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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절대음감 하나로 일제가 없앤 ‘조선왕실 예악’ 되살려내다

등록 2015-10-06 22:25수정 2015-10-07 10:21

편경은 ‘ㄱ’자 모양의 옥돌 16개로 만드는데, 두께가 두꺼울수록 높은 소리가 난다. 섬세한 두께 차이를 내기 위해 옥돌을 다듬는데 장갑을 끼지 않고 맨손으로 작업한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편경을 만들 수 있는 김현곤 악기장이 쇠뿔로 만든 망치로 완성된 편경의 소리를 점검하고 있다.
편경은 ‘ㄱ’자 모양의 옥돌 16개로 만드는데, 두께가 두꺼울수록 높은 소리가 난다. 섬세한 두께 차이를 내기 위해 옥돌을 다듬는데 장갑을 끼지 않고 맨손으로 작업한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편경을 만들 수 있는 김현곤 악기장이 쇠뿔로 만든 망치로 완성된 편경의 소리를 점검하고 있다.
[장인을 찾아서] 중요무형문화재 악기장 김현곤씨
성경에서 천지창조는 빛으로 시작한다. 우리 민족의 탄생 신화는 소리로 시작한다. 소리에는 파장과 에너지가 있다. 천지개벽하는 소리가 있었으니, 바로 율(律)과 여(呂)다. 율은 양(陽)의 소리고, 여는 음(陰)의 소리다. 그런 소리들에 의해 별이 생겨나고, 마고가 태어났다. 마고는 그의 자식들에게 하늘의 악기를 연주하는 법을 가르친다. 소리의 원천인 악기를 연주하는 법을 가르친 것은 만물을 주관하는 법을 가르쳤다는 의미일 게다. 전통의 예악은 임금이 세상을 조화롭게 만들어나가겠다는 무언의 약속이다. 음악으로 공표하는 정치 공약인 셈이다.

순창서 무작정 상경 악기점 ‘알바’
수리솜씨 살려 악기 제작업 ‘성공’

40대 중반 ‘편경·편종’ 복원에 도전
종묘제례악 ‘시작과 끝’…기록 전무
공항 기념품서 ‘편경의 옥돌’ 찾기도
“세상 모든 소리 모은 박물관이 꿈”

김현곤 악기장이 만든 편종
김현곤 악기장이 만든 편종
서양에 오케스트라가 있다면 우리에겐 종묘제례악이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1호’이자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인 종묘제례악은 처음 편종의 종소리로 시작해 편경의 경 소리로 마무리한다. 편종 틀 위에는 푸른 용이 하늘을 날고, 두 기둥의 받침대에는 푸른 사자가 조각돼 있다. 푸른색은 동쪽과 봄과 시작을 뜻하고, 사자는 사자후처럼 우렁참을 뜻한다. 편경에는 누런 봉황과 흰 거위가 있다. 봉황의 누런색은 중앙을, 흰 거위는 가을 하늘을 나는 거위의 청아한 소리와 서쪽을 뜻한다. 편경은 모든 음의 기준이며 끝을 장식하니 흰색을 쓴다.

음의 높낮이가 있는 유율(有律) 타악기인 편경은 똑같은 크기인 ‘ㄱ’ 모양의 옥돌 16개의 두께로, 편종 역시 쇠로 만든 같은 크기의 16개 종 두께로 소리를 조절한다. 두꺼울수록 높은 소리가 난다. 비슷한 서양 악기는 악기의 크기로 소리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것과 차이가 난다. 그러하기에 편경과 편종을 만드는 이의 절대음감과 손재주가 필수적이다.

일제강점기에 제작법이 사라졌던 편경과 편종은 ‘중요무형문화재 42호’인 악기장 김현곤(80·사진)씨가 되살렸다. 국내에서 오직 그만이 할 수 있다. 그는 정규 교육기관에서 음악을 배운 적이 없다. 덕수상고 중퇴 학력이다. 하지만 그는 세상에 있는 온갖 악기를 만질 수 있다고 한다.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수리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수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악기의 소리를 안다는 것이다. 배우지 않아도 기본적인 악기의 소리를 낼 수 있다고 한다. 가히 절정의 절대음감 소유자이다.

v16개의 크기가 같은 쇠로 만든 종으로 구성된 편종은 두께 차이로 소리의 차이가 난다.
v16개의 크기가 같은 쇠로 만든 종으로 구성된 편종은 두께 차이로 소리의 차이가 난다.
그는 전북 순창의 비교적 여유있는 농가에서 4남2녀의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총명했으나 6·25 전쟁 탓에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다. 서울의 명문고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집안에서 반대했다. 부모 몰래 나무를 한 트럭 해다 판 돈 4000환(당시 쌀 두 가마니 값)을 갖고 서울로 가출했다. 낮엔 돈을 벌기 위해 종로3가의 악기점에서 일하고 밤엔 학교를 갔다. 천부적인 절대음감과 손재주로 그는 곧 악기 수리 명인으로 소문났다. 피아노, 기타, 색소폰 등 못 고치는 것이 없었다. 그는 직접 악기점을 차렸다. 그리고 악기 제작에 나섰다. 실로폰, 탬버린, 드럼 등을 만들어 돈도 벌었다. 그가 국악과 인연을 맺은 것은 40대 중반. 우연히 만난 한만영 국립국악원장이 그의 재주를 알아보고 세종문화회관 개관식 때 연주될 국악 타악기 ‘방향’의 제작을 부탁했다. 기록도 전혀 없는 상태였지만 서양 타악기를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 그는 ‘방향’을 성공적으로 만든 뒤, 편경과 편종의 복원에 착수했다.

