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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이 솔직한’ 윤여정에 MZ세대가 열광하는 이유

등록 2021-04-27 13:52수정 2021-04-28 02:33

방송가 사람들이 말하는 인간 윤여정의 매력
25일 저녁(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93회 아카데미영화제가 끝난 직후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이 이 영화의 제작사 ‘플랜비’ 대표인 배우 브래드 핏과 사진을 찍고 있다. 이번 아카데미는 코로나19 유행으로 예정보다 두달 늦게 열렸다. 로스앤젤레스/EPA 연합뉴스
25일 저녁(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93회 아카데미영화제가 끝난 직후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이 이 영화의 제작사 ‘플랜비’ 대표인 배우 브래드 핏과 사진을 찍고 있다. 이번 아카데미는 코로나19 유행으로 예정보다 두달 늦게 열렸다. 로스앤젤레스/EPA 연합뉴스

“브래드 핏, 우리가 촬영하는 동안 어디 계셨던 거예요!”

지난 25일(현지시각)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은 수상 소감에 앞서 시상자 핏을 향해 ‘팩폭’을 날렸다. 핏은 윤여정이 출연한 영화 <미나리> 제작자다. 윤여정은 촬영 내내 그가 나타나지 않은 데 대한 불만을 장난스럽게 표현하며 긴장을 풀고 시상식장을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 최근 얻은 별명 ‘새비지 그랜마’(Savage grandma), 이른바 ‘거침없이 솔직한 할머니’다운 면모를 제대로 보여줬다.

인간 윤여정의 매력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할 말 다 하는 솔직함으로 세대를 아우르며 사랑받는 ‘다른 어른’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윤여정과 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2011)에 출연했던 배우 정보석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윤여정 선생님은 ‘척’ 하지 않는다. 아는 척, 잘난 척하지 않고, 감정에 솔직하다. 거짓으로 자신을 꾸미지 않는 등 장점이 이번에 제대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특히 여러 수상 소감에서 보여준 센스 넘치는 언변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윤여정은 수십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릴 때마다 수상 소감이 매번 달랐다. 지난 11일(현지시각)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고상한 척한다(snobbish)고 알려진 영국인에게 인정받아서 더 기쁘고 영광이다”라고 말해 세계인의 환심을 샀다. 이 영상에 ‘새비지 그랜마’라는 댓글이 달리면서 그의 별명이 됐다.

25일 저녁(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93회 아카데미영화제에서 &lt;미나리&gt;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이 기자회견장에서 트로피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로스앤젤레스/로이터 연합뉴스
25일 저녁(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93회 아카데미영화제에서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이 기자회견장에서 트로피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로스앤젤레스/로이터 연합뉴스

하고 싶은 말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엠제트(MZ·1980~2000년대생) 세대는 “이런 센스 만점 어른이 있다니!” 감탄하며 열광했다. 한 20대 남자 뮤지컬 배우는 “연기 잘하는 어른으로만 생각했는데, 그 수상 소감에 반했다. 평소 젊은 생각을 갖고 살기에 가능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윤여정은 솔직하지만 주장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자기 생각이 맞다고 가르치려고도 들지 않는다 그는 “젊음을 질투하면 노추가 된다”며 현실을 받아들인다. “늙은이 놀리냐” 따위의 말로 자신을 낮추며 상대를 배려할 줄도 안다. 그와 예능프로 <꽃보다 누나>(2013·이하 티브이엔) <윤식당>(2017) <윤스테이>(2021)를 함께 한 나영석 피디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요즘 같은 시기에 유명한 분들은 오해 사지 않으려고 말을 조심하는데 선생님은 생각을 그대로 내뱉는다. 솔직하다. 그런데도 구설에 오른 적이 없다. 화법도 재밌지만 진심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고, 틀렸으면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아는 척 거짓으로 꾸미지 않기에 상대를 불쾌하게 하지 않는다. 그게 속 시원한 매력을 준다”고 말했다.

