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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단순히 사진책 파는 그 이상 북큐레이팅 북토크 워크숍…

등록 2018-04-02 18:41수정 2022-04-18 11:12

효자동 ‘이라선’
미학도 젊은 여성이 홀로 운영

대부분 외국 가서 직접 골라 사 모아
1만여권 중 장소 좁아 1천권만 전시

비닐에 갇혀 있는 책 보면 숨막혀
벗겨내고 누구나 언제든 볼 수 있게

2년 전 문열어 달마다 저자와 대화
손님들 취향과 요구 따라 맞춤 추천

자하문 ‘더 레퍼런스’
아트잡지 발행하다 최근 문 열어

뭘 사야 한다는 부담 없이 둘러보게
도서관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릴 계획

지하공간엔 아시아 아트북 특별전
기획 매니지먼트 에이전트 구실도

자가출판이나 기발한 특별한정판 등
팬시숍에 온 듯 통통 튀는 책 많아
이라선 서가
이라선 서가

서울 서촌 이색 사진책방 둘

몇 남지 않아 명맥이 끊어질 것 같던 사진책방 시장에 조용하면서도 폭풍 같은 변화가 밀려들고 있다. 최근 1~2년 사이에 서울 서촌에 크고 작은 사진전문책방이 몇 생겼다. 사진집만 특화해서 판다는 것이 대단한 위험부담을 안기 때문에 기존에 있던 사진책방이 문을 닫는 형편이라 새로 생긴 사진책방은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서촌의 사진책방들을 직접 방문해 책방을 구경하고 운영하는 이들의 이야길 들었다.

서울 종로구 효자로7길 대림미술관 가까이 있는 책방 ‘이라선’은 2016년 10월1일에 문을 열었다. 대표 김진영(32)씨가 이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진영씨는 서울대에서 미학전공으로 현재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3월29일 책방을 찾아 주인장과 인터뷰를 했다. 진영씨는 미학에서 사진 이론과 역사를 전공하면서 사진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오랫동안 사진집을 사 모았고 일본 도쿄의 진보초 거리, 영국의 헤이온와이, 뉴욕의 스트랜드 등 외국에 나가면 사진책방 순례를 하는 게 일과처럼 됐다. 그러다 갈증이 났다. “외국에는 사진전문책방이 적지 않게 있는데 왜 한국에는 없을까.” 한국의 초대형서점 사진코너에 가도 책이 몇권 없는 실정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진영씨는 "직접 한번 해볼까?”라고 마음을 쓰게 되었다.

“일요일 같은 공간 생각에 이름 지어”

처음 문을 열었을 땐 그동안 사 모은 100여권으로 시작했다. 지금은 수천권으로 늘었는데 책방이 좁아 1000권 정도만 진열해 두고 있다. 이라선의 모든 사진집은 비닐래핑이 풀어져 있어 누구나 언제든지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당연한 일 아니겠어요? 대형서점에서 비닐에 갇혀 있는 책을 보면서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어요”라고 말하는 진영씨는 이라선에 새로 도착하는 책에 일일이 비닐 책 꺼풀을 씌운다.

―책방에 들여오는 책은 어떻게 선택하는가?

“대부분 외국 출장을 가서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결정한다. 품이 많이 들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온라인으로 이미지만 봐서는 그 책을 알 수가 없다. 책이란 것은 물성이 중요하다. 직접 보고 경험으로 사람들에게 소개를 한다. 어떤 지점에서 아름다움을 느꼈는지를 알아야 책을 설명할 수 있고 큐레이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의 물성이란 인터넷 시대의 한계에서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한 권의 사진집 안에서 디자인도 보고 종이 질감, 표지의 색깔까지…. 이 모든 것이 합쳐져서 한 권의 사진집이 되는 것이다. 이 페이지 다음에 뭐가 있는지도 넘겨 봐야 느낌이 온다. 이런 것이 바로 대형서점에선 불가능한 구조다.”

