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광주>에 출연하는 광주 출신 배우 김수(왼쪽)와 황수빈을 지난 1일 서울 중구 정동 연습실에서 만났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뮤지컬 <광주>는 ‘한국의 레미제라블’이라 불린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민주주의를 짓밟는 군부에 맞서 싸운 시민들의 뜨거운 이야기를 그렸다. 광주문화재단이 2019년 ‘임을 위한 행진곡 대중화·세계화 사업’의 하나로 기획한 <광주>는 광주에서 나고 자란 이들에게 더욱 각별한 작품일 터. 여기에 참여하는 광주 출신 동갑내기 배우 김수(30)와 황수빈(30)의 마음가짐이 남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광주>는 올해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맞아 16~21일 광주 빛고을시민문화관 무대에 오른다. 2020년 초연 이후 네번째 시즌이다. 음악사를 운영하며 학생들과 시민군을 돌보는 정화인 역을 맡은 주연배우 김수는 이번이 첫 출연이다. 지난 1일 서울 중구 정동 연습실에서 만난 김수는 “출연 제안을 받고 ‘내가 광주 출신인 걸 알았나?’ 하며 신기해했는데, 물어보니 몰랐다더라”며 웃었다.
뮤지컬 <광주> 공연 장면. 광주문화재단·라이브·극공작소마방진 제공
광주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마친 그는 서울대 성악과에 진학하면서 상경했다. “초등학교 가기 전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를 보고 뮤지컬 배우 꿈을 꿨어요. 이를 위해 성악을 배우면 좋겠다 싶었고요. 대학 졸업 뒤 오디션에 지원했는데 경력이 없어선지 자꾸 서류에서 떨어졌어요. 연기 레슨도 받다가 2021년 뮤지컬 <팬텀> 여주인공 크리스틴으로 데뷔하게 됐죠. 처음부터 너무 큰 배역이어서 꿈같으면서도 그때 제 연기가 아쉽기도 해요.” 이후 <잭 더 리퍼> <삼총사> <미드나잇: 앤틀러스> 등에서 활약하다 이번에 <광주>에 캐스팅됐다.
의대에 가려는 재수생으로 시민군에 참여하게 된 하동수 역의 황수빈은 광주·전남 지역 예술인 대상 오디션에서 18대1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5명 중 하나다. 광주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마친 그는 누나들을 따라 상경해 서울서 고등학교에 다닌 뒤 전남대 생물공학과에 진학하면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군대 갔다가 휴가 나와서 친구가 준 티켓으로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를 보고 펑펑 울었어요. 이후 뮤지컬을 하고 싶어서 부모님 몰래 오디션을 봤죠. 대학로에서 연극과 뮤지컬을 하다가 <광주> 지역 예술인 오디션 공고를 보고 무조건 해야겠다 싶어서 지원했어요.”
뮤지컬 <광주>에 출연하는 광주 출신 배우 김수(왼쪽)와 황수빈을 지난 1일 서울 중구 정동 연습실에서 만났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두 배우 모두 어릴 때부터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듣고 배웠다고 했다. “학교에서 매년 이맘때 행사를 하기도 했고요, 집에서도 얘기 많이 들었어요. 할머니는 총알이 날아올까봐 창문에 두꺼운 이불을 붙이고 가족들을 밖에 못 나가게 하셨대요. 고모는 길 가다 군인들을 피해 남의 집에 숨어들었더니 거기 또 다른 누군가가 숨어있더라 하는 얘기를 들려주셨고요. 5·18이 더 가깝게 느껴졌어요.”(김수) “아버지는 당시 고등학생이었는데 학교에 가고 싶어도 못 갔다고 하셨어요. 제가 <광주> 오디션에 합격했다고 하니 아버지가 무척 기뻐하셨죠.”(황수빈)
이들에겐 작품도 작품이지만 고향 광주에서 공연한다는 점도 특별하다. “광주 거리에 붙은 공연 안내 펼침막을 봤다면서 친척, 친구들이 연락 많이 했어요. 제 얼굴 사진도 나왔대요. 제가 꿈을 키운 곳에서 뮤지컬 배우로 처음 공연한다는 사실이 기분 좋고 자랑스러워요.”(김수) “저도 공연 보러 오겠다는 가족, 친척, 친구들 연락 많이 받았어요. 지난달 연극 <슬기로운 신혼생활> 광주 공연을 했는데, 당시 도시 곳곳에 세워진 비석을 보며 아직도 흉터와 상처가 있다는 걸 새삼 느꼈어요. 그래서 이번 <광주> 공연이 제겐 더 의미 깊어요.”(황수빈)
뮤지컬 <광주> 포스터. 광주문화재단·라이브·극공작소마방진 제공
그들은 광주 출신이어서 더 고민되는 지점이 있다고 털어놨다. 황수빈은 “지난해 공연 영상을 참고 삼아 봤는데, 볼 때마다 눈물이 많이 났다”며 “무대에서 감정을 잘 추스를 수 있을까 하는 게 고민이자 숙제”라고 말했다. 김수도 “연습하다 보면 자꾸 울게 되는데, 아무렇지 않게 담백하게 하는 게 연출 포인트라고 한다”며 “제가 느끼는 걸 가려야 하니 더 어렵더라”고 했다.
고민들은 더 나은 연기와 작품의 밑거름이 되기 마련이다. 김수의 고민은 작품을 보는 우리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준다. “<광주>를 준비하면서 왜 우리가 아픈 과거를 기억하려 하고 작품으로까지 올릴까를 생각해봤어요. ‘과거에 이렇게 아프고 힘들었어’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지금의 의미를 짚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우크라이나, 북한 등 세계 곳곳에서 광주의 아픔을 겪고 있거든요. 그들이 아픈 과거를 반복하지 않도록 우리가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해요. 우리 공연이 관객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