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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베네치아 스타 큐레이터 전시장에서 만난 ‘양혜규 스타일’

등록 2022-04-20 07:59수정 2022-04-22 19:23

[노형석의 베네치아 아틀리에]

니콜라 부리오 기획전 ‘플래닛 B’
양혜규 작가 대형 프린트 작품 얼굴로
스타 큐레이터 니콜라 부리오의 기획으로 베네치아 시내 팔라초 볼라니에서 20일(현지시각) 개막하는 ‘플래닛 B: 기후변화와 새로운 숭고함’전의 전시장. 양혜규 작가가 생태적 풍경을 조합해 담은 대형 프린트지 작품이 벽 전면에 붙어있다.
스타 큐레이터 니콜라 부리오의 기획으로 베네치아 시내 팔라초 볼라니에서 20일(현지시각) 개막하는 ‘플래닛 B: 기후변화와 새로운 숭고함’전의 전시장. 양혜규 작가가 생태적 풍경을 조합해 담은 대형 프린트지 작품이 벽 전면에 붙어있다.

원래는 로마제국 난민들이 잿빛 개펄 위에 처음 지은 보금자리였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세계 경제를 주무르며 문화예술의 화창한 꽃밭을 피운 기적의 도시 베네치아. 인류문명사에서 최고의 문화적 창의력을 내뿜었던 우아한 고도는 지금도 21세기 세계 미술의 흐름을 이끄는 희망과 전망의 발신지가 되고 있다.

지구촌에서 가장 큰 미술잔치이자 예술올림픽이란 별칭으로도 유명한 베네치아 비엔날레가 23일(이하 현지시각) 막을 올린다. 한국을 포함한 28개 나라의 대표 기획자·작가들이 참여하는 카스텔로 공원의 상설국가관과 전세계 53개 나라가 참여하는 베네치아 시내와 옛 조선소 시설 아르세날레 일원의 상설·임시국가관, 그리고 알레마니 총감독이 꾸린 본전시, 기타 딸림 전시로 구성되는 최고의 미술 축제다. 원래 지난해 열릴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1년 늦은 올해 봄 열려 세계 문화계의 시선이 집중되는 중이다. 산마르코 광장과 대운하의 수로, 미로 같은 골목길, 카스텔로 공원 등 베네치아 곳곳은 지금 전세계 미술인들이 전해온 희망과 연대의 상상력으로 들뜨는 중이다. 3년 만에 열리는 세계 미술계 최전선의 잔치에서 시선을 끌어모으는 전시와 행사, 작품 흐름 등을 현장 취재로 전한다.

‘앗, 이건 양혜규 스타일인데!’

베네치아 옛 귀족집의 고풍스러운 홀에 들어서자마자 작가의 존재감을 직감했다. 눈앞에 확 나타난 큰 그림 때문이었다. 한국 무당이 굿을 할 때 제기에 달아 딸랑딸랑 흔들었음직한 금속 방울들이 세포 꽈리, 나뭇가지들과 엉킨 대형 디지털프린트 이미지였다. 이 큰 그림들이 고색창연한 홀의 정면과 옆 벽을 가득 채웠다.

19일 베네치아 도심의 한적했던 수로 옆 골목은 관객들의 활기로 넘쳐났다. 16~17세기 베네치아의 예술가와 학자들을 후원했던 명문 귀족 가문인 볼라니가의 옛 저택에서 전에 없던 난장이 막을 올렸다. 관객과 작가, 기획자가 함께 관계를 맺고 전시와 작품을 함께 만드는 ‘관계의 미학’을 설파하며 20여년간 세계 미술계의 담론을 주도해온 프랑스의 스타 큐레이터 니콜라 부리오가 양혜규의 작품을 얼굴로 삼아 실험성과 상업성을 버무린 새 형식의 전시를 내보였다.

옛 베네치아 귀족가문의 거처인 팔라초 볼라니에 차린 ‘플래닛 B’전의 전시장 입구. 니콜라 부리오가 기획했다는 문구가 들어간 안내판이 보인다.
옛 베네치아 귀족가문의 거처인 팔라초 볼라니에 차린 ‘플래닛 B’전의 전시장 입구. 니콜라 부리오가 기획했다는 문구가 들어간 안내판이 보인다.

찾아가는 길과 공간들이 예사롭지 않다. 베네치아의 대명사 산마르코 광장과 두칼레 궁전에서 아드리아해를 바라보는 부둣길을 조금만 걸어가면 유서 깊은 일급 호텔인 메트호폴 호텔이 나타난다. 이 호텔을 끼고 칼레 피에타(피에타 길)란 이름의 골목길로 꺾어 들어 200여m만 들어가면, 좁은 운하의 수로를 내려다보는 과거 베네치아의 유력 귀족 가문 볼라니가의 궁전 저택이 나온다. 16~17세기 풍자 작가 아레티노, 바로크 풍경화의 대가 구아르디 등이 살며 작업했던 이 건물에서 세계 현대미술계 최고의 전시 이론가로 꼽히며 지난 20여년간 서구 미술판의 담론 시장을 지배해온 파리 팔레드도쿄 디렉터 출신의 기획자 부리오의 전시가 20일 막을 올린 것이다.

