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경남 밀양시 부북면 춘화리 일대에서 시작된 산불이 인근 도시를 집어삼킬 듯 산등성이를 타고 번지고 있다. 서재철 제공
여름에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지난달 31일 오전 9시25분께 경남 밀양시 부북면 춘화리 일대에서 산불이 시작됐다. 산 중턱에서 일기 시작한 불길은 강풍을 타고 삽시간에 번져 나갔다. 산림청은 산불 발생 2시간이 조금 지난 오전 11시45분, 산불대응 3단계를 발령했다. 소방청도 비슷한 시각, 소방동원령 1호를 발령했다. 산불은 건조한 산속에 돌풍을 비롯한 강한 바람이 이어지면서 오후 들어 더 확산했다. 산림당국은 전국에서 가용한 진화헬기를 밀양에 최대한 투입했다. 하지만 당일 진화는 어려웠다. 이날 저녁 9시부터는 밀양 시내에서 산불이 치솟아 오르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지난달 31일 시작된 경남 밀양 일대 산불이 인근 숲을 집어삼킬 듯 번지고 있다. 서재철 제공
밀양에서 대형 산불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시민들은 발생 첫날 낮에 뉴스를 보고 산불 소식을 알았다. 오후부터는 밀양시청 뒷산과 시내 인근 부북면으로 이어지는 산지에서 하늘을 뒤덮듯 퍼져 가는 연기를 보면서 산불을 실감했다. 아울러 진화 헬기가 오가는 굉음 소리에 ‘밀양에 큰 산불이 났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산림당국은 건조한 가운데 발생한 산불이라 첫날 진화에 애를 먹었다. 밀양이 산불재난 상황 속으로 흘러갔다. 산림청 진화헬기의 현장 운항을 통제하는 이경수 기장은 “여름 날씨에 이런 규모의 대형 산불은 처음 겪는다. 산불의 진행 속도는 빠르지 않아도 연기가 상당하다. 지표화로 진행되는 불길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며 여름 산불이라는 새로운 상황을 지적했다.
산불이 이틀째로 접어들면서 산림청과 소방청, 경찰 그리고 군까지 동원돼 산불 진화에 총력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가물고 건조했던 날씨 탓에 땅바닥을 야금야금 삼키면서 퍼져 가는 산불의 기운을 잡기가 어려웠다.
밀양 산불의 최대 고비는 옥교산(538m) 일대였다. 맵고 짠 한국 산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경사가 매우 급하고 군데군데 소나무 군락도 산재하여 지표로 타들어가던 불길이 갑자기 하늘로 치솟듯 타오르기도 했다. 아울러 상당한 연기를 뿜어내면서 진화를 더디게 했다. 애초 산림당국은 산불 발생 이틀째 오전에 주불을 잡고 오후에 진화 완료를 기대했다. 더욱이 6월1일은 지방선거가 있는 날이었다. 새벽 5시10분께부터 진화 헬기가 옥교산을 비롯하여 산불 화선이 늘어져 있는 곳을 정찰하였다. 그러나 간밤에 산불이 뿜어낸 연기로 밀양시 교동부터 북쪽으로 부북면 일대까지 산자락과 산촌 마을은 운해같이 그윽하게 퍼진 연기에 가려져 있었다. 지난 3월 울진 삼척 산불에서 실감했던 그런 연기가 밀양 산불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산불 진화에서 가장 큰 적이 연기와 강풍이다. 둘 다 산불 진화의 주요 수단인 헬기의 접근을 가로막는다. 대형 산불에서 산림청 헬기들은 강풍을 뚫고 무리를 하면서 진화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연기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50대가 넘는 헬기들이 새벽부터 출동을 했지만 불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지체되었다.
