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배우 이정재(왼쪽 사진)와 황동혁 감독이 12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마이크로소프트 시어터에서 열린 제74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과 감독상을 받은 뒤 각각 트로피를 들어보이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P 연합뉴스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의 에미상 6관왕에 오른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두 주역은 배우 이정재(50)와 황동혁(51) 감독이다. 각각 남우주연상과 감독상을 받은 둘은 어려움 속에서도 우직하게 한길을 걸어, 하늘이 정한 뜻을 알게 된다는 ‘지천명’(50살)에 만개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정재는 고등학교 졸업 뒤 인테리어학원 수강료를 벌려고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다 모델로 발탁됐다. 1993년 드라마 <공룡선생>(SBS)으로 연기에 발을 들인 그는 1995년 드라마 <모래시계>(SBS)로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주인공 윤혜린(고현정)을 지키는 보디가드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으나 대사는 거의 없었다.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제작진의 판단에서다. 연기에 대한 갈증을 느낀 그는 28살에 뒤늦게 동국대 연극영상학과에 들어가 연기 공부를 했다. 나중엔 공연영상예술학 석사학위까지 땄다.
12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마이크로소프트 극장에서 열린 제74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배우 이정재가 남우주연상을 받고 있다. 로스앤젤레스/로이터 연합뉴스
영화 <태양은 없다>(1999)로 청룡상 최연소 남우주연상의 주인공이 됐지만, 이후 다작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성공작을 내지 못했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연기력을 갈고닦았다. 그러다 임상수 감독의 <하녀>(2010)에서 ‘주인남자 훈’ 역으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주인공이 아니어도 뚜렷한 색깔을 보여주는 배우로 거듭난 것이다. 이후 <도둑들>(2012)의 뽀빠이, <신세계>(2013)의 이자성, <관상>(2013)의 수양대군, <암살>(2015)의 염석진 등 선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캐릭터를 찰떡같이 소화해냈다. 특히 <관상>은 “내가 왕이 될 상인가?”라는 유행어까지 만들 정도로 대표작이 됐다.
영화 <관상>에서 수양대군 역을 맡은 이정재. 쇼박스 제공
이정재는 40대 후반에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첫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서 도박 빚에 몰려 목숨을 건 게임에 나선 ‘지질남’을 연기한 것이다. 미국 일간지 <뉴욕 타임스>는 “빚더미에 앉은 도박중독자 성기훈을 비통하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게 그려냈다. 영웅이나 악당, 바보, 사기꾼 같은 평면적 캐릭터로 연기하지 않았다”고 극찬했다. 첫 연출 도전작 <헌트>로 칸국제영화제에도 초청됐다.
그는 이제 글로벌 스타로 뻗어 나가고 있다. 최근엔 디즈니플러스가 제작하는 ‘스타워즈’ 시리즈 <애콜라이트>에 주연급으로 캐스팅됐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외신은 “<오징어 게임> 이후 모든 오티티가 이정재와 작업하길 꿈꾸고 있다”고 전했다.
12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마이크로소프트 극장에서 열린 제74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이 감독상을 받고 있다. 로스앤젤레스/로이터 연합뉴스
황 감독은 <오징어 게임>의 배경인 서울 쌍문동에서 태어났다. 홀어머니와 할머니 슬하의 넉넉지 못한 환경에서 자란 어린 시절은 훗날 작품에 반영됐다. 서울대 신문학과 재학 시절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영화에 빠져 미국 남캘리포니아대(USC)에 유학해 영화제작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7년 영화 <마이 파더>로 데뷔한 이후 청각장애학교에서 벌어진 실화를 그린 영화 <도가니>(2011)로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영화 <수상한 그녀>(2014)는 860만 관객을 모았고, 김훈 소설을 영화화한 <남한산성>(2017)은 백상예술대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이후 그는 영화 대신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으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10년 전부터 구상해왔으나 여기저기서 퇴짜를 맞은 프로젝트를 기어이 세계적인 화제작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작업 도중 극심한 스트레스로 이가 6개나 빠진 고초는 보상받고도 남았다. 그는 에미상 수상 소감에서 “이 상이 제 마지막 에미상이 아니길 바란다. 시즌2로 돌아오겠다”고 밝혔다. 황 감독과 이정재가 <오징어 게임> 시즌2로 또 어떤 바람을 일으킬지 전세계인이 주목하고 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