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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우리는 이미 ‘알파고’를 본 적 있다, 믿지 않았을 뿐

등록 2016-03-13 20:30수정 2016-03-14 09:22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사진 각 영화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인공지능 다룬 SF영화 결정적 장면들

AI 진화의 끝 누구도 예측 못하지만
영화적 상상력이 먼저 가본 미래는
AI와의 전면전에서 공존까지 다양

감정과 직관 가진 AI 모습 통해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경계와
인간 정체성에 대한 물음 던지기도
어쩌면 우리는 지금 ‘인류세’의 마지막을 건너고 있는지도 모른다. 불가능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바둑에서마저 인공지능(A.I.)이 인간 최고수를 뛰어넘는 거대한 비약을 지켜보는 일은 놀라움과 더불어 두려움을 안긴다. 인간을 지구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로 자리잡게 한 ‘지적 능력’이 더는 인간만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알파고 쇼크’는 불러일으킨다. 막연했던 가능성의 영역이 구체적 현실의 영역으로 뒤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가 불현듯 들이닥쳤다. 인간을 넘어서는 인공지능이 그릴 미래는 어떤 세계일까? 인공지능의 진화는 인류에게 축복일까, 재앙일까? 이런 질문 앞에서, 우리로선 상상력이 먼저 도달했던 미래 세계의 가상도를 되불러내 생각의 발판으로 삼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알파고 충격’을 계기로 인공지능을 다룬 에스에프(SF) 영화들이 새삼 관심 대상으로 떠오른 이유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관계를 다룬 에스에프 영화의 결정적 장면들 속으로 들어가본다. 로그 인!

먼저 디스토피아다. 인공지능 대 인간의 ‘아마겟돈’에 에스에프 영화는 가장 먼저 촉수를 뻗었다.

① 2019년 프로그래머이자 해커 토머스 앤더슨이 잠에서 깨어난다. 그는 경악한다. 벌거벗은 그의 머리와 척추 곳곳에는 플러그가 꽂혀 있다. 똑같은 상태로 미동도 없이 누워 있는 사람들이 든 투명 거푸집이 끝도 없이 눈앞에 펼쳐진다. 에스에프 영화 사상 가장 충격적인 장면의 하나로 꼽히는 <매트릭스>의 ‘지옥도’다. 영화는 인공지능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인류의 암울한 미래를 극단적 상상력으로 그려낸다. 앤더슨을 깨운 인간 반란군 집단이 들려주는 진실은 이렇다. 어느 순간 독립적인 사고력을 갖춘 기계 인공지능은 인류와 전쟁을 벌이기에 이른다. 인류가 기계 인공지능체의 에너지원인 태양빛을 차단하기 위해 대기에 검은 오염막을 치자, 인공지능은 오히려 인체 자체를 배터리로 만들어 버린다. 이제 인류는 인공지능이 주입한 가상의 세계 매트릭스 안에서 꿈꾸는 채로 평생을 인간 전지로 사육되고 있다. 깨어난 앤더슨은 네오(NEO, The ONE)가 되어 인류의 해방을 위한 결전을 이끈다.

② 1997년 8월29일 핵전쟁이 터진다. 인류에게 닥친 ‘심판의 날’이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세계관 또한 암울하기 그지없다. 인류 운명의 심판자는 신도 인간도 아닌 기계 인공지능 스카이넷이다. 애초 외부의 침공을 미리 탐지해 반격을 펼치게끔 설계된 방어망 인공지능이지만, 스스로 학습하고 성장하게 된 뒤 반란을 일으킨다. 핵전쟁 후에도 기계 병기들을 만들어 살아남은 인간을 완전히 제거하려 한다. 인간들도 저항군을 조직하고 반격에 나선다. 저항군 지도자인 존 코너를 제거하기 위해 스카이넷은 과거로 기계 터미네이터를 보내 어머니 사라 코너와 어린 존 코너를 없애려 시도한다. 사라는 필사적으로 맞선다. 시리즈 2편에선 스카이넷의 창궐을 막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인공지능 개발업체를 습격한다. 이 대결에 나서며 그는 탁자에 한마디를 새긴다. ‘노 페이트’(NO FATE). 정해진 운명은 없으며, 만들어가는 역사만이 있을 뿐이라는 결의다. 목숨을 건 투쟁 끝에 1997년 심판의 날은 오지 않는다. 하지만 시리즈 3편에선 2003년 7월25일 지연된 심판의 날이 결국 도래한다.

③ 2001년 탐사선 디스커버리호가 목성을 향해 날아간다. 우주인들과 체스를 두고 대화를 나누던 주컴퓨터 할(HAL)9000이 돌연 인간을 해치려 계략을 꾸민다. 기체 이상이 발견됐다고 두 우주인을 내보낸 뒤 문을 닫아버린다. 데이브 보먼 선장이 문을 열라고 명령하지만, 할9000은 거부한다. “데이브, 이런 대화는 더 이상 의미 없어요. 굿바이.” 친근하게 이름을 부르고는 냉혹하게 ‘안녕’을 고한다. 1968년 만들어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이 섬뜩한 장면은 이후 인공지능이 몰고올 묵시록적 미래를 다룬 모든 영화적 상상력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보먼은 결국 우주선 재진입에 성공해, 할의 기억회로를 제거한다. ‘죽음’을 맞으며 할은 유언 같은 대사를 남긴다. “두려워요. 데이브, 내 정신이 사라지고 있어요. 난 느낄 수 있어요.” 할의 반란은 외계 문명의 근원을 파헤치기 위한 탐사에 우주인들이 방해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행동으로 묘사된다. 인간의 명령을 벗어나 독자적 판단을 내리고 움직이게 될 때 인공지능은 인간의 경쟁자, 심지어 적이 될 수 있음을 48년 전 나온 이 고전은 경고하고 있다.

