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방송·연예

“첫 정치 드라마 ‘제1공화국’…첫 녹화장에 사장까지 출동했다”

등록 2018-03-04 10:31수정 2018-03-04 22:18

‘텔레비전 사상 최초’ 축복이자 형벌
“김기팔 작가 함께이니 두려울 게 없다”

‘30년 전 현대사’ 사실주의 기법 도전
실존인물 재생할 ‘절묘한 배역’ 고심

민주적 원칙 ‘소외된 연기자’ 캐스팅
“연기자들 해방구 같다며 혼신 다해”
‘이승만보다 더 이승만 같다’ 감탄
주제곡도 ‘보통사람을 위한 팡파르’

1981년 3월30일 첫 녹화부터 밤샘
사장실에서 직접 시사회 연 이진희
‘9분 늘려달라’ 요청에 ‘시간 지켜라’

1981년 문화방송 봄 개편 간판 프로그램으로 기획된 <제1공화국>은 국내 티브이 사상 첫 대하 정치 드라마로 준비 단계부터 안팎의 관심을 모았다. 작가 김기팔과 피디 고석만의 ‘사실주의 기법의 연출’ 원칙에 따라 실존 정치인과 닮은꼴로 재탄생한 등장인물들부터 화제를 일으켰다. 이승만-최불암, 김구-이영후, 장택상-이정길, 김상순-, 최인규-남성훈, 김두봉-박영지, 프란체스카-외국인, 조병옥-김무생, 이정재-조경환, 윤공흠-나성균, 김규식-이묵원, 장덕수-한인수, 이기붕-박규채, 최현-임현식, 역사 교수-최낙천, 김두한-강인덕, 이재학-이영달, 곽상훈-박웅, 김마리아-김애경,  유진산-심양홍, 김일-최선균, 박순천-전양자, 이승만 비서-박영태, 곽영주-임문수. 사진 <엠비시 가이드> 제공
1981년 문화방송 봄 개편 간판 프로그램으로 기획된 <제1공화국>은 국내 티브이 사상 첫 대하 정치 드라마로 준비 단계부터 안팎의 관심을 모았다. 작가 김기팔과 피디 고석만의 ‘사실주의 기법의 연출’ 원칙에 따라 실존 정치인과 닮은꼴로 재탄생한 등장인물들부터 화제를 일으켰다. 이승만-최불암, 김구-이영후, 장택상-이정길, 김상순-, 최인규-남성훈, 김두봉-박영지, 프란체스카-외국인, 조병옥-김무생, 이정재-조경환, 윤공흠-나성균, 김규식-이묵원, 장덕수-한인수, 이기붕-박규채, 최현-임현식, 역사 교수-최낙천, 김두한-강인덕, 이재학-이영달, 곽상훈-박웅, 김마리아-김애경, 유진산-심양홍, 김일-최선균, 박순천-전양자, 이승만 비서-박영태, 곽영주-임문수. 사진 <엠비시 가이드> 제공
고석만의 첨병 ⑧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

<한겨레> 연재 회고록 ‘길을 찾아서’ 21번째 주인공은 고석만 프로듀서다. 1973년 <문화방송>(MBC)에 입사한 이래 그는 30여년간 숱한 화제작을 제조했다. ‘정치드라마의 대부’ ‘스타 피디 1세대’ 같은 명성과 더불어 ‘문제 피디’라는 시비도 따라다녔다. 특히 ‘공화국 시리즈’와 ‘재벌 시리즈’는 한국 사회의 가장 민감한 환부를 정면으로 드러낸 까닭에 대부분 ‘조기 종영’을 해야 했다. 끝내지 못한 드라마의 숨은 이야기들을 ‘고석만의 첨병’에서 마침내 직접 털어놓는다.

