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엔>(tvN) 토일 드라마 <슈룹>의 제목은 ‘우산’을 뜻하는 옛말이다. 지난 22일 방송된 <슈룹> 3회에는 성소수자 자녀를 품은 ‘포용의 우산’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중전 임화령(김혜수)은 앞서 2회 방송에서 넷째 아들 계성대군(유선호)이 남몰래 드나드는 비밀 공간을 발견했다. 그 공간은 계성대군이 궁궐 구석진 곳에 버려진 전각에 화장 도구, 머리 장식, 저고리와 치마 등 여장을 할 수 있는 밀실을 마련한 것이다.
중전은 밀실의 문 틈새로 계성대군이 여장을 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는다. 북받치는 눈물을 참지 못해 자신의 비밀 공간을 찾아 오열하기까지. 아들의 여장 행위 자체도 충격이지만, 이 사실이 궁중의 ‘적’들에게 알려질 경우 아들의 목숨이 위험해지니 더 두려웠던 것이다.
3회에서 중전은 계성대군의 비밀을 눈치챈 대비(김해숙)가 국왕(최원영)에게 이를 폭로하려고 나서자, 계성대군의 밀실을 불태워 버린다. 아들을 ‘위해서’ 증거를 없앴다고 하지만, 정작 계성대군은 황망하다. 궁에서 유일하게 숨통이 트이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계성대군은 중전을 찾아가 따진다. “제 모든 것을 없애셨습니다. (…) 창피하고 부끄러워 그리하셨습니까?”
하지만 중전은 밀실을 없앤 대신, 계성대군이 자신의 ‘진짜 모습’도 지킬 수 있는 선물을 준비했다. 계성대군이 여장을 한 모습을 초상화로 간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중전은 계성대군에게 “언제든 네 진짜 모습이 보고 싶거든 그림을 펼쳐서 보거라”고 말한다. 또한 “딸이 생기면 주려 했던” 어머니의 비녀를 계성대군에게 물려준다.
드라마는 두 사람이 화해한 뒤, 함께 우산을 쓰고 궁으로 향하는 모습으로 끝맺는다. 중전이 든 우산은 계성대군 쪽으로 한껏 기울어져 있다. 두 사람의 뒷모습은 계성대군이 붉은 저고리와 하늘색 치마를 입은 모습의 그림으로 바뀐다.
<슈룹>은 계성대군이 남자인데 여장을 하는 크로스드레싱(cross-dressing) 행위까지만 묘사한다. 출생 때 지정받은 성별(assigned sex)과 다른 젠더 표현을 수행한다고 해서 모두 성소수자인 건 아니다. 하지만 계성대군이 여장한 상태를 “진짜 모습”이라고 언급하는 대사 등을 보면, 그가 자신과 타인이 인식하는 성별이 다른 젠더디스포리아(성별 위화감)를 겪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나저러나 <슈룹>의 궁궐은 “남들과 다른 걸 품고 사는 사람”이 살아남기 어려운 곳으로 묘사된다.
성소수자에 대한 포용도가 낮은 건 한국사회도 마찬가지다. 특히 청소년 성소수자는 가정과 학교에서 큰 상처를 받는다. 청소년 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이 2015~2020년 상담·지원 사례 2055건을 분석한 결과, 상담을 요청한 청소년의 32.1%(660건)는 가족 내 갈등과 학대로 괴로워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 ‘내가 문제라고 생각했어요-성소수자 학생의 권리를 도외시하는 한국의 학교들’을 보면, 교사가 성소수자 학생 괴롭힘의 가해자인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성소수자에 대해 잘 모르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 ‘어른’들이 많기 때문이다.
<슈룹>의 중전 임화령은 성소수자 자녀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노력한다. “저 녀석 마음을 생각해봤어. 넘어서지 못하고 받아들여야 했을 때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 사고뭉치 아들들에게 화내는 게 일상인 중전이지만, 정작 계성대군이 “(내 모습을 알고) 화나지 않았나”고 묻자, 이렇게 답한다.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내 잠시 방황은 했다. 허나 화는 난 적 없어. 네가 어떤 모습이든 넌 내 자식이야.”
드라마에서 성소수자 캐릭터나 모성애는 일차원적으로 단순하게 그려질 가능성이 높은 소재다. <슈룹>은 중전의 모성애가 ‘어떤’ 모습인지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성소수자 자녀를 포용하는 모습으로 감동을 줬다. 중전 역할을 맡은 김혜수의 절절한 연기가 빛났다. 김혜수는 지난 7일 열린 <슈룹> 제작발표회에서 “(슈룹의) 캐릭터들이 모던(현대적)하고 생동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슈룹> 3회 시청률은 7%를 기록했다(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김효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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