이라선에는 상대적으로 한국 사진집이 적었다. 이는 책방이 좁은 탓도 있지만 다른 곳에서도 구할 수 있는 것을 굳이 가져다 놓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터뷰 도중 손님들이 들어왔다. 인사를 하는 품새를 보니 한눈에도 낯선 손님이 아니다. 10여분 정도 사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여러 책을 넘겨보더니 두 권을 사서 결제했다. 단골이라고 밝힌 김나연(공간 디자이너)씨는 “이 집만의 색깔이 있어서 너무 좋다. 마음이 평온해지는 느낌이다”라며 밝게 웃었다. 책방의 이름은 어떻게 나온 것일까?

“일요일 같은 공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휴식, 서재…. 그래서 ‘이지 라이크 어 선데이’(Easy like a Sunday)에서 이라선이 태어났다. 나중에 지인이 ‘서촌에서 무슨 영어이름’이라며 떠날 이, 아름다울 라, 배 선이라고 명명했다. 젊은 사람들은 전자를 더 좋아한다. 하하하.”

이라선은 2016년 처음 문을 열었을 때부터 매달 한 번꼴로 북토크를 하고 있다. 단순한 사진집 전시·판매 공간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에서였다. 첫회로 박상우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열렸고, 이달에는 앨런 에글린턴이 진행하는 ‘온리 더 파이어스 세이’(Only the fires say)가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북토크가 없는 날에는 그냥 보통 서점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인가?

“손님이 들어서면 먼저 다가가서 북 큐레이팅을 해준다. 그들의 취향, 요구에 맞는 책을 찾아준다. 이 방식이 꽤 입소문이 났다고 한다. 한번 두번이 아니라 계속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끝내 그들이 원하는 책을 찾아주면서 보람을 느낀다. 어제 오신 분은 비누를 디자인하는 사람이었다. 자기가 인체 누드 모양의 비누를 만들고 싶은데 누드가 들어간 흑백사진을 보고 싶다면서 앞에 있던 콜리어 쇼어의 사진집을 들었다. 그러더니 ‘너무 이 책은 상업 사진가 같다’라더라. 그래서 빌 브란트의 ‘누드’를 추천해 드렸더니 만족해했다”고 설명했다.

갤러리에서 사진작품 거래하듯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24길에 있는 사진책방 더레퍼런스는 뉴미디어 퍼블리싱 플랫폼이다. 2007년부터 반연간 사진예술잡지 <이안>을 발행하고 있던 김정은 대표가 지난 3월16일 새로 문을 연 곳이다. 31일 레퍼런스를 찾아가 김 대표와 인터뷰하고 책방과 전시공간을 둘러봤다. 이곳은 대부분 사진집이 진열·판매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서점과 비슷하나 그 외의 기능을 겸비했다. 지하 공간에서 전시가 열리고 있다. 그게 끝나면 워크숍, 포럼 등 교육과 문화 복합공간으로 꾸릴 것이라고 김 대표가 말했다. 그는 “서점 형태를 띠면서 도서관 역할도 해야 한다. 여기 오면 뭘 사야 한다는 생각에 눌리지 않고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앞으로는 책을 빌려갈 수도 있는 시스템을 만들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작은 학교의 형태가 되면 좋겠다”고 했다.

―현재 어떤 책이 있는가?