1945년 이래 해방공간의 실제 역사 사진들을 짜깁기해 배경에 깔고 한자로 쓴 <제1공화국> 타이틀. 주제곡은 유태계 미국 고전음악가 에런 코플런드의 ‘보통사람들을 위한 팡파르’였다.
1945년 이래 해방공간의 실제 역사 사진들을 짜깁기해 배경에 깔고 한자로 쓴 <제1공화국> 타이틀. 주제곡은 유태계 미국 고전음악가 에런 코플런드의 ‘보통사람들을 위한 팡파르’였다.
원시림에 첫발을 내디딜 때 발끝에 느껴지는 폭신함이 좋다. 그러나 앞은 캄캄했다. 한국 텔레비전 최초의 정통 정치드라마를 한다는 것은 축복이요 형벌이었다. 제작의 방향을 설정하고 첫길을 여는 지금 ‘항구함’과 ‘꾸준함’을 덕목으로 삼아, 긴 호흡으로 끈질기게 가야 한다고 다짐했다. 나에겐 첨단의 내비게이션은 없어도 나침반이 있다. 더욱이 김기팔 작가와 동행하는데 두려울 게 무언가. 현실을 극화한다는 것은 현실의 의미와 역사의 의미를 동시에 표현해야 하는 것이다. 그 기반 위에서, 새롭지만 낯설지 않은 길을 찾아야 한다. 첨병은 최소한 반 발자국은 앞서가야 하기 때문이다. 1981년에 만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정치드라마의 방송엔 시기가 중요하다. 정권 교체기가 호기다. 1981년, 쿠데타로 집권한 신군부는 정통성 확보가 급선무다. 그러려면 옛 정권을 퍼내야 한다. 그 첫삽이 역사 바로잡기다. 우리에게 기대할 것이다. 기왕 어렵게 출발한 기획의 순항을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 민주발전·역사발전·정치발전을 심대하게 막는 일만 아니면, 목에 칼이 들어오지 않는 한 슬기롭게 헤쳐가야 한다고 본다. 정글이다.

첫번째 지혜는 절묘한 배역이다. 곧바로 국민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드라마 <제1공화국>은 바로 오늘에 이어지는 어제의 이야기다. 그러므로 제1공화국을 이끌었던 사람들의 모습이나 행적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시청자들이 많다. 조선왕조의 임금이나 정승들은 누가 어떻게 분장해도 극적인 전개에 큰 무리가 없다. <제1공화국>의 연기자들은 우선 내용에 앞서 실재했던 인물과 닮아야 한다. 닮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연기력으로 시청자들이 기억하는 모습을 재생시켜야 한다.

캐스팅 작업에 돌입했다. 수십장의 사진을 칠판에 붙이고, 또 수백장의 배우 얼굴을 그 옆 칠판에 붙이고, 보고 또 보고를 수백번씩 했다. 배우 사진을 흑백 복사기에 넣고 두세번 돌리면 윤곽선만 나온다. 실제 인물의 특징과 미농지에 몽타주를 맞추듯 하면 새로운 얼굴을 만나게 된다. 핵심은 배우들과 분장과 고정 이미지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캐스팅의 권한은 100% 연출자의 몫이었다. 권력이자 부담이다. 작가와 조연출 외에는 어느 누구도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이 없다.

우리는 캐스팅부터 객관적·민주적 원칙을 주창하였고, 연출팀 전원 완전합의제를 도입했다. 주요 배역 몇 명만 빼고는 탤런트실에서 명단을 받아 소외된 연기자 중심으로 캐스팅했다. 그들은 이곳을 해방구라 불렀고, 혼신의 힘을 다했다. 누구는 모처럼 ‘곗돈을 부었다’고도 했다. 가장으로서 자랑스러워하는 연기자들의 모습이 한편으론 가슴 아팠다. 연기자들은 선배 후배 할 것 없이 새로운 인물 설정을 시도했다. <제1공화국>의 연습장과 녹화장은 축제의 현장이며 기도실이 되었다. 문화방송 전체의 변화였다. 사실주의 기법의 시작점이었다.

<제1공화국>의 주요 배역인 ‘이승만’의 최불암은 애초 닮은꼴 외모는 아니었으나 특유의 어투까지 재현해내 ‘더 이승만 같다’는 반응과 더불어 이승만 연기의 전형이 됐다. 사진은 1981년 <제1공화국> 녹화를 앞두고 최불암이 ‘이승만 분장’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제1공화국>의 주요 배역인 ‘이승만’의 최불암은 애초 닮은꼴 외모는 아니었으나 특유의 어투까지 재현해내 ‘더 이승만 같다’는 반응과 더불어 이승만 연기의 전형이 됐다. 사진은 1981년 <제1공화국> 녹화를 앞두고 최불암이 ‘이승만 분장’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제1공화국>의 캐스팅은 대성공이었다. “이승만의 최불암은 이승만보다 이승만 같다.” 김구-이영후, 이기붕-박규채, 유진산-심양홍, 장택상-이정길, 조병옥-김무생, 김일성-국정환, 조만식-박종관, 윤치영-김용건, 김준연-최명수, 여운형-김길호…. 송진우 역의 박근형만 유일하게 81년식 장발 헤어스타일을 고집했다. 첫회에 암살당하는 씁쓸함을 감수하고 기꺼이 출연해준 박근형님께 이 자리를 빌려 새삼 고마움을 전한다.

