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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울림과 스밈] ‘어제의 죄’ 잊으려는 영화계

등록 2019-03-04 17:45수정 2019-03-04 19:59

감독 김기덕, 배우 최일화·오달수
업계 관행 방패 삼아 활동 움직임
미투 피해자 두 번 상처주는 꼴
#장면1

영화계 ‘미투 운동’(#ME TOO·나는 폭로한다)의 대표적 가해자로 지목됐던 김기덕 감독의 영화 <인간, 공간, 시간, 그리고 인간>이 오는 7일 개막하는 일본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개막작으로 또다시 초청됐다. 앞서 지난해에도 이 영화는 독일 베를린영화제에 초청된 바 있다. 당시 그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성폭력 관련 질문이 쏟아지자 반성은커녕 “억울함”을 호소했고, 이후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보도한 <피디수첩>(문화방송)과 해당 방송에 출연해 피해 사실을 폭로한 여배우 등을 고소하는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인 바 있다.

#장면2

미투 가해자인 배우 최일화가 출연한 영화 <어쩌다 결혼>이 지난달 27일 극장에 개봉했다. 미투 논란의 중심에 선 연예인의 작품으로는 첫 개봉 사례다. 제작사 쪽은 “촬영이 미투 이전에 진행된 데다 최일화가 주인공의 아버지 역할이라 그의 출연 분량 전체를 편집할 수는 없었다”며 고개를 숙였다.

#장면3

미투 가해자로 지목된 또 다른 배우 오달수 역시 새 소속사에 둥지를 틀었다. 씨제스엔터테인먼트는 “미개봉 작품과 관련해 업무를 보고 있지만, 본격적인 활동의 의미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성폭력 폭로 전 ‘천만 요정’으로 불렸던 오달수가 주연한 영화 <이웃사촌>,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컨트롤> 등 3편은 아직 개봉 시기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전해진 세 가지 소식을 접하며 ‘용두사미’라는 말을 떠올린다면 ‘오버’일까? 하지만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미투 운동’이 갓 1년을 넘긴 지금, 영화계의 현주소를 보면 그런 노파심이 과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촬영장에서 김기덕 감독에게 폭력과 폭언을 당하고, 이를 폭로하자 무고 혐의로 고소까지 당했던 여배우 ㄱ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최근까지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는 그는 “이 싸움을 시작한 뒤 3년 동안 김기덕은 물론 언론과 댓글의 2차 피해에 만신창이가 됐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그런 그를 더욱 무기력하게 만든 것은 국내의 비난 여론을 무시한 채 해외 활동을 통해 재기의 돌파구를 꾀하는 김기덕의 행보와 이에 동조해 가해자의 편에 선 듯한 해외 영화제들의 행태일 터다.

한국여성민우회 여성연예인인권센터는 최근 입장문을 내어 “지난달 유바리영화제 쪽에 개막작 취소와 이에 대한 영화제의 입장 표명을 요구했지만 ‘개막작 초청을 취소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가해자가 제대로 된 사과나 책임을 지지 않고 버젓이 살아남을 수 있는 영화계의 관행을 다시 한 번 공고하게 만들어준 결정이자 문화예술계 인권을 또 한 걸음 후퇴시킨 행보”라고 비판했다.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고백과 폭로가 거대한 침묵의 카르텔에 균열을 냈지만, 그 균열이 공고한 둑을 완전히 허물어 버린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다. 한 편에서는 “가해자 하나 때문에 피땀 흘린 다른 스태프의 노고는 무시돼야 하느냐”, “작품은 죄가 없다”는 논리가 힘을 얻고 있다. 과연 그럴까? ‘어제의 죄를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죄에 용기를 주는 것’(알베르트 카뮈)이라는 명언을 영화계가 되새겨야 할 때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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