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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오로지 사진만 본다”

등록 2016-09-07 14:46수정 2016-09-07 14:52

[곽윤섭 기자의 사진마을]
사진가선 30권째 낸 이규상 눈빛대표
눈빛사진가선 표지 1권부터 30권까지.
눈빛사진가선 표지 1권부터 30권까지.
, <동해남부선>, <온 더 로드>, <산책이 그리운 이유·동물학>, <삼천 원의 식사>, <잔설>, <전국노래자랑>, <가마미해수욕장>, <소양호 속 품걸리>, <손에 관한 명상>, <청량리 588>, <이태원의 밤>…. 눈빛 출판사(이하 눈빛)가 만들어온 눈빛사진가선의 목록이다. 2014년 11월에 시작한 눈빛사진가선이 1년10개월 만인 올해 9월 초에 신동필의 <교토 40번지>로 30번째를 돌파했다. 1988년 11월에 문을 연 눈빛은 사진전문출판사로는 한국에선 사실상 유일한 존재다. 그동안 630종의 사진 관련 책을 냈다.

이규상 눈빛 대표가 지난 1일 서울 상암동 눈빛출판사에서 30권의 눈빛사진가선을 쌓아놓고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규상 눈빛 대표가 지난 1일 서울 상암동 눈빛출판사에서 30권의 눈빛사진가선을 쌓아놓고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다.
지난 1일 이규상 눈빛 대표를 만났다. 인터뷰에 앞서 페이스북을 통해 독자들에게 ‘이규상 대표에게 묻고 싶은 질문’을 받기도 했다.

이 대표는 “사진집이 비싸고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 그래서 일반 독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형태를 찾다가 “사진과 시가 인척관계라고 볼 수 있으니” <창비시선>이나 <문지시선> 같은 것을 모델로 삼아 문고본 형식으로 사진집을 내기로 했다. 1차 목표를 100권으로 잡았고 프랑스의 델피르 출판사가 1982년에 시작한 포토포슈도 참고했다고 한다.

사진과 시 인척관계라 시선 모델로
독자가 쉽게 접할 수 있는 문고판으로
1차 목표 100권, 한국사진가 기록

독특한 자기 앵글이 확 드러나는 사진
페이스북이나 블로그 보고 발굴도

가장 기억에 남는 ‘눈빛’은
선인세가 든 봉투 받고
눈물 글썽이던 사진가의 아내

역사성이나 시대성도 주요 기준이지만
자아를 구현하는 작업에도 관심
작고 사진가나 외국인이 본 한국 사진도

일관성 있는 주제 50장이 1차 관문

-눈빛사진가선은 어떤 의미가 있나? 다른 문고판 사진집과 어떤 차별성이 있나?

“한국 사진사를 보면 의미 있고 중요한 작업을 한 작가들이 많은데 제대로 평가를 못 받고 소실되거나, 책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초판을 넘지 못하고 절판되어 잊히는 것이 안타까웠다. 한국 사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기념비적인 사진들을 재발굴해서 문고본의 형식이나마 정리해두면, 이것이 나중에 한국 사진가를 되돌아보는 단서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 눈빛사진가선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도 이름값이나 학연, 지연에 무관하게 사진만 보고 판단하여 책으로 만들고 있다. 그래서 판매의 관점에서 보자면 위험 부담도 있으나, 연연하지 않는다. 작가별로 책을 내는 것이 아니라 주제별로 내고 있다는 것도 아주 중요한 차이점이다.”

-눈빛에서 책을 내는 기준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현재 활동하는 작가 중에서 단일 주제별로 50장 정도를 보여줄 수 있는지가 1차 관문이다. 여기에 더해 어느 정도 역사성이나 시대성이 있으면 좋겠다. 50장의 사진에서 ‘사회구조나 역사에 대해 어떤 발언을 하는가?’를 본다. 지나온 삶에 대한 반추도 좋다. 그동안 이런 것이 주된 내용이었는데 앞으로는 사진가 개인의 어떤 재현이나 일상성에도 관심을 가질 것이다. 한국 사진이 집단 정체성이라는 역사적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요즘은 개인의 자아를 구현하는 작업에 관심을 두고 있다. 최근에 나온 양승우의 <청춘길일>이 좋은 예다. 그 사진들에는 양승우 개인 삶의 궤적이 곳곳에 배어 있다. 그동안 한국 사진에서 중압적인 주제를 독자에게 강요해온 것이 아닌가 되돌아보고 있다. 현장에 매몰되어 있다는 생각도 든다. 현장에서 보이는 정보를 사진가들이 제시하려 드는데 그런 정보는 일반인들이 다른 매체를 통해 다 보고 있으므로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여기에 더해 사진적 속성을 자기화해야 한다. 고유한 시각, 고유한 형식의 문제, 이런 기준도 있다. 문고판에 맞는 작업이면 좋겠다. 앞으로 나올 33번째 성남훈의 <불완한 직선>이 똑 부러지는 사례가 될 것이다. 이런 기준을 통과한다면 거듭 말하지만 ‘사진만 보기 때문에’ 다른 것은 따지지 않고 수용할 수 있다.”

-페이스북을 통해 “아마추어들이 단체로 책을 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사진동호회 활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라는 질문이 들어왔다.

