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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35분 쉼없는 대사, 잠재의식에서 쏟아진다…‘테베랜드’ 정희태의 열정

등록 2023-09-16 09:00수정 2023-09-18 11:41

[이주의 이슈] 연극에 도전하는 배우들
쇼노트 제공
쇼노트 제공
배우를 힘들게 하려는 제작진의 악취미가 분명해!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연극 ‘테베랜드’를 두고 이런 농반진반의 격한 반응이 나온다. 형식도 복잡한데 대사량까지 많아 배우들이 연기하기 너무 어려운 작품이어서다. 2인극인데 러닝타임이 2시간50분(170분). 중간 휴식(인터미션) 15분을 제외해도 2시간35분(155분) 동안 배우 두명이 퇴장 없이 말을 쏟아내야 한다. 극 중 에스(S)가 농구 용어와 규칙을 긴 시간 빠르게 내뱉는 1막 마지막 장면은 압권이다.

내용이라도 쉬우면 모를까, ‘테베랜드’는 우루과이 출신 극작가 세르히오 블랑코가 오이디푸스 신화에서 영감을 받아 썼다. 부자 관계를 도스토옙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프로이트, 신화 속 땅 ‘테베’ 등에 빗댄다. 극작가 에스가 폭언과 폭력을 일삼은 아버지를 죽이고 존속살인범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마르틴을 찾아가 인터뷰한다. 이를 다시 에스가 자신이 만드는 극에서 마르틴을 연기할 페데리코한테 전한다. 마르틴과 페데리코는 1인2역이다. 에스가 마르틴과 대화를 거듭할수록 관객은 그와 같은 고민에 빠진다. 폭언과 폭력을 일삼은 아버지가 과연 진짜 아버지였을까? 자신의 인생을 무너뜨린 이를 죽인 것이 존속살해일까?

작품이 심오한데 꾸벅꾸벅 조는 관객은 찾아보기 어렵다. ‘테베랜드’는 이런 내용으로 관객을 집중시켜서 특히 입소문을 탔다. 모처럼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연극의 등장에 젊은 관객들 사이 토론 문화도 조성되고 있다. 삼삼오오 모여 작품을 해석하고, 영감을 준 신화를 공부하기도 한다. 이 작품을 두번 봤다는 한 관객은 “보는 내내 의미를 생각하면서 깊게 빠져든 작품은 오랜만”이라며 “친구들과 모여 토론을 하며 각자의 해석을 공유했다”고 했다. ‘테베랜드’에서 이석준, 길은성과 함께 에스로 나오는 정희태는 “블랙홀처럼 빠져드는 작품”이라며 “보기 전에도, 보고 나서도 관객들을 궁금하게 만든다”고 했다.

쇼노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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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태’ 역시 관객들이 궁금해하는 요소다. 작품을 보고 나면 “정희태는 왜 자꾸 사서 고생을 하나?”라는 의문에 사로잡힌다. 그는 지난해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JTBC)이 끝나고 ‘테베랜드’에 출연했다. ‘재벌집 막내아들’로 존재감이 부쩍 커진 그는 쉬면서 재충전한 뒤 차기작을 선택했어도 된다.

연극과 드라마를 겸하는 배우는 많지만, 정희태에게 ‘테베랜드’는 마인드 컨트롤 차원이 아니라 자신을 뛰어넘는 도전인 셈이다. 정희태는 “대본을 보는 순간 작품이 너무 어려워서 걱정이 됐지만, 꼭 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대본을 읽을 때마다 새로운 해석이 가능해, 공연 시작 두달이 지난 지금도 대본을 보고 또 본다”고 했다.

‘테베랜드’ 대본에는 지문이 거의 없다. 손우현, 레오와 함께 마르틴과 페데리코를 연기하는 이주승은 그래서 눈물이 날 뻔했다고도 한다. 그만큼 배우들의 해석이 필요하고 대사량이 많은 작품이다. 이런 점에서 ‘테베랜드’는 배우들을 끊임없이 채찍질하는 작품으로도 화제다. 정희태는 ‘재벌집 막내아들’ 출연 전에도 좀 더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에 연기 모임을 만들어 스터디를 했다. 이번에는 내용을 잠재의식화하는 방법을 고민했다고 한다. 그는 그 많은 대사를 어떻게 외웠느냐는 질문에 “대본 연구나 분석을 충분히 한 뒤 머릿속에서 삭제하는 작업을 했다. 그게 잠재의식처럼 상황이 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게 가능한가? 그는 “그래서 매 공연 전에 대본 정독과 1막 리허설은 반드시 다시 한다”고 했다. 배우들은 상대역의 대사를 녹음한 뒤 혼자 맞춰보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테베랜드’는 9월24일 마지막 공연이 다가올수록 화제성이 커진다. 심오한 내용도 그렇지만, 이런 배우들의 노력도 입소문을 타고 있다. 정희태가 ‘테베랜드’에 도전한 것을 본 한 배우는 “나도 나를 뛰어넘을 수 있는 연극이 하고 싶어졌다”며 고민하던 연극 출연을 최근 결정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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