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카지노>(디즈니플러스)의 한 장면. 디즈니플러스 제공
공교롭지만, 그와 나는 동갑내기다. 성장 환경도 비슷하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 연약한 피부에 벌겋게 독이 오를 때까지 불개미를 잡아 한약방에 팔고, 동정심을 유발하는 수완으로 신문을 팔았다. 이렇게 그와 나는 같은 시간 다른 장소에서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원리를 몸으로 터득하며 성장했다. 공부에 매진할 수 있도록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독려하는 선생님을 만나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도 신기할 정도로 비슷하다. 하지만 20대에 접어들면서부터 그와 나의 삶은 조금씩 결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군사정권의 최루탄이 대학가에 쏟아지던 야만의 시대에 집시법 위반 이력 때문에 입대 영장을 받지 못한 그는 북파공작 부대원을 선택했고, 입대 영장을 받은 나는 논산 육군훈련소를 거쳐 강원도 홍천의 예비사단으로 배치되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그는 필리핀의 카지노 실세가 되었고, 나는 대전의 국립대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드라마 <카지노>(디즈니플러스)에서 조우하였다.
그와 내가 태어났던 1960년대는 4·19혁명으로 시작하여 5·16 군사쿠데타로 급선회한 격변의 시대였다. 군인 출신 대통령이 군사작전처럼 지휘하는 산업화의 행렬이 일사불란하게 이어졌고, 가난 때문에 진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10대들은 학교 대신 전국 각지의 공단에서 산업화의 역군이 되어 수출의 탑을 쌓아 올렸다. 대전에서 공부한 그와 서울에서 공부한 내가 옷깃을 스칠 일은 없었다. 하지만 내가 드라마 <카지노>에서 만난 그, ‘차무식’(최민식)은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쓰는 나였을지 모른다. 이상한 기시감을 느꼈다. “‘차무식’은 우리 중 누구라도 될 수 있는 인물”이라는 배우 최민식의 인터뷰에 고개를 끄덕거린 까닭이다.
차무식은 1965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깡패’ 아버지가 대전교도소에 수감되는 바람에 대전으로 이사하여 10대와 20대를 보냈다. 그는 “공부할 환경이 아니니 사우디로 돈 벌러 가겠다”고 일찌감치 진로를 결정했지만, 선생님의 독려에 힘입어 열심히 공부했고, 마침내 학력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다. 하지만 병환이 깊어져 사표를 낸 담임 선생님 대신 새로 부임한 선생님은 “공고생이 무슨 대학이냐”며 “취직이나 하라”고 면박을 주었다. 지금 기준으로 생각하면 교사의 어이없는 학대가 분명하지만, 인문계와 실업계의 구분이 분명했던 그때는 반박하기 어려운 교사의 입시 지도처럼 여겨졌다. 고3 담임 교사 때문에 지역의 국립대로 진학한 차무식은 그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그놈의 목공 선생 때문에 인생이 바뀐 거야.”
그는 어린 시절부터 “다 먹을 게 아니면 안 먹는 게 낫다”고 생각할 만큼 승부 근성이 몸에 배어 있었다. 아버지가 집에 불법으로 차린 사설 도박장 옆에서 공부하면서 키운 담력이나 배짱도 두둑했다. 대전에서 외국인 선생이 제일 많은 영어학원을 운영할 정도로 사업 수완도 뛰어났다. 세상 평지풍파 모두 겪은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었다. 일본에서 들어온 부산의 ‘카지노바’를 경험한 뒤, 그는 폐업 직전의 술집을 인수해서 불법 카지노 영업장으로 개조하여 거금을 쓸어모았다. 사돈의 팔촌이 결혼해도 축의금을 내면서 전국구로 성장했다. 하지만 아무리 사업 수완이 좋아도 국세청의 단속을 피하지는 못했다. 필리핀으로 도주한 그는 호텔 카지노에 보증금을 내고 세 들어 운영하는 ‘정킷’(junket)을 목격하고 ‘민석준’(김홍파) 회장의 수하로 들어갔다. 대학원에 진학한 나와는 완전히 다른 선택이었다.
“밑바닥에서부터 칼 물고 회장님 보필하면서 카지노를 세운” 차무식은 필리핀 정계와 재계 실력자들의 세미나 비용을 부담하면서 영향력을 키워나갔다. 필리핀 교민사회에서 “사람을 믿지 않고 돈만 믿는” 냉혹한 사업가로 소문났다. 하지만 그는 카지노에서 에이전트로 일하는 ‘양정팔’(이동휘)을 비롯한 ‘동생들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자상한 형님이었다. 중국 삼합회에서 돈을 빌렸다 위험에 처한 양정팔을 구해준 뒤, 호되게 야단치는 차무식에게서 한 집안을 건사하는 가장의 모습이 ‘얼핏’ 보이는 것도 그래서이다.
그렇다고 해서 불법과 폭행으로 점철된 차무식의 인생을 연민하거나 옹호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의 20대 이후 삶이 나와 완전히 달라진 이유가 궁금할 뿐이다. 군인 출신 대통령이 통치하는 제3공화국 시절에 태어나고 성장한 것은 비슷하지만, 신군부 세력이 정권을 장악한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니면서 겪었던 현실 정치의 경험치 차이가 그와 나의 인생에 변수로 작용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격동의 현대사가 그와 나의 인생에 현상된 꼴이다. 개인의 일상생활과 무관할 것 같지만, 실상 정치는 개인의 인생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다.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필리핀 카지노의 사장으로 살아가는 것과 대전 국립대의 교수로 살아가는 것에 무슨 차이가 있을지, 문득 궁금하다. <끝>
충남대 국문과 교수·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