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정사> 리지 캐플런. 파라마운트플러스 제공
“두려우면서도 흥분됐었죠.” 미국 드라마 <위험한 정사>의 리지 캐플런은 ‘알렉스 포레스트’ 역을 제안받던 그 순간을 상반된 느낌의 두 단어로 표현했다.
알렉스 포레스트가 누군가. 이 드라마의 원작인 1987년 영화 <위험한 정사>에서 한 남자한테 집착하며 전세계 관객들을 오싹하게 만든 바로 그 ‘여자’다. 미국영화연구소가 2003년 조사한 ‘영화 역사상 최고의 악당’ 7위에 오를 정도로, 오랫동안 기억되며 존재감이 상당했다. “영화에서 글렌 클로스가 연기한 알렉스는 환상적이에요. 어둡고 관능적이고 무시무시한 복합적인 면모를 모두 보여주죠.” 최근 <한겨레>와의 단독 서면 인터뷰에서 리지 캐플런은 ‘글렌 클로스표 알렉스’를 극찬했다.
‘명인물’을 소환해야 하는 두려움은, 알렉스 입장에서 영화를 다시 보면서 이내 의욕 샘솟는 흥분으로 바뀌었다. “제가 배우로서 가장 흥미롭게 느끼는 건 배역에 숨겨진 다른 면을 찾아내려는 시도예요. 알렉스의 머릿속으로 더욱 깊이 파고들면서 그가 분명 많은 아픔을 겪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연민의 감정을 느꼈죠. (과거에) 사람들이 단지 ‘미쳤다’고 느낀 캐릭터에 인간성을 부여하는 것. 알렉스는 제게 그런 도전이었어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파라마운트플러스가 지난달 31일 국내에 공개한 드라마 <위험한 정사>의 ‘리지 캐플런표 알렉스’는 이렇게 탄생했다.
1987년 영화를 드라마로 만든 <위험한 정사>. 파라마운트플러스 제공
‘에로틱 스릴러’ 장르를 유행시킨 화제작이 36년 만에 드라마로 만들어지면서 알렉스를 누가 연기하느냐에 관심이 모였다. 리지 캐플런은 사랑에 빠진 설렘과 집착하는 불안함 등을 큰 눈망울에 모두 담아낸다. 원작의 알렉스에 견줘 표정이나 행동을 절제하면서도 심리 변화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알렉스가 법정에서 변호사인 댄 갤러거(조슈아 잭슨)를 빤히 쳐다보는 장면(3회)에서는, 그 순간 흠뻑 빠져든 마음이 표정만으로 느껴진다. 2004년 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 2016년 영화 <나우 유 씨 미 2> 등으로 한국에서도 유명한 그는 “깊게 몰입할 수 있는 배역을 원한다”고 했다.
‘하룻밤’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드러내며 댄의 입장에서 진행된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알렉스의 아픔도 생각해보게 만든다. 리지 캐플런은 댄을 향한 알렉스의 마음에는 ‘사랑’도 있다고 봤다. “두 사람은 여러날 함께 지내면서 겉보기에는 서로를 정말 좋아하는 것처럼 보여요. 알렉스는 댄과 진정으로 연결된 느낌을 받았고, 그러면서 미래가 있다고 생각했죠. 댄과 행복한 결말을 맞을 가능성을 봤어요. 알렉스가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데 문제를 겪은 것은 사실이지만, 분명 댄도 이러한 착각이 진실처럼 느껴지도록 행동해요. 알렉스가 혼란을 겪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래서 그가 안타까웠어요.”
1987년 영화에서 알렉스를 연기한 글렌 클로스. 파라마운트플러스 제공
책임을 두 사람 모두에게 묻는 등 2023년에 맞게 많은 내용이 바뀌었다. 댄의 아내는 인테리어 사업을 하는 일하는 여성이고, 그는 댄에 기대어 살지 않는다. 원작에서 여러 이야기가 오갔던 결말도 바뀔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는 1회 댄이 2급 살인 혐의로 기소된 뒤 가석방 심사를 받고 나오는 것에서 출발한다. ‘심리 스릴러’ 장르에 맞게 구성을 새롭게 한 점도 흥미롭다. 1~2회는 일반적인 흐름이고, 3회는 알렉스 시선에서 이전 회차 내용을 반복하며 ‘반전’을 주고, 4회는 아내의 입장을 담는다. 리지 캐플런은 “이런 구성이 심리 스릴러의 김장감을 고조시킨다”고 말했다. “시청자들이 누가 ‘착한 사람’이고 ‘나쁜 사람’인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도록 만든 다음,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형성된 고정관념을 뒤집어버리죠. 흥미로운 장치예요.”
2023년에 보는 드라마 <위험한 정사>는 불륜 경고에 머물지 않고 스토킹의 위험성까지 느껴지는 등 시대 변화에 따라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한가지. ‘불륜’은 30년이 지나도 여전히 인기 소재라는 점이다. <위험한 정사> 이후 비슷한 영화가 줄을 이었고, 최근에도 <부부의 세계> 같은 작품이 인기를 얻었다. 리지 캐플런은 “결혼이라는 제도를 바라보는 기존의 관점이 상대를 평생 동안 함께해야 할 유일한 배우자로 보기 때문인 것 같다. 결혼을 결심하는 것은 엄청난 일이며 우리가 지금껏 내린 그 어떤 결정과도 다르다. 그처럼 중요한 약속(결혼)에 대해 많은 두려움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2023년에서 그가 바라본 <위험한 정사>의 장르는 이렇다. “<위험한 정사>는 보편적인 두려움을 기반으로 하는 공포물이라 생각해요.”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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