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혁의 ‘달콤한 끼니’
터치아트카페
내가 제일 부러워하는 사람은, 머리 뒤에 뭔가 닿기만 해도 금세 깊은 잠으로 빠져드는, 일명 ‘5분 대기조’들이다. 특히 좁디좁은 비행기 일반석에서 가부좌에 가까운 앉은 자세로 몇 시간 동안 숙면을 취하는 고수들을 볼 때면 스승으로 모시고 그 비법을 전수받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 다음으로 부러운 사람들은 어느 자리에서나 글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이다. 집에서나 회사에서나 카페에서나 지하철에서나 뚝딱뚝딱 글을 써내는 사람들이 정말이지 존경스럽다.
몇 달 전 외국으로 볼일을 보러 간 친구가 작업실을 빌려주었다. 일산의 호수공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작업실이다. 떠나는 친구에게 “네가 돌아올 때까지 멋진 장편소설 하나를 끝마치겠다”고 호언장담을 했건만 두 달이 지난 지금 소설은 시작하지도 못했다. 핑계는 있다. 풍광이 너무 좋아서 도무지 글을 쓸 수가 없다. 작업실만 있으면 글 쓰는 기계가 되어 훌륭한 글을 끊임없이 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작업실이 없을 때는 카페 신세를 많이 졌다. 좋은 카페에는 ‘작업’에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춰져 있다. (부지런한 종업원이 있다면) 물을 무한정 마실 수 있고, (돈을 내야 하지만) 커피도 마실 수 있으며, (선곡이 엉망인 곳이 많긴 하지만) 음악을 들을 수 있고, (눈치가 좀 보이지만) 노트북을 꽂을 콘센트도 있다. 하지만 ‘카페 작업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내 맘대로 손님을 고를 수 없다는 것이다. 전화 통화를 하며 자신의 모든 사생활을 만천하에 까발리는 목소리 큰 아저씨나 모든 대화의 소재, 제재, 주제가 ‘우리 아이’에 집중되는 수다스러운 아줌마 부대가 옆 테이블에 앉는 날이면 그날 작업은 종칠 수밖에 없다. 어떻게든 집중을 해보려고 하지만 “아이구, 김 과장님, 그러시면 제가 곤란하죠. 삼백 정도에서 결정을 하시고…” “은수는 학원 몇 군데 다녀? 우리 아이는…”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머릿속에 있던 아이디어들이 충돌 직후의 자동차 유리창처럼 산산조각 나버린다.
파주 헤이리에 있는 ‘터치아트카페’(031-949-9434)는 내가 본 가장 이상적인 작업실이었다. 우선 친절하며, 음악도 마음을 거스르지 않는다. 두 명의 바리스타가 뽑아내는 커피의 맛도 훌륭하다. 에스프레소도 맛있고 카페라테나 아포가토도 수준급이다. 게다가 2층과 3층에는 갤러리가 있어서 전시회를 볼 수도 있다. 카페에서 보이는 풍경도 멋지다. 카페 앞으로 보이는 갈대밭 풍경은, 황홀한 저녁놀처럼 관람자의 눈을 압도하지 않고 마음의 수면이 살짝 일렁일 정도로만 쓸쓸해서 좋다. 경치가 아니라 내 마음의 풍경을 보는 것만 같다. 이곳의 와플은 여느 것과는 달리 심심하고 담백해서 이곳의 풍경과 잘 어울린다. 당부하고 싶은 것은, 혹시 터치아트카페를 찾게 되더라도 휴대전화 통화를 빙자하여 자신의 사생활을 폭로한다거나 건너편 테이블 사람들에게까지 학원 정보를 알리는 결례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듣기에는 이곳의 고요가 너무 소중하다.
소설가 김중혁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