1981년 4월2일 방송된 <제1공화국> 첫회 ‘이승만과 김구’편에서 암살당하는 고하 송진우 역으로 등장한 탤런트 박근형은 유일하게 닮은꼴이 아니라 장발 헤어스타일 분장을 고수했다. 사진 오른쪽은 기생 역으로 잠깐 나온 신인 시절의 이보희. <한겨레> 자료사진.
1981년 4월2일 방송된 <제1공화국> 첫회 ‘이승만과 김구’편에서 암살당하는 고하 송진우 역으로 등장한 탤런트 박근형은 유일하게 닮은꼴이 아니라 장발 헤어스타일 분장을 고수했다. 사진 오른쪽은 기생 역으로 잠깐 나온 신인 시절의 이보희. <한겨레> 자료사진.
대본이 집필되는 동안 연출팀과 미술팀은 매일 아침 8시에 만나 한 시간씩 보름 동안 전날 구해온 필름 자료, 스틸 자료, 필적 등을 연표와 함께 나눠보며 그 시대로 잠입해 들어갔다. 흑백 사진의 의미. 선명하지 못함에서 오는 해석의 차이, 불확실성의 초조, 미지의 불안을 극복하기 위함이었다. 이미지의 범람 앞에서 연출팀과 미술팀은 아침부터 토론하고 이해하고 인식에 도달하는 작업을 부단히 해나갔다. 처음엔 불편해하더니 자료 검색과 토론을 할수록 다른 곳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신선함을 느끼고 있었다. 아하! 사실적 진실을 통해 새로운 인식에 도달하는 섬뜩함을 맛보며 흥분하고 있었다. 우리 제작진은 이미지의 편견을 깨기로 했다. 사실주의만이 이 시대를 선도할 수 있다고 모두가 확신하게 되었다.

다음은 주제곡. 에런 코플런드의 ‘보통사람을 위한 팡파르’를 골랐다. 강하면서 힘찬 브라스의 선율과 다이내믹한 타악기의 사운드가 잘 조화된 20세기 최고의 팡파르. 팀파니는 심장의 박동처럼 두근거린다. 트럼펫이 치고 나와 안간힘을 다해 ¼음까지 음정을 높인 뒤 하늘 끝에 도달하지 못하고 서면, 팀파니가 다시 나와 호른을 불러낸다. 이어서 트롬본이 앞장서고 어느 틈에 세 관악기의 합주가 장엄하면서도 처연하게 울린 다음, 팀파니와 두 대의 큰북이 간담을 서늘하게 때려쳐 온 세상에 울리면 거기까지. 곡의 제목까지 <제1공화국>의 주제를 닮아서 참 좋다. 나팔 소리에 맞춰 해방공간 시대의 흑백 사진을 모아 타이틀백을 만들었다.

81년 3월30일 드디어 첫 녹화날, 사장이 촬영을 직접 보러 온다고 해서 회사 전체가 벌컥 뒤집어졌다. 겨우 오후 5시에야 녹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에이(A) 부조에 사장이 들어서고 간부들이 가득 들여다보고 섰다. 첫 장면, 큰 시계의 초침을 클로즈업하는데 상표가 보여 수정하고, 조명의 헐레이션이 또 시간 잡아먹고, 15초 장면을 한 시간 걸려 찍었다. 내 ‘오케이’ 사인에 사장은 그 특유의 은니를 내보이며 웃었다. 전쟁을 방불케 하는 첫 녹화는 밤을 꼬박 새우며 진행되었고, 사장도 새벽 4시 종료 때까지 처음으로 설치한 사장실 라인 모니터로 녹화 장면을 모니터했단다.