윤여정과 나영석 피디. 오계옥 &lt;씨네21&gt; 기자
윤여정과 나영석 피디. 오계옥 <씨네21> 기자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2002·이하 문화방송) <맨땅에 헤딩>(2009)을 같이 작업한 박성수 전 <문화방송> 피디는 그 입담이 타고 났다고 감탄했다. “윤여정은 대화 중 단어를 고르는 감각이 탁월하다. 그의 뇌는 적절한 단어를 찾아내려고 뇌세포를 부단히 활성화하는 것 같다. 인문·문화·1970년대·미국·오늘·영어 등이 맛있게 칵테일 된다.” 윤여정은 아카데미 시상식 뒤 기자간담회에서 입담 비결에 대해 “오래 살았다. 좋은 친구들과 수다를 잘 떤다. 수다에서 입담이 나왔나 보다”라고 말했다.

솔선수범도 그를 ‘다른 어른’으로 빚었다. 후배들에게 미루지 않고 책임감을 갖고 직접 행동한다. 그는 <윤식당>에서 내내 부엌에서 땀 흘리며 불고기를 볶았다. 나영석 피디는 “처음엔 몇번 하다 후배들에게 맡기고 바다에 나가 놀 줄 알았다”고 했다. “선생님은 모범생 증후군이 있어요. 말로는 힘들다 귀찮다 하면서도 자기 몫을 제대로 하려고 노력하시죠. <윤스테이> 때도 피곤하다면서도 카운터에 앉아서 손님 이름을 외우고 계셨어요. 어른으로서 후배들한테 안 맡기고 스스로 다 해내려고 하는 게 정말 멋있죠.”

드라마 현장에서도 책임감을 잃지 않는다. 박성수 피디는 “그의 인생에 대충이란 건 없다”고 했다. 열정은 물론 애정도 가득하다. “<맨땅에 헤딩>이 생각보다 잘 안되고 있었어요. 어느 날 윤여정씨가 밤 촬영을 끝내고 가면서 편지를 손에 쥐어주더라고요. 드라마의 방향을 제안하는 노배우의 애정 어린 글이 깨알같이 적혀 있었죠.”

배우 윤여정. 후크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윤여정. 후크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런 모습 덕에 함께 일하고 싶은 배우, 닮고 싶은 선배가 된다. 16살 배우 이레는 “<계춘할망>을 보면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을 표현하는 연기에 감탄했다. 요즘은 <윤스테이>를 보면서 대선배님을 조금 더 친숙하게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한 20대 여자 배우는 “선생님의 수상 소감을 접하면서 영어로 농담을 섞어 이야기하는 그 자신감이 부러웠다. 선생님을 뵙고 쿨해지는 법을 배우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배우에게 윤여정은 길이 된다. 나이를 뛰어넘는 도전은 후배들 연기 의욕에 불을 지핀다. 문소리는 “선생님은 내게 많은 영향을 준다. 젊은 감독들과 허물 없이 소통하고 우정을 나누고 큰 힘이 돼주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감독들에게 든든한 친구 같으면서도 영감을 주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정보석은 “(윤여정의 아카데미 수상 등으로) 한국 문화의 위상이 달라진 것이 생각에 변화를 가져왔다”며 “계약된 작품이 끝나면 1년 정도 여행을 다니면서 배우로서 어떤 길을 가야 할지 고민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배우 윤여정. 후크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윤여정. 후크엔터테인먼트 제공

2010년 영화 <하녀>로 칸국제영화제에 진출했던 윤여정은 이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칸에 갔다고 윤여정이 고현정 되는 건 아니에요. 나는 내가 꽃이 아니라는 걸 알아요.” 칸 이후에도 그는 일일극 <황금물고기>, 주말극 <내 마음이 들리니> 등에 출연하며 이전처럼 열심히 일했다. 칸까지 다녀온 배우가 너무 많은 일을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답했다. “열일 안 하면 못 먹고 살아.”

그래도 아카데미인데, 이번에는 다르지 않을까? 하지만 윤여정은 시상식 직후 기자회견에서 “오스카 상 탔다고 윤여정이 김여정 되는 건 아니다”라며 “살던 대로 살겠다”고 했다. 이런 덤덤함이 매사에 최선을 다하게 하는 동력이리라.

‘팩트 폭격기’인 김구라도 인정했다. “윤여정의 실력, 열정, 쉽게 들뜨지 않는 세련됨, 유머러스함, 통찰력, 그런 것들이야 말로 요즘 젊은 친구들이 닮고 싶어 하는 덕목들 아닐까요?”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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