편종을 떠받치고 있는 푸른 사자는 사자후처럼 우렁찬 소리를 상징한다.
편종을 떠받치고 있는 푸른 사자는 사자후처럼 우렁찬 소리를 상징한다.
그는 편경의 돌을 구하기 위해 2년 반 동안 중국 전역을 헤맸다. 연변으로부터 내몽골, 윈난, 저장, 둔황까지 돌아다녔지만 허사였다. 눈물을 흘리며 포기하고 귀국하다 우연히 공항에서 옥으로 만든 기념품을 샀다. 손바닥에 쥐고 주물럭거리면 건강해진다는 흔한 돌구슬이었는데, 귀국해서 광업진흥공사에서 성분 분석을 하니 찾아 헤매던 옥돌이었다. 이 옥돌을 깎고 다듬어 광을 내기까지 미세한 차이로 음이 달라지기 때문에 장갑도 끼지 않고 맨손으로 작업해야 한다. 편종 복원 역시 쉽지 않았다. 전통 편종은 완전한 원형이 아닌 타원형이고, 위는 좁고 아래는 넓어 공명이 불규칙했다. 선명하고 맑은 음을 내기 위해선 쇠갈고리로 편종 속을 긁어내야 한다. 가장 높은 음과 가장 낮은 음을 내는 종의 두께 차이가 불과 2㎜. 16개의 종을 2㎜ 사이에 차이를 두고 만들어야 한다. 하나의 무게가 30㎏까지 나가는 종의 속을 조금 깎아내고, 쇠뿔로 만든 망치로 때리고, 다시 속을 깎아내고, 때리고를 반복해야 한다. 속을 계속 긁어 마찰열로 종의 표면 온도가 올라가면 식혀야 하는데, 찬물로 식히면 공명이 줄어드니 자연 바람에 식혀야 한다. 그러니 온종일 반복해야 한다. 조선시대에는 편경과 편종을 만들 때 120명의 목공, 철공, 석공 등 각 방면 장인들이 달라붙어 반년 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그는 이 일을 대부분 지난 20년간 일을 배워온 전수자인 아들 종민씨와 해낸다. 그는 일년에 한개 정도 편경과 편종을 만든다. 그의 꿈은 세계악기박물관을 만드는 것. “인간이 만든 세상의 모든 소리를 보관하고, 들려주고 싶어요. 언젠가는 이뤄지겠죠. 옥돌을 찾은 기적처럼….”

파주/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악기장이란

김현곤 악기장이 공방에서 전수자인 아들 종민씨와 함께 편경에 쓰일 옥돌을 갈고 있다.
김현곤 악기장이 공방에서 전수자인 아들 종민씨와 함께 편경에 쓰일 옥돌을 갈고 있다.
악기장(樂器匠)은 우리 전통의 악기를 만드는 장인이다. 고구려 고분벽화 속에 관악기와 현악기, 타악기가 모두 등장하고 있고, 삼국시대부터 악기장이 있었다. 악기장은 나무, 쇠, 돌, 명주실, 대나무, 헝겊, 흙, 가죽의 여덟 가지를 이용해 악기가 지닌 특유의 소리를 정확하고 아름답게 만들어내는 기능인이라는 점에서 일반 공예 장인과 구분된다.

악기장의 맥은 악기를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할 때부터 형성됐고, 그 기술은 국가의 주요 기술로 전승되어 왔지만 악기장의 존재와 기능 전수에 관한 기록은 많지 않다. 고려시대 이전의 악기장 관련 기록은 거의 밝혀진 것이 없다. 중국의 칠현금을 개량해 거문고를 만든 왕산악과 가야금을 만든 가야의 가실왕에 대한 기록을 통해 악기 제작과 관련된 내용을 엿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 <경국대전>에는 풍물장(風物匠), 고장(鼓匠), 쟁장(錚匠) 등의 악기장 명칭이 나타난다. 유교 이념으로 예악을 중시한 조선시대 궁중에는 악기도감, 악기조성청 등의 독립기관이 설치돼, 악기를 제작해 사용했다. 조선시대 악기 제작 기술은 국가 음악기구였던 장악원을 통해 이어졌으나, 조선왕조의 멸망으로 전통적인 장인의 조직이 와해됐다.

지금은 김현곤(편경, 편종), 고흥곤(가야금, 거문고), 이정기(북) 등 3명이 중요무형문화재 악기장이다.

이길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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