오전을 지나면서부터 연기가 빠지면서 진화는 활기를 띠었다. 6월1일 오후로 접어들면서 헬기 57대가 밀양 시내 한가운데를 수없이 오갔다. 선거하러 나섰던 시민들도 밀양에 큰 산불이 터진 것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특정 지역 반경 10km 안에서 헬기 50대가 저공비행 하는 상황은 대형 산불이 유일하다. 전시의 전투 상황에서도 한 공역 안에서 몇십대의 헬기가 선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산불 진화에 투입되는 헬기는 대부분 중형에서 대형이라 비행 굉음이 상당하다. 수시로 불머리에 뿌리는 물을 저수지나 하천에서 담으려고 종일 저공비행을 한다. 시민들이 난생처음 굉음을 들으며 산불재난을 실감하게 된다.
밀양 산불은 사흘을 넘기고 나흘째인 3일 오전에 주불을 잡았다. 산림당국이 추산하는 산불 피해 영향 면적만 750헥타르가량이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밀양 산불은 진화에 있어서 신속하고 체계적인 대응을 보여줬다. 그러나 진화의 일선에서 산불과 마주했던 이들에게는 밀양 산불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한국에서 여름 대형 산불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1일 밀양은 기온이 31도였다. 2일에는 최고 33도까지 기록됐다. 밀양 산불은 유례없는 여름철 대형 산불이다. 정부가 1986년부터 산불을 기록한 이래 6월에 대형 산불이 나타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온건조한 대기에 여름철 산불재난은 정부도 시민도 처음 마주하는 상황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산불과 오스트레일리아 산불처럼 고온건조한 기상에서 발생한 산불이 한국에서 시작된 것이다.
밀양 산불 현장의 어르신들은 이구동성으로 “70년 넘는 세월을 살면서 이런 산불은 처음”이라며 “지난겨울부터 날씨가 너무 건조하고 가물었다”고 지적했다. 올해 5월 밀양 강수량은 평년 106.7㎜에 훨씬 못 미치는 3.3㎜다. 평년 대비 3% 수준에 불과하다.
초여름 산불로 대응에 필요한 새 과제도 제기되고 있다. 밀양 산불에서 산림청의 산불진화 헬기는 가동률이 50% 미만이었다. 전체 헬기의 절반도 투입하지 못한 것이다. 항공법이 정한 헬기 운항 및 정비 점검 일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산불진화에 투입할 헬기가 물리적으로, 정책적으로 부족한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시·도와 시·군이 민간에서 임차한 헬기도 계약한 기간이 만료됐다. 5월31일까지 계약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는 산불 예방과 진화에 소요되는 예산을 주로 5월 말까지만 편성해준다.
경남 밀양 일대 산불이 진압됐지만, 피해를 본 숲은 민둥산으로 변했다. 서재철 제공
정부의 산불재난 대응 시스템은 봄철에 국한되어 있다. 그러나 이제 산불은 겨울부터 봄을 거쳐서 여름까지 진행되고 있다. 지난 2월 영덕 산불부터 이번 밀양 산불까지 올해 들어 대형 산불 10개가 이어졌다. 한겨울 영하 10도의 영덕 산불부터 초유의 울진 삼척 산불을 거쳐서 여름으로 접어든 밀양 산불까지 연중 산불이라는 재난을 맞이하고 있다. 정부의 산불 대응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예산도 봄철에만 편성된다. 인력도 기관별로 흩어진 계약직이다. 기후위기는 지구적 위기다. 국경도 없고 정부와 민간 모두 영향을 받는다. 위기를 위기답게 받아들이고 적응에 나서야 한다. 기후위기 적응은 이런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의 생존을 위한 일이다.
정부는 지난 2일부터 19일까지 18일 동안을 ‘산불특별대책 기간’으로 정하고 산불 피해를 막기 위한 범정부적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6월 산불특별대책은 건국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또다른 산불이 걱정이다. 영남지역과 강원지역의 건조가 심각한 상황이다. 큰비가 내리기 전까지 산불 예방에 촉수를 곤두세워야 할 것이다.
밀양/서재철 녹색연합 상근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