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동화구연동아리 ‘아름다운 실버’회원들이 지난 18일 서울 금천구 시흥대로길 금천노인종합복지관에서 동화구연에 쓰일 교구들을 들고 발성연습을 해보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kwak1027@hani.co.kr
내 나이가 어때서 ① 동화구연 동호회 ‘아름다운 실버’
평균 연령 71살의 회원으로 구성된 동화구연 동호회 ‘아름다운 실버’를 만나기 위해 11월18일 서울 금천구 시흥대로길 금천노인종합복지관을 방문했다. ‘아름다운 실버’는 2011년에 결성이 된 모임으로 주 1회 복지관에 모여서 동화구연을 위한 교구 제작, 교수법 익히기를 하고 있다. ‘아름다운 실버’는 금천구 지역 내의 데이케어센터, 어린이 도서관, 초등학교 돌봄교실에서 여러 계층을 대상으로 동화구연 봉사활동을 5년째 이어오고 있다.
이날은 동화 ‘무지개 물고기’ 구연에 필요한 교구를 만드는 날이었다. 강사 황영이(68)씨가 나눠준 도안을 보고 물고기 패턴을 오리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황씨는 회원들에게 수시로 제작에 관한 조언을 준다.
손 많이 움직여야 하니 좋고
아이들 기 받아서 좋고
애인 만나러 가는 날처럼 설레 교구 만들며 모여 앉아
가위질·바느질하고
수다도 떨며
떨어지는 낙엽에도 까르르 요양원 찾아가
어른들 위해 동화 읽기도 청일점 할아버지
눈썰미 좋아 바느질도 선수
손주보다 며느리가 더 좋아해
대본 연습에 소녀 모드로 떼창
가위질하랴, 문자 확인하랴, 물고기 패턴과 비교해보랴 분주하게 손과 눈길이 오가면서도 방 안에선 수다와 대화가 끊임없이 돌고 돈다.
“어머…. 낙엽 떨어지는 거 봐봐!” 창밖으로 은행잎이 바람결에 날려 떨어지자 창가에 있던 할머니들이 바늘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시선만 창밖을 바라보며 짧은 탄성을 지른다. “낙엽 참 이쁘다. 그치, 그치.” 모두들 잠깐 여학생 시절로 돌아갔다. 여학생 시절로 갔다 오는 게 아니라 동화구연 교구를 만드는 두시간 동안 이 할머니들은 그저 여학생 모드다. 곁에 있는 동무들과 연방 수다를 떨면서 손놀림은 빈틈이 없다.
이윽고 대본 연습 시간이 된 모양이다. 소녀 같은 할머니들의 떼창이 시작되었다.
“…산호초 뒤 깊~은 동굴에 계신 문어할머니를 찾아가 보렴. 문어할머니는 널 꼭 도와주실 거야….” “네가 올 거란 걸 알고 있었단다. 파도가 네 얘길 해주더구나! 너의 그 예쁜 무지개 비늘을 다른 친구들에게 나눠주어 보렴…. 그럼.”
미국 아이들도 솔깃 ‘만국 공통’
황영이 강사가 잠깐 낭독을 중단시켰다.
“문어할머니 목소리는 진짜 할머니 목소리가 나와야 해요. 다시 해볼까요?”
할머니들이 목소리를 낮게 깔면서 ‘진짜 할머니’처럼 소리를 내며 합창하듯 한다.
“네가 올 거란 걸 알고 있었단다….”
금천복지관 ‘아름다운 실버’ 팀의 중심은 강사를 맡은 황영이씨다.
-나이가 많아도 상관이 없나?
“할머니들의 장점이 있다. 그저 아이들은 꼭꼭 안아주고 이야기 잘 들어주고 그러면 되는 거다. 동화구연을 처음 하다 보면 아이들 안아주다가 시간이 다 갈 수도 있다. 애들은 할머니를 잘 따른다. (내가) 딸이 둘인데 미국에 사는 큰딸 보러 한번 갔었다. 현지에서 손주가 다니는 유치원에 가서 동화구연을 한번 해봤다. ‘두더지 신붓감’이란 것을 한국어로 했는데 놀랍게도 미국 아이들에게도 통하더라. 역시 그림으로 된 교구가 있으니 이해가 되는 것이지.”
-동화구연을 배우는 과정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 있나?
“교구도 중요하다. 가위질은 기본. 홈질, 블랭킷스티치, 박음질 등 여러 가지 바느질도 해야 한다. 교구를 만들고 나면 본격적인 구연 연습이 필요하다. 대본을 외워야 한다. 손에 교구를 들고 동작을 하는 것을 ‘손유희’라고 부르는데 이 또한 핵심 과정이다. 10분 안쪽이지만 잠깐의 방심 없이 손유희로 아이들의 시선을 잡기 위해선 대사를 하면서 동시에 끊임없이 손이 움직여야 한다. 노래 실력도 좋을수록 좋다. 춤도 춰야 한다. 그 외에도 본인들의 특기를 동화구연에 녹여낼 수 있다. 우리 동호회의 허추자(75) 할머니는 우쿨렐레 연주를 잘하시고 김현진(75) 할머니는 마술을 배워 동화구연할 때 곁들인다.”
