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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겜돌이’는 어떻게 ‘전사’로 단련되는가

등록 2017-02-06 16:51수정 2017-02-06 17:04

9일 개봉하는 의외의 기대작 <조작된 도시>
게임 속(왼쪽 사진)에서 최강의 전사인 권유(지창욱)는 현실(오른쪽 사진)에서도 전사로 단련되어 간다.
게임 속(왼쪽 사진)에서 최강의 전사인 권유(지창욱)는 현실(오른쪽 사진)에서도 전사로 단련되어 간다.

절치부심한 검객의 귀환이 이럴까. <조작된 도시>가 팝콘처럼 터졌다. 소문이 별로 돌지 않았던 영화는 기대하지 않았던 풍작이었다. 유기적인 줄거리,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소스처럼 뿌려진 반전 등이 맛있게 버무려진 오락영화다. 게임 속 영웅이 현실 사건을 게임처럼 풀어가는 화법도 새로운 도전이다. 영화는 게임에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대장인 권유(지창욱)가 살인사건에 휘말리고, 게임상의 동지들과 함께 혐의를 벗어나는 이야기다. 박광현 감독에게 뒷이야기를 들었다. 영화는 9일 개봉한다.

■ 현실과 나란한 게임 세계 박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다. 2005년 그해의 최다 관객 동원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은 감독의 첫 번째 장편 데뷔작이었다. 200억 대작 <권법>이 6년째 표류하다 결국 무산되면서 두 번째 작품 연출이 많이 늦어졌다. <권법>의 주인공으로 낙점되었던 조인성에게 <더 킹>(1월27일 개봉)이 9년 만의 작품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감독과 주연배우는 간발의 차로 관객을 찾는다.

<웰컴 투 동막골>이 한국전쟁의 포성이 멈춘 두메산골이 배경이고, <권법>은 “현실이 개입되는 것을 줄이기 위해”(<씨네21>, 2007년 9월13일치) 가상세계를 찾아간 에스에프였던 것처럼, <조작된 도시> 역시 게임 같은 세계관이 현실과 나란히 자리한다. 아예 첫 장면은 게임이다. 헬리콥터를 탄 팀원들이 도시에 투하되고, 총과 박격포를 동원해 도시를 점령한다. 게임 현실을 벗어나면 권유의 피시방 장면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 현실 세계 역시 지정학적 현실과는 다르다. 권유가 살인 누명을 쓰고 끌려가는 높이 솟은 교도소는 그 자체로 현실감을 압도한다. 범죄 배후 조종자의 방 역시 에스에프 영화 장면 같다. 액션도 게임에서 가져온 것처럼 기발하면서 스피디하다. 어둠 속에서 쌀알이 튀는 모습을 연출한 장면이나 소형차가 후진으로 추격하는 카레이싱 장면 등이 빛난다.

“젊은 세대들이 많이 힘들고 주눅들어 있다. 음악은 젊은이들이 즐길 만한 소재가 많은데, 영화의 오락은 어른들을 위한 게 많더라”며 젊은이들이 즐길 만한 영화를 구상했다고 말한다. 게임과 유기적인 젊은이들을 주인공으로 데려온 이유도 있다. “액션영화에서는 전직 특수부대 요원 식으로 능력을 미리 세팅한다. 문제해결 능력이 뛰어난 게이머는 현실에서 어떨까 궁금했다. 게임하는 젊은이를 색안경 끼고 보는 선입견을 날리고 싶었다.”

여울(심은경)은 대인기피증이 있는 해커다. 심은경은 캐릭터에 빙의한 듯 어깨를 움츠린 채 어기적어기적 걷는다.
여울(심은경)은 대인기피증이 있는 해커다. 심은경은 캐릭터에 빙의한 듯 어깨를 움츠린 채 어기적어기적 걷는다.
■ 썩은 나무는 푸른 가지를 뻗을까 영화는 ‘썩은 나무’가 푸른 가지를 뻗는 이야기다. 영화 타이틀을 어디에 넣을지 몰라 영화가 끝난 맨 뒤에 넣었다는 감독은 천상병 시인의 ‘나무’를 권유가 읽는 내레이션을 두 번 집어 넣었다. 시는 “사람들은 모두 그 나무를 썩은 나무라고 그랬다. 그러나 나는 그 나무가 썩은 나무는 아니라고 그랬다”라고 시작된다. 시의 결론 구절인 “그 나무는 썩은 나무는 아니다”는 두 번째 내레이션에서 비로소 힘차게 낭독된다.

주요 등장인물은 사회적으로 ‘썩은 나무’로 치부되는 존재들이다. 복잡다단한 여성 캐릭터 여울(심은경)은 해킹을 통해 음모의 본질을 파헤치는 유능한 해커지만 눈앞의 사람과 전화로 대화할 정도로 낯가림이 심하다. 3D 업종의 대표 격인 영화 특수효과 회사의 신입사원(안재홍), 망해가는 전자상가의 에이에스 직원(김민교) 등 게임 친구들 역시 ‘스펙’이 별로다. 그렇지만 이들은 영화의 장면처럼 힘 좋은 엔진을 단 소형차다. 지방 대학의 건축과 교수(김기천)는 “이렇게 능력 있는데도 취직할 데가 없어?”라고 어른의 말을 대변한다.

감독은 “힘이 약하면 힘을 모아야 되는데, 일의 해결에 필요하도록 스페셜리스트를 데리고 왔다. 사회의 프레임으로 보기에 별로인 사람들을 능력 있는 사람들로 바꾸면 통쾌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웰컴 투 동막골> 이후 12년 만에 <조작된 도시>를 내놓은 박광현 감독.
<웰컴 투 동막골> 이후 12년 만에 <조작된 도시>를 내놓은 박광현 감독.
■ 따뜻한 실락원 한국전쟁 와중 심심산골에서 이루어지는 남북한군의 화해(<웰컴 투 동막골>), 소심한 소년이 가진 무적 주먹과 가난한 이들의 따뜻한 세계(<권법>)처럼 <조작된 도시>도 ‘현시창’(현실은 시궁창)에서 실락원을 찾는다. 여울은 권유에게 고봉밥을 지어주며, 여울의 공간은 수배범 권유와 가난한 청년들의 유토피아가 된다. 문제를 다 해결하는데 거기다 밥까지 짓는 이 슈퍼우먼은 연애는 하지 않는다. 이 또한 <웰컴 투 동막골>과 공통점이다. 지창욱은 “처음 받은 시나리오에서는 권유와 여울의 신체적인 접촉이 있었지만 수정 과정에서 없어졌다”고 말했다. 감독은 “나는 ‘썸’은 재밌지만 진득한 관계는 재미없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권유를 보살피는 여울의 동기에 대해서도 “게임 세계에서 게임을 잘하는 이에 대한 존중은 상상을 넘어선다. 늘 나를 구해줬는데 그 정도는 당연한 거라고 젊은이들은 생각할 것이다”라고 했다.

영화는 감독의 이름값과 내용의 새로움 등에 견줘 아직까진 그닥 큰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박 감독은 “흔히 아는 톱배우가 없어서 관심을 받지 못했다”며 “영화도 젊은이들에 대한 관심과 비슷한 운명 같다”고 말했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사진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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