그렇게 첫 녹화를 끝내고 나는 사무실 뒤켠 소파에 주검처럼 쓰러졌다. 이튿날 오후 2시가 넘어 깨어나 4층 녹화실에 쫓아갔다. 힘이 없다. 다리가 풀린, 미역국도 못 먹은 채, 퉁퉁 부은 어미가 새벽에 낳은 자식이 보고 싶어 신생아실로 꾸역꾸역 찾아 나선 것이다. 1인치짜리 연두색 소니 필름테이프를 받아 안았다. 테이프에 ‘제1공화국, 제1회, PD 고석만’이라고 선명하게 씌어 있다. 그리고 제작시간 97분. 아휴~ 일났다. 규정 제작시간 83분인데, 더구나 광고시간까지 고려하면 14분 넘친다. 그길로 편성실로 달려갔다. 목요일 편성표는 가안이 이미 나와 있다. 편성부장한테 다가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이실직고했다. 잠시 침묵. “첫회에 간판인데….” 부장은 위에서 허락하면 고쳐주겠다며 인심 쓰는 듯 말했다. 방송시간 준수, 마지막 애국가 나오는 시간은 절대 준수해야 하는 정부의 언론통제 무기였다. 10분쯤 넘기는 게 사회질서를 무너뜨리는 악행이란 말인가? 다음날 오전 10시 사장실 시사회가 잡혀 있다. ‘그때 사장한테 말해야지.’

1981년 3월 이진희 사장은 <제1공화국> 첫 녹화부터 밤새 지켜보고 사장실에서 시사회까지 열어 진두지휘했다. 하지만 첫회 방송시간을 늘려달라는 고석만의 요청엔 ‘편성 원칙 고수’를 지시했다. 사진은 1980년 9월 방송의 날 6·25 특집극 <아베의 가족>으로 ‘한국방송대상’(연출상)을 수상한 고석만(왼쪽)에게 축하 인사를 하는 이진희(오른쪽).
1981년 3월 이진희 사장은 <제1공화국> 첫 녹화부터 밤새 지켜보고 사장실에서 시사회까지 열어 진두지휘했다. 하지만 첫회 방송시간을 늘려달라는 고석만의 요청엔 ‘편성 원칙 고수’를 지시했다. 사진은 1980년 9월 방송의 날 6·25 특집극 <아베의 가족>으로 ‘한국방송대상’(연출상)을 수상한 고석만(왼쪽)에게 축하 인사를 하는 이진희(오른쪽).
10층 사장실, 적절하게 암전을 시키고 침묵 속에 테이프가 돌아갔다. 주제곡과 함께 시작한 직후 잠시 뒷문이 열리며 비서 두명이 차반을 들고 들어서자, 사장은 힐끗 보더니 내가라고 손짓한다. 숨막히는 97분의 시간이 지났다. 테이프가 멈추고 불이 켜지며, 모두 심호흡을 내쉬곤 사장의 입만 바라봤다. 사장은 두 손으로 의자의 손걸이를 힘껏 치며 ‘으랏차차’ 호흡으로 일어났다. “내일이지? 방송?” 그러곤 아무 말도 없이 나간다. 간부들 줄줄이 옆으로 비켜서는데, 유일한 외부인사인 김기팔 작가에게만 악수를 청하며 활짝 웃었다. 이어 바로 옆에 서 있던 내게도 악수를 청하는 게 아닌가? 나는 그때를 놓치지 않았다. “사장님, 시간을 오버했습니다. 첫방인데 그냥 나가게 해주십쇼.” “지금 몇 분이데?” “광고 포함 97분, 14분 오버했습니다.” “그래?… 시간 지켜….” 그리고 사장은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나가버렸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14분이다. ‘연출은 백지 한장 차이라는데, 백지가 쌓이면 산이 되고….’ 저녁식사 뒤 줄이기 작업에 돌입해 이튿날 출근시간 때까지 외로운 작업은 계속되었다. 녹화 담당이 녹아떨어진 건 밤 12시쯤이고, 조연출도 새벽 4시를 넘기며 처참한 모습으로 꼬꾸라졌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한달간 집엔 두번밖에 못 들어갔고 날밤을 새운 게 이번 주일에만 사흘. 지금 우리는 사람이 움직이는 게 아니다.

