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수의 사극 출연으로 기대감이 높았던 <슈룹>이 드디어 뚜껑을 열었다. <티브이엔>(tvN)에서 지난 15일과 16일에 각각 1부와 2부를 방영했다. <슈룹>은 사고뭉치 왕자들을 위해 치열한 왕실 교육 전쟁에 뛰어든 중전(김혜수)의 파란만장 궁중 분투기다. 왕실 교육과 궁중 엄마들의 뜨거운 교육열을 다루는 작품이어서 방영 전에는 ‘조선판 <스카이캐슬>’이라고도 불렀다. 그런데 이유가 달랐다. 중전과 후궁들의 교육열이 중심인 건 맞지만, 사연이 있었다. 중전이 세자 외의 네 아들한테 공부를 시키는 이유는 그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다. <슈룹>의 교육열에는 궁중암투와 어머니의 사랑이 담겨있다. 김혜수는 영화 기준으로는 2013년 <관상> 이후 9년, 드라마 기준으로는 2002년 <장희빈> 이후 20년 만에 사극에 출연했다. <슈룹>에서는 코믹한 면모와 절절한 모성애를 융합한 사극 연기로 호평받는 중이다. 1회 7.6%, 2회 9%. 닐슨코리아 집계. 극본 박바라, 연출 김형식.
정덕현 평론가 = 이 정도면 ‘김혜수 불패’라고 해도 될 법하다. <시그널>(티브이엔)에서 스릴러에도 가슴 따뜻한 휴머니즘을 넣더니, <하이에나>(에스비에스)에서는 이기기 위해서라면 하이에나처럼 물어뜯는 막강 변호사로 치열한 여성 캐릭터를 세웠다. <소년심판>(넷플릭스)으로 촉법소년 재판에서 냉철함과 따뜻함을 동시에 갖는 판사의 면면을 그리더니, 이제 <슈룹>(티브이엔)에서는 코믹과 절절함을 오가는 사극 속 중전 역할로 드라마를 2회 만에 9%대 시청률로 올려놓았다.
남지은 기자 = <슈룹>에 처음 눈이 간 이유도 김혜수였다. 너무 빨리 뛰어서 발이 보이지 않는 포스터가 신박했다. 김혜수가 사극에서 코믹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 이상의 느낌을 받았다. 막상 작품을 보니 ‘그렇게 빠른 발’은 아니었지만. 김혜수는 아는 것 같았다. 시청자들이 그가 오랜만에 사극에 출연한다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 이상을 기대하는 것을. 정통 사극 연기에 평범하지 않은 코믹을 더 한 것이 좋았다.
정덕현 평론가 = 지금껏 김혜수가 연기했던 배역들이 그러하듯이 <슈룹>의 ‘임화령’이라는 인물도 연기가 쉽지 않다. 복합적인 연기가 요구된다. 때론 터지는 웃음을 줘야 하고, 때론 시원한 사이다를 줘야 한다. 그러면서 자식들과 자신의 생사가 오가는 궁궐 암투에서 치열한 전쟁을 치르는 진지함 또한 유지해야 한다. 이 모든 변화들이 임화령이라는 인물에 녹아 있다.
남지은 기자 = 아들들을 만나려고 갈 때나 찾으려고 다닐 때 한쪽 눈썹이 올라가는 연기가 좋았다. 임화령만의 포인트를 준 것인데 대본에 있는 것인지 김혜수가 만들어 낸 것인지 궁금하다.(혜수님 보고 계신다면 답 좀 주세요) 1회 첫 장면에서 긴박한 효과음에 문을 열어젖히고 나아가는 장면에서도 앵그리버드 눈썹(이라고 부르고 싶다)이 빛났다. 다만, 감정을 조금만 억눌러도 좋겠다, 싶은 순간이 있다.
정덕현 평론가 = 긴장과 이완의 적절한 균형은 드라마 장르 문법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이 최근 요구하는 사안이다. 적당히 당기고 또 풀어주는 장르적 변환에 자유롭기를 원하는 것인데, <슈룹>은 그런 점에서 사극이 갖는 진지함 속에 적절할 정도의 코믹을 더 해 넣은 균형감각을 보여준다.
