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비에스>의 트로트 예능 <트롯신이 떴다>. 에스비에스 제공
변방에서 중심으로 우뚝 섰다. 트로트 얘기다. 지상파, 종합편성채널, 케이블 등 어느 하나 가릴 것 없다. 틀었다 하면 ‘트로트 가수’고, 나왔다 하면 ‘시청률 급등’이다. 그야말로 신드롬이라고 할 만한 인기다.
하지만 불안한 징후도 엿보인다. 각종 인기 프로그램에 트로트 가수들이 연이어 출연하고, 각 방송사가 너도나도 비슷한 형식의 트로트 예능 프로그램을 쏟아내면서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편에서는 가수들의 겹치기 출연과 판박이 방송이 어렵게 달아오른 트로트 열풍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지난해 <티브이(TV)조선>의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트롯>과 올해 <미스터트롯>의 연이은 성공 이후 각 방송사는 트로트 예능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뽕 따러 가세>(티브이조선), <트로트퀸>(엠비엔), <나는 트로트 가수다>(엠비시에브리원) 등이 이미 선보였고, <트롯신이 떴다>(에스비에스), <신청곡을 불러드립니다―사랑의 콜센터> <뽕숭아학당>(이상 티브이조선)이 현재 방송 중이다. 지난 16일부터는 기성 가수들이 트로트에 도전하는 모습을 담은 <내게 온(ON) 트롯>(에스비에스플러스)도 방송을 시작했다.
여기에 더해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도 줄줄이 안방극장에 오를 채비를 한다. <한국방송>(KBS)은 트로트 가수 송가인의 소속사와 손잡고, 하반기 방송을 목표로 대국민 트로트 가수 오디션 <트롯전국체전> 제작에 들어갔다. <문화방송>(MBC) 역시 하반기에 ‘대국민 트로트 대전’을 내건 <트로트의 민족>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 방송사는 트로트 가수 장윤정이 남성 트로트 그룹을 만드는 내용을 담은 <최애엔터테인먼트>도 다음달 4일부터 방송한다. 종편인 <엠비엔>(MBN)은 다음달 10일부터 제작비 200억원 규모의 트로트 서바이벌 프로그램 <보이스트롯> 방송을 예고한 상황이다.
방송사마다 트로트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잡음도 일고 있다. <에스비에스>(SBS)와 <티브이조선>의 힘겨루기가 대표적이다. 지난달 13일 첫방송 한 <뽕숭아학당>은 같은 시간대에 앞서 방송 중인 <트롯신이 떴다>(에스비에스)에 출연 중인 주현미, 장윤정, 김연자, 설운도 등을 영입하면서 방송 전부터 동시간대 편성과 겹치기 출연을 둘러싼 논란을 빚었다.
<내게 온(ON) 트롯>. 에스비에스플러스 제공
이렇게 방송사들이 트로트 경쟁에 뛰어드는 이유는 ‘시청률’ 때문이다. <티브이조선> 사례는 방송사가 트로트 예능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잘 보여준다. 시청률 조사회사 티엔엠에스(TNMS) 미디어데이터가 16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8년 1월과 2월 채널 시청률 기준으로 지상파와 종편을 합쳐 최하위를 기록한 <티브이조선>은 2020년 1월 <미스터트롯>의 인기로 3월 종영 때까지 석달 동안 종편 1위에 올랐다. 특히 결승전이 있었던 3월에는 지상파인 <문화방송>마저 제치고 전체 채널 가운데 4위에 오르기도 했다.
주목받는 트로트 가수의 출연으로도 시청률은 수직상승한다. 지난달 9일 방송된 <아는 형님>(제이티비시)은 자체 최고치인 15.5%의 시청률(닐슨코리아 집계, 전국 기준)을 기록했다. 임영웅, 영탁, 이찬원, 김호중, 정동원, 김희재, 장민호 등 <미스터트롯> ‘톱 7’이 출연하면서 전주 7.9%에서 두배 가까이 시청률이 뛴 것이다. 이들 가운데 일부가 등장한 <라디오스타>(엠비시), <뭉쳐야 찬다>(제이티비시)도 평균 4~6%대였던 시청률이 10%대로 껑충 올랐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나 유튜브 등으로 콘텐츠를 즐기는 젊은 세대와 달리, 여전히 텔레비전을 즐기는 중장년층을 트로트로 공략한 것이 주효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트로트 예능이 반짝 흥행에 그치지 않으려면 다양성을 바탕으로 한 낯설고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고 짚는다. 앞서도 ‘오디션’ ‘먹방’ ‘육아’ 예능 등이 인기를 끌었지만, 여러 방송사가 차별화되지 않은 비슷한 프로그램을 내놓으면서 그 인기가 지속되지 못했다. 이승한 대중문화평론가는 “방송사는 히트상품이 나오면 그와 비슷한 포맷으로 승부를 보려 하는데, 이는 해당 장르의 생명력을 갉아먹을 수 있다”며 “방송사들이 ‘어떻게 하면 <미스터트롯>이나 <미스트롯>이 거둔 성공을 되풀이할 수 있을까’를 생각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트로트로 다양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트로트 붐이라고 이야기하지만, 트로트를 잘 부르는 잘생긴 신인 남성에 열광하고 있는 건 아닌지, 트로트 붐의 혜택이 몇몇 가수가 아닌 트로트 가수 전체에 고르게 돌아가는지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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