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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전통 뒤안길에 선 ‘마부’ 가족…이들에게 투영한 신분상승 욕망

등록 2019-05-28 11:50수정 2019-05-28 14:02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⑦ 마부
감독 강대진(1961년)
‘마부’는 말 대신 새로운 교통수단으로 자동차가 등장하는 시기를 배경으로 했다. 주인공 춘삼(김승호)은 어렸을 적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유산인 말수레로 가족들을 부양하며 살아간다. 춘삼이 일터로 나가는 장면.
‘마부’는 말 대신 새로운 교통수단으로 자동차가 등장하는 시기를 배경으로 했다. 주인공 춘삼(김승호)은 어렸을 적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유산인 말수레로 가족들을 부양하며 살아간다. 춘삼이 일터로 나가는 장면.
김승호처럼 ‘한국의 아버지’를 잘 표현하는 배우는 없었다. 충무로 서민극의 전통 속에서 김승호는 독보적인 아이콘이었다. 불과 20대 중반이었던 강대진 감독의 훌륭한 연출력과 베를린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수상이라는 영예가 있음에도, <마부>는 김승호라는 배우의 장악력 아래 있다. 사실 <마부>는 김승호가 가장 비루한 아버지로 등장하는 영화다. 그가 맡은 춘삼이라는 인물은 하루 벌어 하루 연명하는 하층민이고, 완고한 가부장이지만 사회생활에선 비굴하다. 홀아비로 살아가는 그는 네 남매를 키우는 게 버겁다. ‘마부’라는 직업도 불안하다. 자동차 문화가 밀려오면서 말이라는 전근대적 운송 수단은 이제 시대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다.

‘마부’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마침내 고시에 합격한 장남 수업(신영균)과 춘삼(김승호)이 감격한 채 눈 오는 거리에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린다.
‘마부’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마침내 고시에 합격한 장남 수업(신영균)과 춘삼(김승호)이 감격한 채 눈 오는 거리에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린다.
<마부>는 춘삼과 그의 가족이 겪는 현실을 통해 당대 한국 사회의 변화와 모순을 투영한다. 전통 사회가 점점 자본주의화되던 시기, 여전히 사람들 사이의 인심은 살아 있지만 1960년대는 자본의 소유 관계를 중심으로 서서히 계층 문제가 부각되고 있었다. 춘삼은 마주에게 고용되어 온종일 고된 노동을 하는 마부인데, 이때 마주는 돈벌이 수단으로 매력을 잃어가는 말을 팔아버리려 한다. 한편 장남인 수업(신영균)은 판검사가 되기 위해 고등고시 공부를 하고, 딸 옥희(엄앵란)는 결혼을 통해 신분 상승을 꿈꾼다. 아버지 세대는 직업을 잃을 위기에 놓여 있으며, 자식 세대는 사회 상층부로 올라가려는 욕망을 품는 상황. <마부>는 이러한 사회학적 현상을 한편의 드라마로 뛰어나게 구성한다.

비극적인 순간들로 이어지던 영화는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수업의 합격 소식을 접한 가족들은 중앙청 앞에서 끌어안는다. 춘삼에게 호감을 보이던 수원댁(황정순)은 가족의 일원이 되고, 그들에겐 희망의 내일만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펑펑 내리는 함박눈 때문인지 몰라도, 이 장면은 마치 꿈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이 비현실적 엔딩이 주는 현실적 울림은 상당하다. 이런 작은 기적이라도 바라야 했던 시절, 이 영화는 거부할 수 없는 동화였던 셈이다.

김형석/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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