정덕현 평론가 = <슈룹>의 장르는 복합적이다. 궁중에서 벌어지는 중전과 후궁들 그리고 대비가 벌이는 치열한 암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여인천하>(에스비에스)의 극적 전개가 담겨있고, 왕좌를 이어갈 왕자들의 교육 문제가 담겨있다는 점에서 <스카이캐슬>(제이티비시)의 사극 버전 같은 ‘양육과 교육의 서사’가 들어 있다. 현재의 교육열 같은 문제들을 궁중 버전으로 가져와 풍자한 것 같은 코미디의 색깔도 들어 있다. 그래서 드라마는 긴장감 넘치는 대결구도가 그려지다가도 임화령이 세자의 동생들을 교육 하는 대목에서 ‘홈스쿨링’ 방식 같은 패러디적인 웃음이 더해진다.
남지은 기자 = <슈룹> 교육열이 관심이 가는 건 궁중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영리한 드라마인 것 같다. 특히 과거 교육열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점이 흥미롭다. 왕의 열 명의 부인한테서 나온 아들들만 모여서 공부를 한다. 임화령은 세자외 나머지 아들을 지키기 위해 갑자기 그들을 공부시키고, 후궁들은 자기 아들을 세자 자리에 앉히려고 공부시킨다. 후궁들이 각자 아들한테 영양제를 주거나 다른 왕자가 어떤 서책을 보는지 엿보는 모습이 현실과 다르지 않다. 한 후궁은 “산술 선생이 별로”라는 아들의 말에 선생을 바꿔주고, 중전은 시험을 앞두고 학습 진도가 느린 아들들을 위해 엄마가 먼저 공부를 해 핵심 문제를 뽑아준다. 현대의 교육열이 조선 시대 궁중으로 가니 또 다른 서사를 만들어낸다.
정덕현 평론가 = <슈룹>이라는 ‘우산의 고어’를 제목으로 채택해 시선을 끌고 있고, 임화령이 ‘궁중에서 가장 빨리 걷는 대비’라는 캐릭터로 세워져 있는 점도 시청자들이 관심을 갖게 된 중요한 이유다. 시청자들은 빨리 걷은 중전에서 우스꽝스러운 코미디와 사극에서 그려지는 여성 캐릭터의 전형성을 깨는 시원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작품이 시작되자 이 중전이 왜 그렇게 빨리 걸어야 했는가가 나오면서 몰입감을 높였다. 그건 죽기 살기로 뛰어야 하는 중전의 절박함까지도 담겨있어서다. 그만큼 주인공 캐릭터를 잘 세운 작품이다.
정덕현 평론가 = 아쉬운 점은 있다. 임화령과 대비의 대결구도는 옛 사극이 늘 담던 고부갈등을 재현하고 있다. 중전과 후궁들의 대결구도 역시 ‘여적여’의 갈등 구조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왕인 이호(최원영)가 이 대결에서 역할이 없고 한 걸음 뒤쪽으로 빠져 있다는 것조차 옛 문법 그대로다. 물론 이건 사극의 시공간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일 수 있고, 그래서 그 시공간 설정이라 받아들여지는 면은 있지만 오늘날의 시각에서는 다소 뻔한 구도처럼 느껴진다.
남지은 기자 = 그래도 요즘 여성 서사를 담은 드라마가 쏟아지는데, <슈룹>은 사극에서 여성들의 대결과 연대, 여성들의 주체성은 눈여겨 볼만하다. ‘여장하는 왕자’인 계성 대군 이야기를 다룬 점도 흥미롭다. 2회 마지막으로 유추해보면 3회에서는 아들을 궁중 암투에 이용하려는 세력과 그 세력으로부터 아들을 지키려는 엄마의 마음이 나오지 않을까 한다.
정덕현 평론가 = 스토리 적으로 이 작품이 여성 서사의 계보를 잇는지는 좀 더 들여다봐야 할 듯싶다.
남지은 기자 = 여러 왕자들이 나오는데 각각의 캐릭터가 좀 더 뚜렷해야 할 것 같다. 캐릭터도 큰 화제를 모을 수 있고 배우도 성장할 기회인 것 같은데 아직은 아쉽다. 중심을 잡는 큰 배우들 외에 많은 시청자들이 매력에 빠져 볼 수 있는 ‘왕자’가 나온다면 드라마는 더 화제몰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하나 <슈룹>은 신인 작가의 미니시리즈 데뷔작이라는 점에서도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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