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이두나!’로 물오른 연기력을 뽐내고 있는 수지. 그가 배우로서 처음 주목받은 작품이 2012년 영화 ‘건축학개론’이다. 워낙 유명해서 알 만한 사람은 알지만, 요즘 세대에겐 낯설지도 모를 작품. 주말에 다시 보자.
‘건축학개론’도 ‘이두나!’처럼 첫사랑의 설렘이 가득하다. 35살 건축가가 된 승민(엄태웅) 앞에 15년 만에 첫사랑 서연(한가인)이 나타난다. 서연이 자신의 제주 집 설계를 부탁하면서 둘은 자주 만나게 되고 자연스레 20살 시절을 추억한다. 당시 승민은 건축학과 건축학개론 수업 때 만난 서연한테 첫눈에 반했다. 예쁜 날들이 이어지지만 ‘이두나!’처럼 마음을 다 꺼내지 못하고 작은 오해로 멀어진다. 대학생 시절 서연과 승민을 연기하는 배우가 수지와 이제훈이다.
‘건축학개론’의 수지는 첫사랑이 의인화하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국민 첫사랑’이란 별명이 달리 생긴 게 아니다. 맑고 투명한 얼굴에 긴 생머리, 하늘하늘한 치마. 서연은 지금 보면 답답한 구석도 있는데, 그 시절엔 그게 첫사랑 영화의 법칙이었을 거라 생각하니 세월의 변화가 느껴진다. 같은 수지가 연기했더라도 제멋대로 구는 두나는 그 시절의 첫사랑이 될 수 있었을까. ‘이두나!’와 ‘건축학개론’을 차례로 보면서 변화를 읽어보자.
서울의 강북, 한강 등 특정 지역을 조명하는 시도를 ‘건축학개론’은 일찌감치 했다. 정릉이라는 공간이 주는 정서적 감흥이 크다. 재욱 선배가 몰고 다니는 쏘나타2를 비롯해 르망, 프린스, 콩코드 같은 자동차와 삐삐, 필름 카메라 등 1996년도를 보여주는 소품들이 그 시절을 고증한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보면 초호화 캐스팅이다. 주연배우 외에도 영화 시작과 함께 지금은 스타가 된 이들이 내내 등장한다. 수지가 좋아하는 재욱 선배는 유연석이고, 재욱의 후배이자 승민의 친구인 동구는 조현철이다. 고준희가 승민과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후배 은채, 박수영이 구 소장, 김의성이 건축학개론 교수로 나온다. “납득이 안 되네~”를 연발하며 등장하는 승민의 친구, 일명 납뜩이는 조정석이다. 조정석은 이 영화로 인기를 얻었다.
‘건축학개론’의 메인 카피는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이다. 모두에게 처음은 서툴면서도 아름다운 것이다. 그런데 2023년에 이 영화를 다시 보니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첫사랑은 왜 모두에게 예쁜 기억으로 남아 있어야 하는 걸까? 소름 끼치도록 끔찍한 기억인 사람은 없을까? 관련 작품 한번 찾아봐야겠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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