색다른 역사적 간극과 계승에 대한 상념을 불러일으켰다. ‘행성 B: 기후변화와 새로운 숭고함’이란 제목이 붙었다. 부리오가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와 유럽, 아시아 등 세계 각지로부터 출품을 부탁한 작가는 30명에 달했지만, 전시의 얼굴인 전면 벽체를 한국 미술판에서 배출한 국제적 작가인 양혜규씨의 대형 종이 프린트물이 덮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흥미를 안겨주었다.

니콜라 부리오가 이번 전시의 도록을 겸해 펴낸 단행본 <행성 B: 기후변화와 새로운 숭고함>의 표지. 니콜라 부리오 제공
니콜라 부리오가 이번 전시의 도록을 겸해 펴낸 단행본 <행성 B: 기후변화와 새로운 숭고함>의 표지. 니콜라 부리오 제공

전시는 ‘모든 전시는 숲이다’ ‘찰스 다윈과 산호초’ ‘나우루 섬의 비극적 죽음’이란 세가지 열쇳말을 중심으로 영역을 나눠 지구온난화를 화두로 삼은 세계 각지 작가들의 크고 작은 회화와 조형물들을 소개한다. 지구온난화가 지구와 인간의 집단적 관계를 변화시켰고 이에 따라 예술가들의 시선 또한 변화시켰는데, 서양 근대에 철학 거장 칸트 등에 의해 정립된 숭고미에 대한 낭만적인 개념에 이제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게 됐으며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는 통찰을 담고 있다.

내용상의 핵심 못지않게 눈길을 끄는 것이 전시의 틀거지다. 부리오가 2022년 1월에 시작한 국제적인 큐레이터 조합인 래디컨츠(RADICANTS)의 첫 출발을 알리는 자리이기 때문인데, 작품들을 판매한다는 점이 이채롭다. 원래 증식하는 뿌리줄기를 뜻하는 래디컨츠는 관계의 미학과 더불어 부리오 미술 전시 담론의 핵심 개념 중 하나였다. 그가 최근 독립기획자들의 전시를 지원하고 격변하는 시대상 속에서 새로운 전시 모델을 구축하기 위한 플랫폼 성격의 조합 이름으로 명명한 것이다. 그래서 이 전시는 지구의 기후 환경 변화와 이에 따른 양상들을 담은 작품들을 보여주면서도 작가 기획자들의 지속적 활동 보장의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현실적 협업 모델 공간을 만든다는 의미도 띠고 있다.

벨기에관은 ‘게임의 자연’이란 제목을 달고 거장 프란시스 알리스의 신작들을 선보였다. 세계 각지 아이들의 놀이 모습을 담담하게 관조한 그의 영상 작품들이 전시장 곳곳에서 빛나는 벨기에관은 국가관 상의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벨기에관은 ‘게임의 자연’이란 제목을 달고 거장 프란시스 알리스의 신작들을 선보였다. 세계 각지 아이들의 놀이 모습을 담담하게 관조한 그의 영상 작품들이 전시장 곳곳에서 빛나는 벨기에관은 국가관 상의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카스텔로 공원의 이탈리아관 본전시장 들머리에 관객의 시선을 내리누르며 들어선 카타리나 프리치의 거대한 코끼리 조형물.
카스텔로 공원의 이탈리아관 본전시장 들머리에 관객의 시선을 내리누르며 들어선 카타리나 프리치의 거대한 코끼리 조형물.

지난 19일 이탈리아관 본전시장 안쪽 공간에서는 세계적인 퍼포먼스 작가 아렉산드라 프리치의 팀들이 발성하며 퍼포먼스 공연을 벌이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팬데믹 시대 고립되고 단절된 인간의 조건을 벗어나려는 자유감성을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격동적인 몸짓으로 보여줬다.
지난 19일 이탈리아관 본전시장 안쪽 공간에서는 세계적인 퍼포먼스 작가 아렉산드라 프리치의 팀들이 발성하며 퍼포먼스 공연을 벌이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팬데믹 시대 고립되고 단절된 인간의 조건을 벗어나려는 자유감성을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격동적인 몸짓으로 보여줬다.

부리오는 1990년대 후반 주창한 ‘관계 미학’ 이론에서 관객과 작가가 함께 교감하며 전시를 완성한다는 공동체성을 강조하면서 자본 중심의 미술 시장과 별개의 대안성을 강조한 바 있다. 완강한 시장 비판주의자였던 그가 자본과 상업주의가 미술판을 온통 뒤덮은 지금 시대의 대세 앞에서 새로운 적응이론을 내세우며 파격적 변화를 선언했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가 올해 베네치아 비엔날레 전시 담론의 물꼬를 트는 마중물이 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부리오는 프랑스 파리 등 서구와 아시아 다른 도시에서도 래디컨츠라는 이름으로 판매전과 실험전이 결합한 포맷의 거점 전시를 계속 진행할 계획이다.

베네치아/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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