“나는 아마추어들, 사진동호회들이 한국 사진이 제자리를 찾게 하는 데 어떤 의미에선 (전업작가들보다) 더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 활발하게 활동하면 좋겠다.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장비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또 출사를 함께하는 것도 좋지만 개인적인 시각을 찾는 것에 집중하면 좋겠다. 주제를 찾아 몰두하면 좋겠다. 조기축구 회원들이 있는데 이들은 국가대표 축구 시합도 열심히 보고 응원한다. 수많은 아마추어사진가들이 있는데 이들도 전업작가 지켜보고 응원하고 후원도 하면 좋겠다. 전업작가뿐만 아니라 아마추어들의 고유한 작업도 적극 수용할 용의가 있다. 오히려 거기서 더 좋은 작업이 나올 수도 있다고 본다. 나는 하루 두세 시간 정도 페이스북이나 블로그 등을 들여다보면서 새로운 사진을 발굴하려 노력한다. 눈빛사진가선 22번째인 김석진 <삼선쓰레빠 블루스>도 페이스북에서 처음 보고 내가 먼저 접촉했다. 문진우도 그렇고 김금순도, 하지권도 페이스북에서 처음 사진을 본 경우다. 눈빛사진가선은 모두에게 열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눈빛사진가선 30권.
눈빛사진가선 30권.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 왜 안 찍나

-말은 그렇지만 그래도 일반 아마추어들은 책을 내기가 어려울 것 같다. 뭘 찍으면 좋겠는지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페이스북에서 보다가 발견한다는데 도대체 어떤 사진 앞에서 반응을 보인다는 말인가?

“깜짝 놀라게 하라. 독특한 자기 앵글이 확 드러나는 사진을 보고 나는 반응한다. 뭘 찍으면 좋을지 이야기하겠다. 페이스북에서 보면 한두 장 잘 찍은 사진은 엄청나게 많다. 그런데 제각각이다. 석양도 찍고 코스모스도 찍고 가족사진도 찍고…. 하지만 일관된 주제가 없다. 주제가 뭐냐고? 지하철은 현대사회에서 대단히 중요한 공간인데도 지하철을 테마로 찍은 사진을 거의 못 봤다. 내가 사진가라면 와이모대 보디빌딩부, 학군단, 대학교 동아리…, 이런 것을 찍겠다.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에 대해 왜 찍지 않는지 모르겠다. 12번째는 김남진의 <이태원의 밤>이었다. 그것은 80년대 이태원이었으니 2016년 오늘의 이태원과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우리는 작가별이 아니라 주제별로 책을 내니까 지금까지 30권에 포함되었던 <강원도의 힘>, <차이나타운>, <장날>, <절집> 등과 같은 주제를 다른 사람들이 다른 시각으로 찍는다면 얼마든지 환영한다. 앞으로는 셀피 같은 트렌드에도 관심을 가질 것이다.”

한국 사진 출판 시장은 열악하다. 눈빛사진가선이 얼마나 수익을 냈는지 궁금했다. 이 대표는 “가장 많이 팔린 것은 조문호의 <청량리 588>과 양승우의 <청춘길일>이다. 곧 2쇄 들어갈 것 같다. 500권을 넘어가면 제작비를 건지는 셈인데 1번부터 10번까지 중에서 500권을 넘은 게 절반도 안 된다. 그러나 눈빛사진가선은 치고 나갈 힘을 축적하는 과정이니 걱정하지 않는다. 이제 30번을 넘었으니 쌓일수록 좋아질 것이다. 몇 번이 잘 팔린다고 좋아할 일도 없고 몇 번이 안 팔린다고 실망할 일도 없다. 잘 팔리는 것이 안 팔리는 것을 안고 간다. 내가 30번을 내는 동안 망할 것을 예상하고 낸 책은 한 권도 없다. 전체적으로 보면 시리즈 30번까지 오면서 제작비의 30% 정도를 회수한 상태”라고 말했다.

투정부리지 않고 낼 뿐, 희망 있다

-돈 벌려고 책을 내는 게 아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안 팔리는 책은 무엇인가?

“수치적으로는 어느 책이 가장 안 팔렸는지는 의미가 없다. 나온 지 오래된 책과 최근 책이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재갑의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은 역사적 책무를 반영한 책이며 사진적으로도 좋은데 생각보다 부진하다. 사람들이 역사를 너무 무겁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제일 기억에 남는 (필자 혹은 섭외 대상의) ‘눈빛’은?

“양승우다. 부부가 일본에서 책과 전시를 위해 한국에 왔다. 일본으로 돌아가기에 앞서 선인세를 지급했다. 양승우의 부인이 인세가 든 봉투를 보면서 꺼낼 생각도 못하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남편이 사진을 하면서 사진으로 돈을 번 것이 처음이란 것이다. ‘곧 재판 찍을 터이니 걱정 말고 봉투에서 돈 꺼내 쓰시라’고 격려했다. 사진가들은 어렵다. 나는 무모하다는 소릴 안팎에서 자주 듣는다. 걱정하지 마시라. 할 일이 많다. 나이가 좀 들었으니 더 책무감이 생겼다. 나는 출판을 할 수 있으니 투정부리지 않고 열심히 책을 낼 뿐이다. 희망이 있다.”

이규상 대표는 앞으로 눈빛사진가선을 확장할 계획이다. 작고한 한국의 원로 사진가들을 위한 <작고사진가선>, <외국인이 본 한국>, <아시아사진가선> 등으로 외연을 넓힌다고 한다. 지금까지 30권의 눈빛사진가선은 다큐멘터리 사진 중심이었지만 앞으로는 순수 사진, 예술 사진 쪽으로도 문호를 개방하고 정물이나 실험적인 작업도 적극 수용할 생각을 하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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