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신이의 발자취] 고 최일남 작가를 기리며
고 최일남 작가 빈소. 권성우 숙명여대 교수 제공
40여 년 세월 조금도 변함없어
70여 년 숱한 사람 만났지만
선배님은 가장 아름다운 사람
바라봄으로써 정화되는 듯하고
함께해 위로받는 영혼이었죠 선배님께서 아직 건강하실 적이니 3년 전쯤이었을 겁니다. 서울 인사동에서 몇몇이 점심을 곁들여 막걸리 한두 사발씩 하고 돌아가던 길이었지요. 저는 선배님과 같은 성남 분당에 살고 있었기에 함께 지하철을 탔는데 경로석에는 자리가 없었던 반면 가운데 자리는 비어 있었지요. 하지만 선배님은 빈자리로 가시지 않았습니다. 지하철 공짜로 타는데 돈 내고 타는 젊은이들 자리를 뺏을 수는 없다는 말씀이었지요. 2000년대 초반 선배님은 한 언론 관련기관에서 비상근이사로 일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마침 그 기관 간부에 제 친구가 있었지요. 그 친구가 그러더군요. 최 선생님은 회의가 끝난 후 댁까지 승용차로 모시겠다고 해도 지하철 타고 가면 된다며 끝끝내 사양하셨다고요. 저보다 십칠 년이나 연상이신 선배님의 삶의 발자취를 새까만 후배인 제가 어찌 감히 더듬어볼 수 있겠습니까. 다만 한 가지는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1980년 8월, 그 끔찍했던 여름날 선배님과 저를 비롯한 여러 동료들이 한날한시에 강제해직을 당했지요. 그로부터 40여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선배님은 참으로 놀랍게도 조금도 변하지 않으신 어른이었습니다. 외람되지만 저는 선배님이 항상 ‘맑은 소년’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라봄으로써 정화되는 듯한, 함께함으로써 위로받는 깨끗한 영혼. 선배님은 1953년부터 2013년까지 60년 동안 158편의 중단편과 6편의 장편소설을 써내셨습니다. “고생을 타고난 사람은 육실하게도 고생만 지지리 하다가, 고생에서 헤어나서 이제는 조금 마음을 놓고 밥술이라도 뜨겠다 싶으면 꼴까닥하고 만다”(단편소설 ‘타령’ 중에서)는 유의 푸짐한 입담으로 시대의 아픔을 버무려낸 당대의 소설가이자 언론인이었습니다. 지난 늦겨울 어느 날, 선배님은 제게 모처럼 또박또박 말씀하셨지요. “날 풀리면 내가 밥 한번 살게.” 반세기 넘도록 해로한 사모님 먼저 보내시고도 가끔 아내가 살아 계시다고 믿었다던 선배님. 그 사연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던 저는 선배님의 전화를 받으며 왈칵 눈물을 쏟았습니다. 선배님은 이제 저 세상에서 사모님을 다시 만나시겠지요. 그리고 이러시겠군요. “여보, 나 빨리 따라왔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던 사람, 최일남 선배님. 부디 안식하십시오. 전진우 언론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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