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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형제는 논쟁을 했다, 조정래를 주제로…

등록 2014-11-28 19:34수정 2014-12-15 14:45

[토요판] 르포
이사 간 헌책방 ‘정은서점’의 일상
지난 26일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의 헌책방 정은서점에서 주인 정재은씨가 책을 정리하고 있다. 그는 한달 전인 10월27일에 연세대 앞에서 이곳으로 이사 왔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지난 26일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의 헌책방 정은서점에서 주인 정재은씨가 책을 정리하고 있다. 그는 한달 전인 10월27일에 연세대 앞에서 이곳으로 이사 왔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사실은 알려질수록 진실로 인정받습니다. 생각은 퍼질수록 힘을 얻습니다. 감정은 널리 공감될수록 온전히 보존됩니다. 책의 존재 이유는 읽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책에 담긴 사실, 생각, 감정이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 면에서 헌책방은 책에 생명을 불어넣는 장소입니다. 한달 전 22년간 자리를 지켰던 한 헌책방이 이사를 갔습니다. 그 헌책방을 찾았습니다.

헌책방이 사라졌다. 서울 신촌의 연세대 정문 앞에서 22년간 자리를 지켜온 정은서점을 지난 25일 오전에 찾았더니, 휑한 공간만을 남겨둔 채 온데간데없었다. 비어 있는 하얀 간판 안에 ‘헌책 할인매장 정은책서점’이란 글씨가 붙어 있던 자리는 세월의 때가 묻지 않아 하얗게 도드라졌다. 덕분에 이곳이 헌책방이 있던 자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텅 빈 가게 안에서 측량하던 사람에게 다가가 ‘이곳에 있던 헌책방이 어떻게 됐는지’를 물었다. “다른 곳으로 이사 갔다”고 그가 답했다. 인터넷으로 정은서점의 연락처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다이얼이 울리고,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정은서점의 주인이었다. 그는 “한달 전에 연희동으로 이사했다. 서대문소방서 맞은편 건물의 지하 1층”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여덟번째 정거장인 ‘외국인학교’에서 내렸다. 근처에 빨간 소방차가 주차돼 있는 서대문소방서가 보였고, 길 건너 맞은편에 오피스텔 건물이 있었다. 그 건물에 노란색 작은 간판이 지하에 정은서점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계단을 타고 어두침침한 지하로 내려가자 환하게 조명을 켠 책방이 눈에 들어왔다. 책들이 책장에 빼곡히 들어차고도 넘쳐 책장 사이사이 바닥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책방 주인 정재은(69)씨가 오늘의 첫 손님을 반겼다.

“아직 책 정리가 안 됐어요. 이 많은 책들을 옮기느라 정말 혼났죠.”

헌책 팔다 강산이 네 번 바뀌다

그는 정확히 몇 권인지 모르지만, 수만권은 족히 되는 책들을 옮기느라 애를 먹었다고 했다. 하루에 서너시간씩 용달차를 빌려 책을 옮겼는데도 보름이나 걸렸다. 지난 10월27일 이사를 끝냈지만, 그때부터 책 분류 작업은 시작이었다. 한달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는 책을 정리하고 분류한다.

“제가 1969년부터 45년간 헌책 장사를 하던 사람이에요. 처음엔 성북동 길음시장에서 노점을 했고, 그 이후에 미아리와 연신내, 명지대 앞에서 20여년 장사를 했어요. 연세대 앞에는 1992년 자리잡아 22년 동안 장사했죠.”

정씨는 평생의 유일한 직업이 ‘책 장사’라고 했다. 전라남도 목포에서 보낸 학창 시절,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 서점에서 점원을 하며 고등학교를 다녔다.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대신 군대를 다녀왔고, 바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낯선 서울에 무작정 올라온 그는 종로에서 헌책을 떼다가 노점에서 팔기 시작했다.

“그땐 참 겁이 없었어요. 서점 점원도 했으니까, 내가 책에 대해서 잘 안다고 자신만만했죠. 그렇게 멋모르고 시작한 책 장사였죠. 어깨 멜빵으로 책 가져와 길음시장에서 노점을 했죠. 그땐 사람들이 책을 많이 샀어요. 좋은 책들도 많이 나왔고요. 그때 소설이 요즘 것보다 더 좋은 것 같아요. 그때 김승옥이나 이청준의 소설은 정말 좋아, 참 잘 썼어 정말.”

그는 22년간 머물렀던 학교 앞을 왜 떠났을까. 그가 새로 자리잡은 곳은 이전보다 유동인구가 적고, 지하철역에서 멀어 접근성이 떨어지고, 게다가 눈에 잘 띄던 1층에 비해 잘 보이지 않는 지하 1층이었다.

