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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고인돌 만행에도 ‘내 잘못이 뭐냐’…시장님, 참 당당하시네요

등록 2022-10-18 07:00수정 2022-10-18 22:30

울림과 스밈
세계 최대 고인돌 훼손 김해시
전·현 시장, 국정감사 증인 출석
원래 묘역의 박석을 뽑아내 세척한 뒤 무단 복구한 김해시 구산동 지석묘의 현재 모습. 세계 최대규모인 상석 아래 왼쪽 영역의 박석을 모두 뽑아낸 뒤 보도블록을 깔듯 다시 촘촘하게 박아놓았다. 문화재청 제공
원래 묘역의 박석을 뽑아내 세척한 뒤 무단 복구한 김해시 구산동 지석묘의 현재 모습. 세계 최대규모인 상석 아래 왼쪽 영역의 박석을 모두 뽑아낸 뒤 보도블록을 깔듯 다시 촘촘하게 박아놓았다. 문화재청 제공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문화재청 국정감사는 시종 청와대 문제로 시끄러웠다. 정치적 쟁점으로 비화된 문화재청의 청와대 활용과 예산 편중 문제 등이 고성을 내지르는 여야 의원들의 입씨름 공방으로 주로 부각됐다. 하지만 이날 국감 질의 후반부에는 주목해야 할 이슈가 하나 더 등장했다.

지난 8월 <한겨레>가 단독보도한 김해 구산동 세계 최대 고인돌 훼손 사태와 관련해 지난 7월 취임한 홍태용 현 김해시장과 허성곤 전 시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전현직 지자체장이 사상 처음 국정감사 증언대에 나란히 서면서 전례가 없는 이른바 ‘고인돌 국정감사’가 펼쳐진 것이다.

이들의 증언은 답답하고 의뭉스럽기만 했다. 2000년 넘게 고이 묻힌 이의 영역을 표시하면서 박혀있던 고인돌 박석을 무지막지하게 뽑아내 고압세척기로 씻고 문지르는 솔질까지 한 뒤 임의로 다시 꽂아놓은 만행에 가까운 훼손 행위에 대해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질타를 퍼붓자, 토건업자 출신의 전 시장은 격앙된 말투로 받아쳤다.

그는 “우리 김해만 씻는 게 아니고 최근 3년 동안 십여곳(의 지자체들)이 세척을 하고 유기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도 씻고 싶어 씻은 게 아니라 문화재위원들의 자문에 의해서 설계 승인을 받아서 한 내용”이라고 강변했다.

이에 홍익표 위원장이 최응천 문화재청장에게 “다른 곳(지자체)에서도 유물 세척을 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라고 물었고, 최 청장은 “문화재 원 상태에서 현상 변경 없이 하는 경우는 있지만 (유물을 땅에서) 들어내고 이렇게 하는 예는 한 건도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바로 반박했다.

하지만 허 전 시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경남도 승인 과정에서 충분한 자문 받았다. 문화재청 담당자 추천을 받아 문화재위원회 분과위원장 맡은 한 지방대 교수 자문도 받아 설계에 반영했다”고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해명은 실상과 달랐다. 자문 교수와 복원을 승인한 경남도 일부 문화재위원들은 박석을 들어내 씻으라는 조언을 한 적이 없다고 언론에 증언했기 때문이다.

홍태용 현 시장도 “지석묘 발굴 과정에서 매장주체부(무덤 주인 묻은 중심부)의 고인돌에만 포커스 맞추고, 박석과 유물은 관심이 덜했다. 문화재청 발굴조사 때 매장주체부에 대해 허가받으면 고인돌 전체에 대한 허가를 받은 것으로 해석했다”는 아리송한 해명을 내놓았다. 유적의 발굴, 복원 범위는 문화재청이나 지역 문화재위원회의 관련 공문과 법률에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고 이를 인지하는 것은 행정 업무의 기본인데도 이 행정직 수장이 이런 답변을 한 것이다. 지역 문화유산에 대한 지자체의 인식 수준을 국감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해 고인돌 훼손과 김포 장릉 아파트 사태 등 문화재 훼손 사건이 이어지고 있지만, 지자체의 전문 인력 확보가 극히 미비한 현실도 국정감사에서 재확인됐다.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은 ‘고인돌’ 질의가 지나간 뒤 ‘2022년 9월 기준 기초지방자치단체별 문화재 업무종사 공무원현황’을 내놓았다. 226개 기초지자체 중 문화유산을 관리하는 조직이 있는 곳은 서울시의 2개 구, 경기도의 2개 시, 경북도의 3개 시·군 등 17곳에 불과하며, 부산·대구·강원·인천·광주 등은 문화재 관련 조직이 있는 기초지자체가 한 곳도 없다는 내용이었다. 기초지자체 226곳에 근무하는 문화재 업무 종사 공무원은 총 1497명이었지만, 전문성을 지닌 학예직 공무원은 259명(17.3%)이며 시간제 임기제 공무원 제외한 정규직 학예공무원은 174명(11.6%)에 그쳤다. 특히 서울은 25개 자치구에 근무하는 123명의 문화재 담당 공무원 중 정규직 학예사가 전무하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현 정부의 무리한 청와대 재활용은 이번 문화재 국감의 가장 큰 이슈였지만, 그에 못지않게 문화유산을 한참 낮잡아보는 지자체 관료들의 근본적인 인식 수준과, 상식을 한참 넘어서는 바닥 수준의 문화재 관리 인프라 현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도 이번 국감의 씁쓸한 성과이자 숙제가 아닐까.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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