거북해하다 우리 인생 같은 얘기에…
회원들 중에서 고문을 맡고 있는 정헌순(80)씨는 “손을 많이 움직여야 하니 좋고 (동화구연할 때) 아이들의 기를 받아서 좋아요. 아이들 앞에서 구연을 하는 날이면 애인 만나러 가는 날처럼 단장을 하고 나선다니까요. 즐거워요”라며 뺨에 홍조를 띠었다.
가장 나이가 어린 편에 속하는 안경애(65)씨는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책엄마’를 했는데 조금 더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길을 찾다가 동화구연, 전래놀이 등을 배우게 되었다. 안씨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 읽기도 한다. “한달에 두번 어르신들을 위한 요양병원에서 그림책 읽어주기를 한다. 노인들이니 내 또래도 있지만 더 연세 드신 분도 있지. 처음엔 ‘내가 뭐 애들도 아닌데 동화책을…’ 하며 거북해하다 막상 읽어주기 시작하면 좋아라 하신다.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이 인기있었다. 우리 인생과 같은 이야기다. 이 동화는 아이들도 좋아하지만 어른들도 반응을 보이는 경우다”라고 말했다.
할머니 20여명 사이에서 유일한 할아버지 회원 이강택(75)씨가 바느질에 정신이 없다.
금천도시농업네트워크에서 생태텃밭 강사로도 일하는 이씨는 “동화구연을 한 것은 5년 정도 되었다. 내가 공직 생활만 쭉 했다. 서울시청에서 35년 정도 행정직으로 근무했는데 퇴직하고 나서 시골로 가고 싶었다. 귀농하고 싶었던 거지. 그런데 집사람이 반대하는 바람에 못 가게 되었다. 그래 싫다는데 어쩌겠어. 궁리하다가 도시에서 농업 하는 길을 찾게 되었고 ‘도시농업네트워크’에서 배우게 되었다. 텃밭강사로 일하다 보니 아이들을 상대하게 되었는데 동화를 같이 배워 접목시키면 좋겠더군. 그래서 둘 다 하게 되었어. 유치원에서 상자텃밭에다 채소 심고 거름 주고 시기별로 수업을 하는데 아이들에게 텃밭을 가르칠 때 동화가 굉장히 유용하거든. ‘씨앗들의 친구’ 같은 동화는 지렁이가 있어야 고구마가 잘 자란다는 내용이야. 게다가 텃밭에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강강술래’ 같은 놀이를 하면 아이들이 좋아해”
“이 좋은 걸 왜 안 하는지 몰라”
-할아버지 회원은 혼자이신데.
“(다른 남자들이) 이걸 왜 안 하는지 모르겠어. 나 같은 할아버지들에게 딱 좋은 일이야. 시간 보내기도 좋고. 동화 외우다 보면 머리가 좋아져요. 다른 책은 몇십번 읽어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는데 이건 아이들에게 들려줘야 하니 관심을 가지고 집중하면 두세번 만에 외우게 되더라고 치매 예방에 정말 좋지. 친구들이 나보고 특이하다고는 하지. 처음에 남자들이 너덧명 같이 시작했어. 그런데 다 떨어져 나가고 나 혼자 남은 거야. (다른 할아버지들이) 선망의 눈으로 봐요. 대견하다고 해. 동화구연, 아무나 하는 것 같지만 공을 많이 들여야 해. 하면 할수록 더 잘하고 싶으니….”
주변에서 다른 할머니들도 “할아버지가 바느질 같은 것은 우리보다 더 잘해. 손이 빠르고 눈썰미가 좋으니 우리가 못 따라가. 선수야, 선수”라고 거들었다.
-식구들의 반응은?
“명절 때 손주들 만나면 호랑이 모형, 물고기 모형 같은 것을 준비해서 동화구연을 해줘. 손주들이 좋아하느냐고? 며느리들이 더 좋아해. ‘우리 시아버님 최고’라고. 하하하.”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아이들 기 받아서 좋고
애인 만나러 가는 날처럼 설레 교구 만들며 모여 앉아
가위질·바느질하고
수다도 떨며
떨어지는 낙엽에도 까르르 요양원 찾아가
어른들 위해 동화 읽기도 청일점 할아버지
눈썰미 좋아 바느질도 선수
손주보다 며느리가 더 좋아해
2. 지난 18일 서울 금천구 독산3동 ‘청개구리 작은도서관’에 모인 ‘꾸러기 어린이집’ 원아들이 동화구연을 지켜보던 중 손동작으로 율동을 따라하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kwak1027@hani.co.kr
3. 동화구연에서 ‘손유희’는 필수적이다. 김현진씨가 재빠른 ‘손유희’ 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셔터속도 1/6초, 플래시 촬영) 곽윤섭 선임기자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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