“장사가 너무 안되어서 임대료도 못 내는 지경이 됐어요. 학교 앞이 임대료가 비싸 보다 저렴한 이쪽으로 이사왔어요. 아직 이사 온 게 알려지지 않아 손님이 거의 없지만, 장사 계속 하려고 이쪽으로 왔죠. 한달에 내는 임대료 정도만이라도 벌려구요.”

헌책방이 사양세에 접어든 것은 새삼스럽지 않은 일이다. 1960, 70년대를 제외하곤 헌책방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추세였다. 그래도 대학들이 몰려 있는 신촌에선 명맥이 이어졌다. 이 지역의 터줏대감은 ‘공씨책방’과 정은서점이다. 1972년 경희대 앞에서 시작한 공씨책방이 1991년 3월 신촌으로 이사해 왔고, 정은서점은 이듬해 1992년 연세대 앞에 자리잡았다. 1999년엔 출판사 출신의 노동환(49)씨가 헌책방 ‘숨어있는책’을 새로 냈다. 2000년대에도 홍익대 앞 헌책방 ‘온고당’의 옛 주인이 서대문구 창천동에 ‘글벗서점’을 냈고, 아현 재개발지구 인근인 마포구 염리동엔 ‘유빈이네책방’ 등도 자리잡았다. 2004년엔 청계천에 있던 ‘동국서적’이 신촌으로 옮겨 오기도 했다. 하지만 옮겨 온 동국서적을 비롯해 ‘서연서점’ ‘우리동네책방’ ‘도토리 중고서점’ 등이 문을 닫았다. 2000년대만 해도 신촌 지역은 헌책방이 문을 닫기도 하고, 새로 생기기도 하는 공간이었다. 그런 상황이 2012년 ‘알라딘 중고서점’이 들어오면서 달라졌다. 알라딘과 가장 가까이에 있던 도토리 중고서점이 2012년 문을 닫았고, 올해 4월엔 국내 서적뿐 아니라 일본 서적과 음반도 취급했던 북오프가 폐점했다. 정은서점의 주인 정재은씨도 알라딘 중고서점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거기가 생기면서 장사가 더 안되긴 했죠. 젊은 사람들은 거기서 사는 게 편하니까.”

2011년 9월 종로에 처음 들어선 알라딘 중고서점은 이듬해부터 서울 신촌, 경기 분당, 부산 등에 새 지점을 내며 뻗어나갔다. 올해 11월 기준으로 전국에 19개 매장이 있다. 이 중고서점은 전산화된 관리로 필요한 책을 바로 찾을 수 있고, 오프라인과 온라인 모두 판매가 가능하다. 물론 알라딘 중고서점이 기존 헌책방들을 사장시켰는지는 분명치 않다. 기존 헌책방들이 이미 사양세에 접어들었고, 알라딘이 새 시장을 창출한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기존 헌책방 시장이 프랜차이즈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동네 빵집들이 사라지고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가 휩쓸었듯, 동네 이발소가 없어지고 블루클럽과 나이스가이가 득세했듯, 동네 분식집이 아딸과 국대, 죠스떡볶이로 바뀌고, 동네 세탁소가 크린토피아로 간판을 바꿔 다는 현상이 헌책방 시장에도 나타난 것이다. 프랜차이즈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경쟁에서 도태돼 문을 닫는 기존 상점들도 늘어난다. 프랜차이즈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비용을 줄이고, 균일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프랜차이즈 대형 헌책방 생기며
높은 임대료, 줄어든 손님
신촌 헌책방 하나둘 자리를 뜨고
45년 헌책 장사한 정재은씨의
정은서점은 새집을 얻었다

기자과 함께한 이틀 동안
손님은 단 한 명뿐
헌책에 다시 먼지가 내리고
정씨는 동생과 막걸리 마시며
책과 세상 이야기를 했다

나이 드니까 세계문학이 더 좋아져

정씨는 헌책방의 위상에 관계없이 45년간 휴가도 내지 않고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그런 그가 올해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태어나서 처음 여권을 만들었어. 딸들이 칠순 기념으로 보내준다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다녀왔지.”

“어디 다녀왔어요?”

“일본 오사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일생을 다룬 <대망>이란 책을 보니까, 거기에 나온 오사카성이 보고 싶더군.”

“책을 그리 많이 보셨는데, 책에 나온 세상은 안 궁금했어요?”