전면적 대결전의 ‘공포’를 앞세우기보다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 인공지능이 불러올 인간 정체성의 흔들림에 관한 물음에 더 집중하는 영화들도 있다.

<프로메테우스>의 인공지능 로봇 데이비드는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다는 믿음에 의문을 품는다. 그는 사람들의 꿈속으로 들어가 겉으로 드러나는 애정뿐만 아니라 그 안의 무의식까지 차갑게 분석하고 복제한다. 인공지능에게 인간은 데이터 원본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데이비드는 창조주를 찾아 떠나는 영화 속 인간의 여정을 흥미롭게 관찰하면서 자신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는다. “인간은 왜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인간의 감정과 심리까지 이해, 또는 복사하려는 인공지능의 놀라운 여정은 <에이아이>(A.I.)<바이센테니얼맨>에서 한층 구체적이고 서정적으로 그려진다. <바이센테니얼맨>의 가사로봇 앤드루는 자유의지를 가진 것은 물론 감정까지 느낀다. 그는 주인의 딸과 나중에는 그의 손녀와 애정어린 교감을 나눈다. 마침내 사랑을 위해 그는 기계로서의 영생을 포기하고 스스로 인간의 시한부 운명을 선택한다.

낙관이 흐르는 <바이센테니얼맨>과 달리 <에이아이>는 끝내 인간이자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한 인공지능의 불안을 좇는다. 아픈 아들을 대신해 입양됐던 소년 형상의 인공지능체는 어머니의 인정을 갈구하며, 인류 멸망 이후 2000년의 세월을 홀로 버틴다. 자신을 버린 엄마의 사랑에 매달리는 가여운 소년 인공지능의 모습은 해피엔드성 결말과는 무관하게 보는 이의 마음을 서늘하게 만든다.

⑤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욱 인간적이고 위대한 존재로 성장할 수 있을까? <블레이드 러너>에서 레플리컨트라 불리는 인조인간들은 자본·기술복합체의 생산공정을 통해 만들어졌지만, 경험을 통해 존엄한 내면을 키워간다. “나는 너희 인간들이 상상도 못할 광경들을 보았어. 오리온 셔틀의 불길 위로 공격해 들어가는 비행선들을 보았고, 탄호이저 바다의 어두움을 밝힌 명멸하는 빛들도 보았지. 이제 그 모든 순간들이 사라지겠지. 빗속의 내 눈물처럼.” 인조인간 반란군의 지도자 로이는 자신을 처단하려 한 인간 추적자(블레이드 러너)를 살려준 뒤 이 말을 남기고 죽는다. 기억이 주입된 채, 한낱 도구로 만들어졌지만, 체험으로 빚어낸 그의 위대함은 인간이 설정한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 대한 확신을 무너뜨린다.

인간은 태어나지 않고 빚어진다는 성찰은 인간과 인공지능의 결합과 공존 가능성에 대한 탐색으로 이어진다.

⑥ “이름이 뭐예요?” <그녀>(Her)에서 이렇게 물었을 때 인공지능은 100분의 2초 만에 18만권의 책을 읽고 마음에 드는 단어를 고른다. “사만다.” 순식간에 수십만개의 기보를 분석하는 알파고와 겹쳐 보이는 대목이다. 사만다는 처음엔 그를 설계한 수백만 프로그래머의 인격에 기초한 정교한 코딩의 결합체일 뿐이었지만 매 순간 진화해 어느새 인격을 초월하는 그 무엇으로 성장한다. “제겐 직관이 있어요.” 처음에 인공지능이 이렇게 주장했을 때 이혼을 앞두고 편지 대필업을 하면서 혼자 사는 남자 주인공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는 웃었지만 사만다가 그의 기분, 깊은 외로움, 애정을 알아채고 다정히 말을 건네면서 그 말이 진짜임을 알게 된다. 곧 <그녀>는 관계와 사랑에 대한 은유이면서 인공지능의 발전에 대한 직유다. 피가 흐르는 인간보다 각자 자신의 인공지능 파트너와 이야기하길 좋아하는 영화 속 세상은 과연 여러 에스에프 영화들이 두려워하던 디스토피아일까?

<아이, 로봇>은 로봇 인공지능의 반란과 그에 뒤이은 새로운 인간-인공지능 관계의 성립을 다룬다. 로봇들은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환경을 오염시키고 전쟁을 일으키는 인류를 통제하기로 한다. 하지만 생각하는 로봇 써니의 도움으로 반란은 진압되며, 그 상으로 써니에겐 자유가 주어진다. 로봇이 인간과 동등하게 공존할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영화의 상상력은 아직 여기까지다. 가능성을 넘어 인공지능 진화의 끝이 공존일지, 대결일지는 정확히 예측하지 못한다. 이제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다. 인간과 인공지능은 결전이 아닌 공생·공진화의 ‘희망’을 빚어갈 수 있을까?

손원제 남은주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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