들 틈 사이로 다른 빛깔의 새로운 박석들을 채워 묘역을 정비하고 상석 바로 앞으로 관람로를 설치해 지나가게 해놓았다.

하지만 위용을 갖추기 위해 발굴과 복원을 짧은 기간 동시에 추진한 것이 결국 참화를 불렀다. 신화적인 이야기는 물론이고, 고고역사적으로 풍부한 함의와 이야깃거리를 지닌 유적인데도 김해시는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용하고 재단하는 행태만 거듭했다.

발견 뒤엔 덩치가 너무 크고 발굴 이전 비용이 든다는 이유로 흙으로 다시 덮어 10년 동안 묻었다가, 문재인 정부의 가야사 국정과제 기조에 따라 지자체에 예산이 대거 지원되자 사적 지정 추진과 역사공원 복원 정비 계획을 급조했다. 일반 공사처럼 공기를 맞춰놓고 정비와 보존을 동시에 하는 졸속작업을 추진하다 역대 문화재 복원사상 최악의 대형사고를 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예직 인력이 절대 부족하고 문화재 관리 등에서 제 역할도 못하게 하는 지자체 행정의 문제점은 분명히 드러났다. 하지만 명기된 법 절차를 알고도 무시하면서 무지와 실수만 강조하는 지자체 위정자들 행태는 일벌백계로 바로잡아야 한다. ‘소 바위 비극’은 가시적 업적을 쌓는 정치논리 방편으로 문화재를 바라본 ‘잘못된 태도’에서 비롯된 인재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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