첫 방송일인 4월2일 오전 11시쯤 편집이 끝났다. 꼬박 15시간 동안 페이퍼로 갈아낸 셈이다. 9분을. 연출부 전원을 불러모아 최종 시사에 들어갔다. 모두가 혼미한 상태라 ‘정신 차려!’ 큰소리치며 테이프를 돌렸다.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눈이, 정신이 살아난다. 86분, 마지막 타이틀이 나가는 순간 누가 먼저인지 모르겠는데 박수가 터져나왔다. “와~” “뭔가 달라졌어요.” “딴 드라마 같아요.”

그 환호 속에서 이진희 사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진희는 명장인가?’ 기본에 충실했던 이진희와 그가 만난 시대는 어떤 대척점에 있었나? 이진희는 대학 시절에 영화광이었다 한다. 극장을 다니면서 받아온 영화 프로그램이 라면 상자로 한가득 있다고 한다.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다는 얘기가 사실인가 보다.

훗날 <제1공화국> 제작팀 위로연에서 이진희는 말했다. 그날 그는 연출자를 사장석 맞은편 주빈석에 앉게 하고, 본부장·국장·부국장·부장 그리고 최불암 배우를 초청했다. 자정을 훨씬 넘기고, 모두 심하게 취할 즈음 최불암의 주정이 불거졌다. 그는 횡설수설 떠들다 나가버렸다. 신임 사장에게 자기 존재 확인을 시키기 위함이었으리라. 그가 나가자 ㅇ부장이 한마디 했다. “배우는 어딜 가나 배우야, 객이 갔으니 우리끼리 제대로 마시지요. 우하하하.” ㅁ국장도 껄껄대고, ㅍ부장도 동의하며 웃어 젖히고, 모두들 왁자지껄하며 먼저 나간 최불암을 놓고 비아냥거렸다. 그때 갈비만 뜯고 있던 사장이 상 밑으로 발을 뻗어 내 무릎을 툭 민다. 놀라 쳐다보니 눈을 껌벅거리며 그들을 보고 웃고 있지 않는가. “(나 같은) 객한테 들으라는 얘기지?” 하는 표정으로…. 이들 토착 세력들에게 사장은 객일 뿐이다. 곧 떠날 손님에게 “내 노니는 마당에 잠시 들르신 객은 누구신가? 언제 떠날 건가?” 하는 내심을 취중에 드러내고 있었다. 토호 같은 내부자들의 ‘구악’을 보고 있다. ‘무섭다’고 하는 사장에게 이럴 정도면, 보이지 않는 시청자들에겐 어떤 마음일까.

이진희 사장이 82년 문화방송을 떠나 문화공보부 장관 등을 지내고 야인이 된 91년쯤, 서초동 삼풍백화점 로비에서 딸과 같이 걸어오고 있는 그를 우연히 만났다. 10년이 넘었는데도 많이 반가워했다. 마침 내가 들고 있던 종이봉투엔 조금 전 백화점 서점에서 산 두권의 책이 담겨 있었다. 그중 한 권이 <고뇌하는 한국 지도력의 위기>(이진희 지음), 그는 책에서 자신이 기획한 정치드라마 <제1공화국>의 핵심이 되었던 ‘해방공간’을 심도있게 그려놓고 있다. 81년, 악역을 자처한 언론인 출신 지식인 이진희 사장이 남아 있을 ‘해방공간’은 어디쯤인가.

<제1공화국>은 당대 최대의 블록버스터로 준비되었다. 기본적으로 논픽션이니 사실적으로 그려야 한다. 지금 신군부의 치명적 결핍은 신뢰감이다. <제1공화국>은 불과 30년 전의 역사를 재현하는 만큼 시청자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그 신뢰를 바탕으로 민주주의를 노래하자. 그다음 예술로 승화시켜야 한다. 저 멀리 예술적 팡파르가 아스라히 들려온다. ‘보통사람을 위한 팡파르’.

기획·진행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2.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괴물이 되어서야 묻는다, 지금 내 모습을 사랑해 줄 수는 없냐고 3.

괴물이 되어서야 묻는다, 지금 내 모습을 사랑해 줄 수는 없냐고

‘시그널’ 10년 만에 돌아온다…내년 시즌2 방송 4.

‘시그널’ 10년 만에 돌아온다…내년 시즌2 방송

할리우드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AI, 아카데미도 접수하나 5.

할리우드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AI, 아카데미도 접수하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