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비빔밥
김중혁의 ‘달콤한 끼니’ = 전주비빔밥
내 인생의 스포츠를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농구다. 핸드볼 경기의 스피드를 방불케 하는 영국 프리미어리그도 좋아하고, ‘우아하고 감상적’인 한국 야구나 육상경기에도 열광하지만 농구만큼 내 인생을 바꿔놓은 스포츠는 없었다.
‘지덕체(智德體)’를 겸비해야 했던 중학교 시절, 어쩌자고 나는 공부에만 전념해서, 3학년이 됐을 때는 꿈에 그리던 전교 1등은 고사하고 체력이 바닥나는 바람에 공부를 멀리한 채 오락실에서 허송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오락기계의 버튼 누를 힘만 간신히 남아 있었다. 당연하게, 혹은 다행스럽게 일류 고등학교 시험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감동적으로 보았던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에는 삼촌이 조카에게 해주는 명언이 나온다. 조카가 “고등학교가 지긋지긋해요”라고 투덜거리자 삼촌이 대답한다. “프루스트는 20년 동안 아무도 읽지 않는 소설을 쓰며 고통의 세월을 보냈지. 훗날 그 시절을 사랑한다고 말했어. 고통이 없으면 고통을 추억할 수 있는 즐거움도 사라지고 말아. 고등학교야말로 고통의 최고봉이잖아.”
나 역시 고통스럽게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지만, 농구를 만난 덕분에 그리 힘들지 않게 그 시절을 견딜 수 있었다. 어째서 농구에 매료됐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쉬는 시간이면 무조건 운동장으로 달려나갔고, 점심시간에는 5분 만에 식사를 끝내고 농구를 하러 나갔다. 남다른 운동감각 같은 것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농구 실력은 더디게 늘었지만 공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골대로 힘껏 농구공을 던지면 하늘이 함께 보였다.
틈날 때마다 농구를 했던 친구들은 대부분 일류 고등학교 시험에서 떨어진, 말하자면 낙오자들이었는데 농구를 할 때만큼은 모두 환하게 웃고 있었다. 때론 10명이서, 때론 4명이서, 때론 혼자서 농구를 했다. 농구를 열심히 한 덕분에, 고등학교 3학년 때가 됐을 때는 체력이 너무 좋아져서 도저히 공부를 하고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주로 독서실에 가방을 던져놓고 친구들과 나돌아다녔다.
고등학교 때 농구를 열심히 해선지 체력은 여전히 괜찮은데, 이제는 함께 농구할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풀코트로 경기하려면 열 명이 필요한데, 도대체 한가하고 할 일 없는 삼십 대의 남자 열 명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그래서 요즘은 프로농구를 열심히 본다. 작년까지는 KCC 이지스의 극성팬이었는데, 전주까지 원정응원을 가기도 했다.
원정응원 여행코스는 늘 비슷하다. 우선 하루 전날 전주에 도착해 맛있는 음식을 사먹는다. 그 다음 시내 구경을 한다. 저녁에는 숙소로 들어가 맥주를 마시며 텔레비전으로 농구 경기를 본다. 푹 자고 일어나, 경기장으로 향한다. 경기를 보고 서울로 돌아온다. 응원하는 팀이 이기든 지든 별로 중요하지 않다. 경기장에서 선수들이 땀을 흘리며 이쪽저쪽으로 뛰어다니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들뜬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게 아쉽지만, 누군가 내 고등학교 시절을 추억하며 경기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사진 속의 음식은 전주 가족회관(063-284-0982)의 비빔밥인데, 먹어본 비빔밥 중에서 가장 맛있었다. 비볐다기보다는 모두 함께 어우러진 채 각자의 개성을 발휘하고 있는 듯한 맛이었다. 비빔밥의 조화와 농구팀 포지션의 조화를 괜히 비교하면서 맛있게 먹곤 했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비빔밥에 왜 이렇게 곁반찬이 많이 나오나 싶었지만 모든 음식이 절묘하게 어울렸다. 계란찜의 맛도 감탄스러웠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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