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프레임드’에 감독으로 참여한 박정민, 손석구, 최희서, 이제훈. 왓챠 제공
배우 손석구는 최근 넷플릭스(OTT) 드라마 ‘디피’(D.P.) 관련 인터뷰에서 “다시 연출의 맛을 느껴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첫 연출작 ‘재방송’을 만들 때의 나날을 언급했다. ‘재방송’은 2021년 12월 오티티 왓챠에서 공개한 ‘언프레임드’에서 소개된 단편 영화다. 이모와 조카의 하루를 잔잔하게 그린다. 이모의 집에서 밥을 먹고 함께 버스를 타고 병원에 갔다가 온 가족이 모인 결혼식장까지. 특별한 것 없는 장소에서 소소한 대화가 오가는데 끝나면, 느릿하고 무심하게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진다. 공개 이후 손석구는 ‘재방송’이란 제목이 내용을 다 보여주지 못한다고 했는데, 다시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이모가 죽은 딸을 그리워하는 모습에서 재방송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배우 지망생 조카가 드라마 출연 기회를 포기하고 이모를 무심하게 챙기는 모습에서 인생에 재방송은 없다고 말하는 이중적인 의미인 듯하다. 우리는 과거를 그리워하지만, 현재는 끊임없이 미래로 나아간다. 세상은 지속적으로 변한다.
이제훈이 연출하고 정해인과 이동휘가 출연한 ‘블루 해피니스’. 왓챠 제공
‘언프레임드’는 손석구 외에 이제훈과 박정민, 최희서가 각자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작품을 선보인다. 박정민은 초등학교 한 학급의 반장 선거를 통해 어른들의 현실을 투영한다. 제목도 ‘반장 선거’다. 출마한 아이들이 당선되려고 꼼수를 부리는 모습과 헛된 이기심이 순한 마음을 덮어버리는 결과 등이 인상적이다. 최희서는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이야기 ‘반디’를 만들었다. 직접 출연도 했다. 이제훈은 요즘 시대 사람들이 가장 관심 있는 것에 주목했다. 열심히 살던 청년이 주식에 빠진 뒤 벌어지는 이야기인 ‘블루 해피니스’다. 정해인과 이동휘가 배우로 나온다.
각 30분 남짓 짧은 단편인데 그들이 배우로서 보여주는 연기처럼 각자 색깔이 뚜렷하다. ‘반장 선거’는 연출이 가장 좋다. 박정민이 연기해온 배역들처럼 심심하지 않고 감각적이다. 손석구가 만든 ‘재방송’은 ‘멜로가 체질’ 같은 드라마에서 손석구 하면 떠오르는 천천히 가는데 중심을 정확하게 파고드는 분위기다. ‘반디’는 최희서와 아역 박소이의 느낌처럼 작품 자체가 맑고 따뜻하다. ‘블루 해피니스’는 정의로운 배역을 많이 맡은 이제훈답게 현실의 문제점을 파고들어 씁쓸한 공감을 준다.
‘언프레임드’가 공개될 때보다 지금 이 배우들의 인기는 더욱 치솟았다. 작품의 운명이란 배우의 인기를 따라가기 마련이다. 그냥 흘려보냈던 장면들도 다시 보면 색다르게 다가온다. 배우를 잘 알게 된 덕에 그 배우와 연결지어 작품 해석이 더해지는 것이다. 당시는 무명이었던 출연 배우들도 유명세를 타면서 다시 보는 맛도 좋다. ‘재방송’에서 조카로 출연한 임성재는 ‘디피’ 시즌2에서 손석구가 아끼는 후배로 나왔다. ‘반장 선거’에는 ‘돼지의 왕’ 최현진도 보인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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