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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우주 이치’ 새긴 삶의 나침판…1500년 전통 면면히 잇는다

등록 2015-04-21 22:02수정 2015-04-22 08:27

[장인을 찾아서] 중요무형문화재 윤도장 김종대씨
우주의 원리와 운행을 담고 있는 윤도는 때로는 인간에게 자신의 운명과 행로를 가리키는 나침반 구실을 하기도 했다. 김종대 윤도장이 수백년 된 박달나무를 깎아 촘촘히 분금을 새긴 윤도를 들어 보이고 있다.
우주의 원리와 운행을 담고 있는 윤도는 때로는 인간에게 자신의 운명과 행로를 가리키는 나침반 구실을 하기도 했다. 김종대 윤도장이 수백년 된 박달나무를 깎아 촘촘히 분금을 새긴 윤도를 들어 보이고 있다.
동양철학에서 태극은 우주의 시작이다.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의 근본이 되는 원소인 태극이 움직여 양(陽)을 낳고, 그 움직임이 극에 이르면 고요해지며 음(陰)을 낳는다고 보았다. 또 고요함이 극에 닿으면 움직임으로 되돌아간다고 봤다. 양의 변화와 음의 조화는 만물을 만들었다. 음양오행설이다. 바람(風)은 기운을 움직인다. 물(水)은 낮은 곳으로 흐르며 바람이 통하는 길이다. 풍수는 산천의 정기가 땅의 모양에 따라 형성되고 움직이는 기운이다.

옛사람들은 삶의 공간인 땅의 지세를 중심으로 삼라만상의 발산하는 기(氣)와 자연환경인 산천의 기운을 살아 움직이는 인간의 몸과 동일시했다. 그래서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은 땅을 만물의 어머니처럼 여기고 음양오행설과 풍수학을 결합해 체계적인 학문으로 만들었다. 살아 있는 동안 머물 집의 위치와 죽은 조상을 모실 묘지의 위치를 잡아 대자연의 혜택을 입어 운명을 개척하는 수단이 바로 풍수지리학이고, 그런 풍수지리학을 생활에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이가 바로 지관이다. 지관에게 없어서는 안될 도구가 바로 윤도(輪圖)다.

한가운데 태극이 그려진 윤도는 남북을 가리키는 지남철이 있어 여행자들의 나침판으로도 쓰였다. 우주 질서를 새긴 윤도에는 여러 개의 동심원에 방위(方位)가 새겨져 있다. 음양(陰陽), 오행(五行), 팔괘(八卦), 십간(十干), 십이지(十二支) 및 24절후(節侯)가 조합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지관들이 들고 다니던 윤도
지관들이 들고 다니던 윤도
땅의 지세 읽어 묘택잡는 지관의 필수품
통일신라시대부터 ‘흥덕 패철’로 유명한
전북 고창 낙산마을 장인집안으로 전승

조부 이은 백부 ‘손재주 좋은 조카’ 낙점
돌연 별세로 20대부터 기억살려 독학
“만주서 온 ‘천연 자석’ 가보로 대물림”

중요무형문화재 110호인 윤도장 김종대(82)는 조선시대부터 최고의 윤도 산지로 이름을 얻은 전북 고창군 성내면 산림리 낙산마을에서 태어났다. 조선시대에는 흥덕현에 속했는데, 이곳에서 만든 윤도는 방향이 정확하고 견고해 ‘흥덕 패철’로 불리며 전국의 지관들이 애용했다. 통일신라시대부터 이곳에서 윤도가 만들어진 이유는 마을에서 남쪽으로 1.5㎞가량 떨어진 제성산에 거북바위가 있기 때문이라고 마을 사람들은 믿고 있다. 거북바위의 등에 쇠붙이를 올려놓으면 양 끝이 정남과 정북 방향을 가리킨다. 기록에는 350년 전부터 전씨 가문에서 시작해 한씨, 서씨를 거쳐 현재의 김씨 집안으로 윤도 제작 기술이 전승돼 왔다고 한다.

김종대의 할아버지 김권삼은 이 마을에서 윤도를 만들던 ‘한운장’이라는 분에게 기능을 물려받았다. 김권삼은 네 아들 중 손재주가 있던 둘째 아들 김정의 선생에게 윤도장 일을 물려주었다. 한학에도 밝았던 김정의는 자신의 아들이 아닌, 막내아우의 아들인 조카 김종대에게 윤도 계승을 부탁했다. 손재주가 남달랐기 때문이다.