“그럴 시간이 없었어. 난 헌책방 하면서 세 딸을 다 키우고, 대학까지 다 보냈어. 젊을 땐 일요일도 없이 일했지. 그런데 요즘은 생각이 좀 바뀌었어. 주말엔 쉬고, 오전엔 아내와 운동을 해. 여기 정리하는 것도 마찬가지야. 처음 이사 와선 이 책들을 빨리 정리해야겠단 생각에 가슴이 답답했어. 그런데 요즘은 마음을 고쳐먹고, 그냥 이렇게도 살아보자 싶어. 그동안 너무 멍청하게 바삐 살아왔어. 누가 알아주기라도 하나.”

25일 오후에도 정씨는 책을 분류하고 있었다. 사회과학, 바둑, 춤, 여성학 등은 분류를 거의 마쳤고, 사진과 한국사, 세계문학, 한국문학, 음악, 외서 등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그는 세계문학전집을 한 질 풀었다. 정음사의 ‘도스토옙스키 전집’이었다.

“정음사 전집이 번역이 괜찮아 그런지, 꾸준히 나가요. 이게 세로쓰기지만, 편집이나 활자 상태도 좋아요. 표지도 봐봐, 얼마나 멋있어.”

<죄와 벌> 표지엔 유성물감으로 칠한 그림이 있었다. 책을 열어보았다. 1971년 발행됐고, 번역자는 함일근씨였다.

“나이 드니까 세계문학이 더 좋아져. 2년 전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다시 읽었는데, 정말 좋았어.”

그는 정리를 하다 말고 책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기자가 천경자의 에세이집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라>를 만지작거리자, 그는 “천경자씨 그림도 잘 그리는데, 에세이도 참 잘 쓴다”고 했고, 또 “에세이나 동화는 장영희나 정채봉씨의 것도 참 좋다. 오천석씨의 <노란 손수건>도 정말 감동적이다”라고 말했다. 정씨가 언급한 책들을 집어 들어 읽기 시작했다. 정채봉씨의 <돌, 구름, 솔, 바람>이란 동화집의 첫번째 이야기는 ‘아이들의 친구인 동네 난쟁이 아저씨’에 대한 글이었다. 서커스단에 팔려간 난쟁이 아저씨가 어느 날 병에 걸려 몸져누웠다. 아이들이 병문안을 갔더니, 아저씨는 공연할 때 입던 무지개옷을 입고 있었다. 아이들이 “그 옷이 좋냐”고 묻자, 그가 “무지개는 제각기 빈 마음으로 층을 이룬 거야, 그래서 아름답지. 그런데 어른들은 무엇이건 채우려고만 해. 돈도, 지식도, 명예까지도. 그러니 무지개가 이 세상에서 오래 서 있을 리가 없지”라고 답한다. 그러고서 그는 “그만 돌아가. 난 나의 별로 돌아간다. 가기 전에 선물을 하나 남길게”라고 말했다. 다음날 아침, 아이들이 일어나 보니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다는 이야기다.

<노란 손수건>을 집어 들었다. 이 책은 문교부 장관을 지낸 오천석씨가 미국 유학 시절 외국잡지에서 읽은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번역해 엮은 것이다. 초판이 1975년 발행됐는데, 이 책 뒤편에 1975년 12월5일 발행이라고 적혀 있었다. 세로로 배열된 글들을 읽어나갔다. 여러 편 중 표제로 쓰인 ‘노란 손수건’ 편은 대략 이런 이야기였다. 감옥에 수감된 한 남자가 아내에게 “혼자 사는 것이 괴롭고 아이들이 자꾸 아버지를 찾는다면, 나를 잊고 재혼해도 좋다”고 얘기하자, 3년 반 동안 연락이 끊겼다. 이 남자는 석방되기 직전에 다시 편지를 보내 “나를 용서하고 받아줄 마음이 있거든 마을 입구의 큰 참나무에 노란 손수건을 매달아 달라”고 전한다. 며칠간 같은 버스를 타고 가던 사람들이 이 사연을 알게 되자 다들 숨죽이며 마을에 닿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마을에 도착하자 모두들 환호하고, 이 남자는 눈물을 흘린다. 참나무에 노란 손수건이 30개, 40개 아니 수백개가 매달려 물결치고 있던 것이다.