“지하 1층에서 ‘더레퍼런스’ 개관 기념 첫 전시 ‘더레퍼런스 #1: 아시아 아트북 라이브러리’가 열리고 있다. 이를 위해 아시아 5개국(한국, 일본, 중국, 대만, 싱가포르)에서 아트북 241권을 모았고 그게 사실상 주축이다. 전시가 끝나고 나면 일부는 각 나라로 돌아가고 일부는 우리 책방에 남겨 계속 소개하고 열람·판매를 할 것이다. 이제 문을 연 지 보름 됐다. 지금은 책의 권수, 분량보다는 우리 공간의 성격을 만들어가는 단계다. 우리 책방의 3분의 1은 독립출판물이다. 아시아의 예술, 사진, 건축에 관한 국내 다른 서점들과의 차별성, 특히 일본 쪽 작품집은 종류가 가장 많다. 젊은 작가들이 ‘자가출판’하여 만든 것이다. 대부분 손으로 만든다. 또 3분의 1은 기존 출판 방식을 통한 고전적 형태의 작품집이다. 마지막 3분의 1은 기존에 없던 특별한정판이다. 토마스 루프의 특별한정판은 18개의 연작을 묶어서 제작한 것으로 현재 가격이 200만원이 넘는다. 작품집과 다른 점은 소량만 제작되었거나 희귀하다는 것이다. 특별한정판을 확보하려면 외국의 북 컬렉터나 갤러리와 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 정보를 주고받아야 한다. 그 나라의 사진집이 어떤 게 새로 나왔으며 한국에 어떤 작가가 어떤 작품을 하고 있는지를 교환한다. 서로 뜻이 맞으면 작품을 사고판다. 이것은 마치 갤러리에서 사진작품을 거래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장기적으로는 우리 ‘더레퍼런스’도 앉아서 책만 파는 것이 아니라 작가를 선정하여 밀고 나갈 것이다. 서점이기도 하지만 기획자면서 매니지먼트 에이전트 역할도 하게 될 것이다.”

서점의 형태가 변모하는 과도기에 있다고 김 대표가 말했다. 그는 “이미지 소비를 그냥 스마트폰으로 쓱 보고 지나갈 줄 알았는데 정말 의외로 젊은 사람들이 발로 걸어와서 뒤적거리면서 좋아한다. 단순히 예쁘기만 한 책이 아니고 깊이와 개념도 있다. 그들도 자기의 취향이 중요한 것이다. 젊은 사람들은 능동적이다”라고 했다.

대표와 함께 전시공간을 둘러봤다. 241종의 책이 벽을 따라 돌아가며 놓여 있다. 조금 부풀리자면 어느 두 개도 같은 방식이 없다고 할 정도로 다양한 방식의 사진책(책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기존의 책만 떠올려선 이해할 수 없는 책이 훨씬 더 많다)이 펼쳐져 있다. 낱장의 엽서를 상자에 넣어서 책이라 일컫던 방식이 구태의연하게 보일 정도였다. 사진 페이지의 순서를 독자가 임의로 바꿔서 다시 정렬할 수 있게 한 것도 있었다. 못쓰는 식용유 깡통도 놓여 있었다. 종이를 가늘게 잘라서 마치 난초처럼 보이게 화분에 심어둔 것도 있었다.

알고 보니 이게 싱가포르에서 만드는 <러비시 팸진(패밀리 진)> 6호의 일부였다. 말 그대로 4명으로 구성된 가족이 만든다는 뜻으로 판(아빠·44), 클레어(엄마·43), 렌(아들·13), 아이라(딸·11)가 제작한다. 이번 호의 테마는 요리책이었다고 하는데 화분과 요리책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여유를 두고 전시장에서 알아볼 일이다. 도록 145번에 해당하는 책은 <조용한 역사>(Silent Histories)로 태평양전쟁 희생자의 국가보상을 요구하는 증거자료로 2014년 최고재판소에 제출된 더미사진집이다. 45부가 제작되었다고 하는데 내용을 보면 전쟁 당시의 참상을 찍은 사진도 있지만 당시의 유인물도 있고 어떤 개인들이 주고받은 편지도 들어 있다. 책을 들었더니 편지가 툭 떨어졌다. 제본된 것이 아니란 소리다. 그 외에도 기발한 책들이 줄을 섰다.

전반적으로 팬시용품점에 온 것 같은 느낌이 가장 강했다. 이게 책이라면 아이들이 책을 싫어할 일이 없었다. 고객들이 띄엄띄엄, 끊이지 않고 들어와서 책방과 전시공간을 둘러보고 있었다. 짧은 통로로 연결된 작은 공간에 들어서니 이름을 대면 다 알 만한 한국 사진가들의 진짜 책처럼 생긴 사진집이 몇개 보였다. 몇십년 동안 익숙했던 형태의 책을 만나니 반갑기도 했으나 방금까지 보고 왔던 통통 튀는 ‘녀석들’과 비교하면 머릿기름 바르고 정장을 한 아저씨들처럼 보여서 어쩐지 연민의 감정이 샘솟았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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