“돈이 되지 않더라도 가업이니 꼭 맥을 이어달라고 유언을 남기셨어요.” 호롱불 아래서 책을 보며, 왕복 12㎞ 되는 길을 걸어 다니며 호남고를 졸업한 김종대는 군복무를 마친 뒤 농협에 근무하며 큰아버지로부터 윤도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큰아버지가 암으로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는 거의 독학으로 일을 익혀야 했다. 정식으로 기술을 전수받지 못해 어려서부터 어깨너머로 보고 들은 내용과 대략적인 설명을 바탕으로, 스스로 주역과 한학을 익혔다. 마흔이 넘어서야 혼자 재료 준비에서 완성까지 자신있게 해낼 수 있게 되었다.

선비들이 부채에 달아 몸에 지니고 다니던 윤도
선비들이 부채에 달아 몸에 지니고 다니던 윤도
이처럼 층이 많을수록 많은 정보를 담은 고급 윤도다.
이처럼 층이 많을수록 많은 정보를 담은 고급 윤도다.
윤도의 제작에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수백년 된 박달나무를 원통형으로 잘라 그 중심을 잡는다. 한번 잡아 놓은 중심점은 윤도가 완성될 때까지 기준점이 되며, 나중에 자침을 받쳐줄 받침대를 세울 곳이다. 윤도의 층수를 정하고, 분금 작업을 한다. 정확한 분금은 윤도의 생명이기 때문에 윤도를 만드는 작업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분금 작업이 끝나면 글자를 새긴다. 가장 큰 24층짜리 윤도에는 한자가 3500여자나 들어가는데 밑글씨를 따로 쓰지 않고 칼로 파낸다. 한 글자라도 틀리면 사포질로 모두 밀어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한 층을 새기는 데는 보통 한나절이 걸리고, 글자 수가 많은 층은 꼬박 하루가 걸린다.

며칠을 걸려 글자를 새긴 다음엔 먹·옥돌가루·주사 등으로 분금과 글자에 선명하게 색을 입힌다. 남북 방향을 가리키는 자침은 강철을 깎아 숯불로 단련해 초침처럼 가늘게 두드린다. 이 자침은 이 집안에서 300년 넘게 가보로 내려오는 천연 자석 위에 세 시간가량 올려놓으면 강한 자성이 입혀진다.

“이 검은 자석 원석은 한운장 선생이 만주에서 구했다는데 원래는 물속에 있던 것이라고 해요. 우주에서 떨어진 운석이라고도 하는데, 아주 귀하게 보존하고 있어요.”

김종대의 맏아들 김희수(53)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윤도를 만들고 있으니 4대가 전통을 이어가는 셈이다.

고창/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윤도장이란

집터·묘택 찾는 풍수용 내비게이션
24방위·12지·별자리 등 한눈에

윤도에 한자를 새길 때는 밑글씨 없이 직접 새긴다. 한 자라도 틀리면 사포로 밀어내고 처음부터 다시 새겨야 한다.
윤도에 한자를 새길 때는 밑글씨 없이 직접 새긴다. 한 자라도 틀리면 사포로 밀어내고 처음부터 다시 새겨야 한다.
윤도장(輪圖匠)은 24방위를 원으로 그려 넣은 풍수 지남침을 제작하는 장인이다. 윤도는 지관이 집터나 묏자리를 정하는 풍수를 볼 때 주로 쓴다. 바퀴 모양을 한 둥근 윤도는 12지와 별자리, 방위 등을 새겨 넣은 일종의 ‘내비게이션’으로 우주의 원리와 함께 산수의 흐름까지 측정할 수 있는 도구다. 주역의 이치와 천문학, 점술, 지리학이 담겨 있다. 이제는 풍수를 미신으로 여기고, 현대화된 나침판이 등장하며 윤도가 거의 사라진 형편이다.

지관들이 흔히 사용하는 윤도는 9층짜리다. 1, 2층에는 묏자리나 집터의 방향을 잡는 데 필요한 정보를 넣고, 3층에는 오행을, 4층에는 산이나 능선의 흐름을 가늠할 수 있는 정보를 담는다. 5, 6층은 산수를 전체적으로 판단하는 데 쓰이고, 7, 8층에는 입수와 득수의 길흉을 가늠하는 내용이, 9층에는 하관할 때 망자의 사주에 맞춰 관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120분금을 새겨 넣는다. 분금을 잘 맞추면 집안의 발복과 후손에서 큰 인물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분금하는 것이 지관의 능력을 결정짓는 일이었다.

윤도는 중국에서 이미 한대(漢代)에 실용화되어 점을 치는 데 사용됐고, 한민족은 신라 후기부터 실생활에 적용했다. 윤도는 고려 전기에는 풍수음양지리와 연결되어 땅의 형세를 보는 풍수가나 지관들에게 가장 중요한 기구로 사용되었다. 조선시대부터는 풍수가뿐 아니라 천문학자들에게는 정확한 남북을 가리키는 기구로 쓰였고, 여행자들이 허리춤에 차고 다니며 방향을 잡는 데 사용됐다.

이길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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