정은서점이 원래 있던 자리. 비어 있는 하얀 간판에 ‘헌책 할인매장 정은책서점’이란 글씨가 세월의 때가 묻지 않아 하얗게 도드라졌다. 윤형중 기자
정은서점이 원래 있던 자리. 비어 있는 하얀 간판에 ‘헌책 할인매장 정은책서점’이란 글씨가 세월의 때가 묻지 않아 하얗게 도드라졌다. 윤형중 기자

“그 순댓국집은 내 입엔 영 안 맞더군”

정씨의 책 이야기는 끊임이 없었다. 사무실에 따로 보관한 고서, 희귀본들을 보여줬다. 단기 4281년(서기 1948년)의 초판 <백범일지>,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한국화폐정리부편찬>, 최남선이 쓴 <조선상식>, 일제 때 고등경찰에 대해 다룬 <고등경찰요사> 등 오래된 책들이 수두룩했다. 특히 백범일지는 책을 처음 산 사람이 “우리 민족이 다 같이 존경하는 백범 김구 선생님의 운구 입관식 날, 선생님의 명복을 비는 마음으로 이 책을 사다. 4282년 6월29일”이라고 적어 놓았다. 독재정권 시기에 판매가 금지됐던 이념서적들도 헌책방에서 유통되곤 했다. 정씨는 “알고서도 팔고, 모르고서도 팔았다. 그땐 대학생들이 사회과학 서적들을 많이 읽었다”고 했다.

이날 정씨는 기자 이외에 단 한명의 손님을 맞았다. 화폐 관련 책을 구하러 왔다며 찾아온 손님은 한참 고서적들을 뒤지더니 두 권의 책을 4만원에 사갔다. 이튿날인 11월26일엔 책을 사러 온 손님이 한명도 없었다. 다만 정씨의 친동생 정재두(62)씨가 찾아왔다. 헌책방 한켠에서 막걸리를 앞에 두고 형제간에 대화가 이어졌다. 대화는 점점 격렬한 토론이 됐다. 발단은 ‘작가 조정래’에 대한 입장차였다. 형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조정래씨가 역사를 기록하는 작가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좀 좌편향 같아.”

“형. 그게 아니라, 그 사람은 <아리랑> <한강>에서도 쭉 일관되게 인간의 고통, 아픔을 기록한 거야.”

“내가 언론인이자 작가였던 이병주씨의 대하소설이나, 조선일보 편집국장 출신인 선우휘의 <불꽃>을 봐도, 전쟁 당시의 모습들이 사실적으로 담겨 있어. <불꽃> 보면 ‘아침엔 인공기 올리고, 저녁엔 태극기 올리는 마을’이 묘사되잖아. 근데 <태백산맥>은 마치 인민군은 양민들에게 피해를 안 준다는 식으로 묘사해.”

“그 책은 좌우의 관점이 아니라, 아픔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해.”

“그럼에도 <태백산맥>은 공산주의에 우호적이야. 남부군을 따라다닌 종군기자 이태가 쓴 책을 봐도 그 정도는 아니야. 요즘도 북을 찬양하는 세력이 있어 우려스러워.”

“형. 그러니까 방송은 16번대 보지 말고, 정규방송을 좀 보라니까. 그게 자주 보면 세뇌가 돼.”

“내가 이러니까 딸들하고도 대화가 잘 안되나. 요즘 사람들하고 좀 생각이 달라.”

“형. 진리가 하나만 있는 게 아니야. 여러가지가 있어. 다수결이라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야.”

“그래 니 말이 다 옳고 좋은데, 그런 이야기보다 하나라도 좋은 실천을 하는 게 중요해. 일일일선이라고. 하루에 하나라도 선한 일을 하는 게 중요하지.”

“기자 양반. 우리 형제가 다섯인데, 우리 형이 첫째고, 내가 셋째예요. 우리가 이렇게 자기 생각 얘기하며 목소리 높여도, 한번 싸운 적이 없어요.”

“자네는 말수를 줄여야 해. 내가 수첩에 적어놓은 노인헌장이 있는데, 그 첫번째가 말수를 줄이는 거야.”

군데군데 정리되지 않은 책들이 수북이 쌓인 헌책방 한켠에서 막걸리 잔이 오갔고, 대화는 깊어졌다. 이날 형제는 책방과 같은 건물에 있는 순댓국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다음날 다시 헌책방을 찾았다. 정씨가 기자에게 물었다.

“혹시 ○○순댓국집에 가봤어요?”

“이 건물에 있는 집은 안 가봤고, 다른 곳에 있는 집은 가봤어요.”

“맛이 어땠수. 내 입맛엔 영 안 맞더라. 옛날 순댓국 맛이 아니라, 젊은 사람들 입맛에 맞게 만든 건가 싶어.”

그 순댓국집은 2년 만에 220호를 돌파한 기업형 프랜차이즈다. 헌책방의 프랜차이즈화에 밀려난 정씨는 그 순댓국 맛에 적응하지 못한 듯했다.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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