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상은이 7일 촛불집회 공연을 앞두고 리허설을 하고 있다. 구둘래 기자
가수 이상은이 7일 촛불집회 무대에 섰다. ‘세월호 1000일’을 이틀 앞두고 세월호 진상규명과 인양을 기원하는 ‘세월호 추모 문화제’로 진행된 무대다. 지난해 8월19일 단원고 ‘기억과 약속의 방’ 문화제에 참석했던 이상은은 그 인연으로 이번 무대에도 올랐다.
“이번 정권에서 속상한 일이 많았지만 그중에 세월호가 가장 속상해요.” 7일 촛불집회 공연 리허설 뒤 만난 이상은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기억과 약속의 밤’ 문화제, 이상은이 무대에 오르기 전에 희생된 아이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불려졌다. “무대에 오를 때 이미 너무 많이 울었어요. 그렇게 울면서 노래를 한 적이 없어요.” 눈물로 범벅이 된 공연이었는데, 나중에 한 단원고 학생이 “부모님들이 많이 위로를 받았다”고 이메일을 보내왔다. “당시에는 세월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별로 없었죠. 단원고에 갔을 때 너무너무 우울했어요. 무서울 정도로.” 그러니 눈물이 그치질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죠. 세월호 인양도 시간문제 아닐까요. 전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있고. 정말 다행입니다.”
이상은은 “그때 너무 많이 울어서 오늘은 울지 않습니다”라고 이날 촛불무대에서 말했다. 그보다 앞서 촛불집회 무대에 선 세월호 생존 학생 장애진씨는 “우리는 너희를 절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을게. 우리가 나중에 너희를 만나는 날이 올 때, 우리를 잊지 말고 열여덟살 그 시절 모습을 기억해줬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다. 이상은의 ‘언젠가는’도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헤어진 모습 이대로”로 끝난다. 촛불무대에서 이상은은 마지막곡으로 ‘언젠가는’을 불렀다. ‘어기여디어라’ ‘새’도 불렀다. 싸울 힘을 주는 노래들이다. “이것도 싸우는 일이잖아요. 너무 당연한 걸 주장하기 때문에 지칠 수도 있는데, 계속해야죠.”
1988년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로 대상을 수상하며 그야말로 혜성같이 등장한 이상은은 바쁜 스케줄 속에서 자신이 소모되고 있다는 생각에 미국 유학을 떠났고, 1~2년마다 외국에서 한국으로 앨범을 타전하며 독보적인 음악 세계로 나아가고 있음을 알렸다. 4집 <비긴>에서 ‘하우스 뮤직’을 선보이고 6집 <공무도하가>는 전통 가락을 끌고 왔다. 7집 <외롭고 웃긴 가게>와 6집은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꼽혔다. 미국에 이어 일본에서의 10년 생활까지 오랜 외국 생활을 접고 2000년대 초 한국에 돌아온 뒤 홍대 인디신을 활동 반경으로 삼으며 꾸준히 음악을 발표하고 있다.
“현장에 있으면 느낍니다.” 그는 대통령 비선실세 국정 농단이 문화예술계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문화 진흥책이 모두 아이돌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한때 인디 뮤지션을 위한 공연도 많이 만들어지고, 대중적이지는 않더라도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프로젝트에 지원이 이뤄졌는데 그게 완전히 바뀌었어요.” 2012년 그가 문화방송 라디오 <골든디스크>를 진행할 때는 피디가 해고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박근혜 정권 4년, “시사 프로그램도 없지만 음악 프로그램도 없죠.”
세월호 참사 1000일을 이틀 앞둔 7일 오후 촛불집회에서 가수 이상은이 공연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이상은은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2010년의 <위아메이드오브스타더스트>(14집)에서는 일렉트로니카를 시도했다. 2014년 발표한 <루루>(15집)에서는 믹싱을 빼고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혼자서 해냈다. “지금도 온라인 강의를 듣고 있어요. 작곡법, 화성법 이런 것도 다시 보고 있어요.” 그는 7월 즈음 16집 앨범을 발표할 것 같다고 말한다. “위로가 되는 곡들을 쓰고 싶어요. 위로라는 것은 슬픈 것도 기쁜 것도 아닌 미묘한 감정상태더라고요. 힘들 때 극복을 위해서 지은 곡들에서 많은 위로를 받는 것 같아요.”
구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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